디트리히 본회퍼, 옥중서신저항과 복종, 김순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22(7).

 

로이스달Ruysdael(211)

 

라위스달Ruysdael

 

야콥 반 로이스달(419, 미주 170)

 

야코프 판 라위스달

 

인명을 바로잡았다.

 

국립국어원의 로마 인명 표기를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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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옥중서신저항과 복종, 김순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22(7).

 

그건 그렇고, 나는 슈티프터 덕분에 순진함Einfalt단순함Einfachheit의 차이를 분명히 알게 되었네. (“시민적인 것단순한것처럼) 슈티프터도 순진하지 않고 단순하다네. “순진함(신학적 의미에서도) 미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네. (빙켈만Winckelmann이 고대 예술을 고귀한 순진함으로 정의한 것은 정당한가? [하지만 예컨대 라오콘과 관련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네] “정적인 위대함이라는 그의 표현은 아주 좋더군.) “단순함은 윤리적 개념이네. “단순함은 되는 것werden이고, “순진함은 그냥 존재하는 것sein이라고 할 수 있네. [...] 반면에 순진함은 하나의 선물이네. [...] 그것은 순진함과 마찬가지로 전체성 개념이라고 할 수 있네.(210-211)

 

그건 그렇고, 나는 슈티프터 덕분에 단순함Einfalt소박함Einfachheit의 차이를 분명히 알게 되었네. (“시민적인 것소박한것처럼) 슈티프터도 단순하지 않고 소박하다네. “단순함(신학적 의미에서도) 미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네. (빙켈만Winckelmann이 고대 예술을 고귀한 단순함으로 정의한 것은 정당한가? [하지만 예컨대 라오콘과 관련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네] “정적인 위대함이라는 그의 표현은 아주 좋더군.) “소박함은 윤리적 개념이네. “소박함은 되는 것werden이고, “단순함은 그냥 존재하는 것sein이라고 할 수 있네. [...] 반면에 단순함은 하나의 선물이네. [...] 그것은 단순함과 마찬가지로 전체성 개념이라고 할 수 있네.

 

독일어 원문: Übrigens ist mir an Stifter der Unterschied zwischen Einfalt und Einfachheit deutlich geworden. Stifter ist nicht einfältig, sondern einfach (ebenso wie das »Bürgerliche« »einfach« ist). »Einfalt« ist (auch im Theologischen) eher ein ästhetischer Begriff, (hatte Winckelmann eigentlich recht für die antike Kunst mit der Definition der »edlen Einfalt«? doch bestimmt nicht in bezug z.B. auf den Laokoon, »stille Größe« finde ich sehr gut) »Einfachheit« ist ein ethischer Begriff. »Einfach« kann man werden, »einfältig« kann man nur sein. [...] Einfalt ist ein Geschenk. [...] es ist wie »Einfalt« ein Ganzheitsbegriff; [...].

 

번역을 바로잡았다.

 

Einfalt = (빙켈만의 용어) 단순함

 

 

아래, 논문을 볼 것:

 

김대권, 빙켈만과 헤르더의 고대 그리스관, 한국괴테학회, <괴테연구>, 2005(17), 137-164: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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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옥중서신저항과 복종, 김순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22(7).

 

나는 이런 상상을 자주 하네. 이를테면 자연 속에서, 그것도 중간급 산악지대, 곧 프리드리히스브룬 근처의 숲 속 풀밭에서 살거나, 브로켄 산 위의 트레제 성이 건너다보이는 비탈에서 사는 것이지.(209)

 

나는 이런 상상을 자주 하네. 이를테면 자연 속에서, 그것도 중간급 산악지대, 곧 프리드리히스브룬 근처의 숲 속 풀밭에서 살거나, 트레제 성 너머로 브로켄 산이 보이는 비탈에서 사는 것이지.

 

독일어 원문: In meinen Phantasien lebe ich viel in der Natur, d.h. in den Waldwiesen bei Friedrichsbrunn oder auf den Hängen, von denen aus man über Treseburg auf den Brocken sieht.

 

번역을 바로잡았다.

 

von A aus über B auf C sehen

 

= A에서 B를 너머 C를 보다

 

von denen[=den Hängen] aus man über Treseburg auf den Brocken sieht

 

= 언덕들로부터 사람들은 트레제부르크 성() 너머로 브로켄 산을 바라본다.

 

 

아래, 지도를 볼 것:

 

두 지점의 거리:

 

트레제부르크 성 브로켄 산 = 1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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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기도, 오성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17(10).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때, 상징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두 단어의 충만한 현실성 안에 있게 됩니다.(76)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때, 상징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두 말의 충만한 현실성 안에 있게 됩니다.

 

독일어 원문: Wenn wir Gott unseren Vater nennen, verfallen wir nicht in den Symbolismus, sondern dann sind wir in der vollen Wirklichkeit dieser zwei Worte: Vater und Sohn.

 

번역을 바로잡았다.

 

Wort 복수(複數)의 차이에 주의할 것:

 

Wort Wörter = 단어

 

Wort Wor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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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옥중서신저항과 복종, 김순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22(7).

 

서약과 같은 것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느끼고, 그러면 자네 부부를 떠올리면서 저들 중 한 사람보다는 차라리 저를이라고 말하네. 그러면서 내가 자네 부부에게 얼마나 애정을 가졌는지를 느끼네.(195)

 

서원과 같은 것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느끼고, 그러면 자네 부부를 떠올리면서 저들 중 한 사람보다는 차라리 저를이라고 말하네. 그러면서 내가 자네 부부에게 얼마나 애정을 가졌는지를 느끼네.

 

독일어 원문: [...] ich spüre, wie so etwas wie Gelübde ausgesprochen werden, und dann denke ich an Euch alle und sage: lieber mich als einen von ihnen, und spüre dabei, wie ich an Euch hänge.

 

번역을 바로잡았다.

 

Gelübde = 서원(誓願)

 

아래, 창세기 28장을 볼 것:

 

20 Und Jakob tat ein Gelübde und sprach: Wird Gott mit mir sein und mich behüten auf dem Wege, den ich reise, und mir Brot zu essen geben und Kleider anzuziehen

21 und mich mit Frieden wieder heim zu meinem Vater bringen, so soll der HERR mein Gott sein.

22 Und dieser Stein, den ich aufgerichtet habe zu einem Steinmal, soll ein Gotteshaus werden; und von allem, was du mir gibst, will ich dir den Zehnten geben.

 

20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21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22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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