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그루노브 엮음,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 이신건·오성현·이길용·정용섭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0(초판 2).

 

잘 알다시피 루터는 그의 소교리문답에서 일용할 양식이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음식, 음료, 의복, 신발, , 마당, 농장, 가축, , 물건, 경건한 아내, 경건한 자녀, 경건한 친구, 경건하고 신실한 상전, 좋은 정부, 좋은(너무 덥거나 춥지 않은) 날씨, 건강, 결혼, 좋은 친구, 신실한 이웃.(162)

 

잘 알다시피 루터는 그의 소교리문답에서 일용할 양식이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음식, 음료, 의복, 신발, , 마당, 농장, 가축, , 물건, 경건한 아내, 경건한 자녀, 경건한 , 경건하고 신실한 상전, 좋은 정부, 좋은(너무 덥거나 춥지 않은) 날씨, 건강, 결혼, 좋은 친구, 신실한 이웃.

 

독일어 원문: So erklärt Luther bekanntlich in seinem Kleinen Katechismus den Sinn des Wortes «Brot»: Essen, Trinken, Kleider, Schuh, Haus, Hof, Äcker, Vieh, Geld, Gut, fromm Gemahl, fromme Kinder, fromm Gesinde, fromme und getreue Oberherren, gut Regiment, gut Wetter (nicht zu heiß und nicht zu kalt!), Gesundheit, Ehre, gute Freunde, getreue Nachbarn.

 

번역을 바로잡았다.

 

Gesinde = , 하인

 

https://www.dwds.de/wb/Gesinde

 

https://fwb-online.de/lemma/gesinde.s.0m?q=Gesinde&page=1

 

 

아래, 루터 성경(1545)창세기 26:14을 볼 것:

 

das er viel guts hatte an kleinem vnd grossem vieh / vnd ein gros Gesinde. Darumb neideten jn die Philister /

 

그는 양떼와 소떼와 많은 종들을 거느리게 되어 불레셋 사람들의 시기를 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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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그루노브 엮음,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 이신건·오성현·이길용·정용섭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0(초판 2).

 

나중의 세 가지 기도문은 직접적으로 그리고 매우 실제적으로 우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복과 안녕, 우리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구원을 다룹니다.(151)

 

나중의 세 가지 기도문은 직접적으로 그리고 매우 실제적으로 우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복과 안녕, 우리의 육체적이고 영적이고 천상적 구원을 다룹니다.

 

독일어 원문: Die drei letzten Bitten betreffen uns direkt und sehr real. Es handelt sich da um unseren Wohlstand, unser Wohlergehen, unser leibliches sowie unser geistliches und himmlisches Heil.

 

번역을 바로잡았다.

 

geistlich = 종교적, 영적

 

정신적’ = geistig

 

himmlisch = 천상의, 신적인

 

 

위 바르트(K. Barth)의 글Das Vaterunser에서 다른 geistlich의 용례를 볼 것:

 

영적 필요들:

 

Vielleicht ist dies das Zeichen einer Krankheit in der Kirche, wenn Fragen wie diese auf tauchen können: Wie soll ich in meinem Kämmerlein für meine geistlichen Bedürfnisse beten? Und die Kirche ihrerseits, wie soll sie beten? Und man fängt an, ein Sonderinteresse an dem Gebet in der Kirche, an der „liturgischen Frage“ zu hegen! Ist da nicht ein Anzeichen von Krankheit?

 

영적 약함:

 

Für die Reformatoren gibt es keine „liturgische Frage“; man betet in der Kirche und man betet im Haus. Ihre Hauptbeschäftigung ist nicht, zwischen dem privaten Gebet und dem gemeinschaftlichen Gebet eine Unterscheidung zu machen. Was sie interessiert, ist die Notwendigkeit, zu beten und recht zu beten. Das möchte vielleicht ein Wink zur Zurückhaltung sein. Sobald man zweitrangige Dinge zu sehr betont, ist dies das Zeichen einer gewissen geistlichen Schwä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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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기도, 오성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17(10).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이 몇 마디 단어 안에 담긴 그분과 관계된 의미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분께 향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초대받고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78)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이 몇 마디 말에 담긴 그분과 관계된 의미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분께 향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초대받고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독일어 원문: Seht, das ist in einigen Worten der, an den wir uns wenden, nicht aus unserem eigenen Antrieb, sondern weil wir eingeladen und aufgerufen sind, es zu tun.

 

번역을 바로잡았다.

 

Wort 복수(複數)의 차이:

 

Wort Wörter = 단어

 

Wort Worte =

 

 

주기도의 구어성(口語性)에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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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기도, 오성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17(10).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때, 상징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두 단어의 충만한 현실성 안에 있게 됩니다.(76)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때, 상징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두 말의 충만한 현실성 안에 있게 됩니다.

 

독일어 원문: Wenn wir Gott unseren Vater nennen, verfallen wir nicht in den Symbolismus, sondern dann sind wir in der vollen Wirklichkeit dieser zwei Worte: Vater und Sohn.

 

번역을 바로잡았다.

 

Wort 복수(複數)의 차이에 주의할 것:

 

Wort Wörter = 단어

 

Wort Wor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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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그루노브 엮음,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 이신건·오성현·이길용·정용섭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0(초판 2).

 

다만 이와 같은 감사의 시편을 노래한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그가 아니라 시편 작가입니다. 시편 작가가 이 노래를 짓고 부른 것은그도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지만, 체념과 행동 속에서 그리합니다!전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업적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 때문입니다.(131)

 

다만 이와 같은 감사의 시편이 노래하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시편 작가 자신입니다. 시편 작가가 이 노래를 짓고 부른 것은그도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일 뿐 실상 자신의 금욕과 행위를 노래합니다!전적으로 하나님의 주의를 자신의 놀라운 업적으로 돌리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독일어 원문: Nur daß dieser Dankpsalm eben leider doch ganz und gar von dem Psalmsänger selbst natürlich unter dem Vorzeichen der Gnade Gottes, aber von ihm, von seinen löblichen Unterlassungen und Taten! handelt und offenbar zu dem Zweck gesungen wird, Gott auf dieses sein so herrlich gelungenes Werk gebührend aufmerksam zu machen.

 

번역을 바로잡았다.

 

nur daß dieser Dankpsalm eben leider doch ganz und gar von dem Psalmsänger selbst handelt

 

= 이 감사 시편은 바로 유감스럽게도 하지만 전적으로 시편 작가 자신을 다룰 뿐이다

 

[nur daß dieser Dankpsalm] zu dem Zweck gesungen wird,

 

= 이 감사 시편은 이 목적으로 불려질 뿐이다

 

Gott auf dieses sein so herrlich gelungenes Werk gebührend aufmerksam zu machen

 

= 하나님에게 이 자신의 이토록 훌륭하게 성취한 업적에 지당한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natürlich unter dem Vorzeichen der Gnade Gottes, aber von ihm, von seinen löblichen Unterlassungen und Taten [handelt]!

 

= 물론 하나님의 은혜를 내세우면서, 그러나 자신을, 자신의 칭찬할 만한 포기들과 행위들을 (다룬다)!

 

 

감사 시편’ =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 = 누가복음 18장을 볼 것:

 

11 바리새파 사람이 서서 속으로 이렇게 기도드렸어요. ‘하나님, 제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억지로 빼앗아 가는 사람들, 불의한 사람들, 바람피우는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이 세금업자하고도요.

12 저는 한 주에 두 번 금식합니다. 제가 벌어들이는 것은 뭐든지 다, 10분의 1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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