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카울바하,『칸트』, 백종현 옮김, 서광사, 1992(3).
같은해[=1755년] 12월 27일 공개 토론 후에 칸트는 마이어의 교본에 따라서 논리학을 그리고 형이상학에 관하여는 처음엔 바우마이스터의 교본에 따라, 나중에는 “좀더 근본적이고 난해한 바움가르텐에 따라, 물리학은 에버하르트에 따라, 수학은 볼프에 따라” 강의하기 시작하였다.(19쪽)
→ 같은해 9월 27일 공개 토론 후에 칸트는 마이어의 교본에 따라서 논리학을 그리고 형이상학에 관하여는 처음엔 바우마이스터의 교본에 따라, 나중에는 “좀더 근본적이고 난해한 바움가르텐에 따라, 물리학은 에버하르트에 따라, 수학은 볼프에 따라” 강의하기 시작하였다.
독일어 원문: Nach der Disputation am 27. September desselben Jahres begann Kant Vorlesungen über Logik nach Meier, über Metaphsik zuerst nach Baumeister, dann „nach dem gründlicheren, aber schwereren Baumgarten, ─ über Physik nach Eberhardt und über Mathematik nach Wolf[f] zu halten‟.
• nach der Disputation am 27. September
= 9월 27일 공개 토론 후에
• 숫자를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