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 페란테,어른들의 거짓된 삶, 김지우 옮김, 한길사, 2020(9).

 

내 방에 있는데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12)

 

부모님은 내 방문이 닫혀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방문을 항상 닫아놓으니까 누군가 방문을 열어놓았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13)

 

나는 부모님의 대화를 더 듣고 싶지 않아서 내 방으로 달려가 문을 닫고 소리 죽여 울었다.(15)


이탈리아어 원문E io, lì nella mia stanza, corsi a chiudere la porta per non sentire altro.

 

내 방에 있는데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모님은 내 방문이 닫혀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방문을 항상 닫아놓으니까 누군가 방문을 열어놓았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나는 부모님의 대화를 더 듣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내 방 문을 닫고 소리 죽여 울었다.


 

모순:

 

내 방에 있는데”, “내 방으로 달려갈 순 없다.

 

번역을 바로잡았다.

 

 

다른 외국어 번역을 참고할 것:

 

영어: And I, there in my room, hurried to close the door so as not to hear anything else.

 

독일어: Und ich, dort in meinem Zimmer, schloss schnell die Tür, um nicht noch mehr zu hören.

 

프랑스어: Alors moi, là dans ma chambre, je courus fermer ma porte pour ne rien entendre d’au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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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하우워어스,한나의 아이, 홍종락 옮김, IVP, 2016(7).

 

담임목사는 지머만 형제였다. [...]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사역하느라 몸이 기찻길처럼 말랐다.(29)

 

담임목사는 지머만 형제였다. [...]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사역하느라 몸이 처럼 말랐다.

 

영어 원문: Our minister was Brother Zimmerman. [...] He was thin as a nail because he gave everything he had to being a minister.

 

nail =

 

번역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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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프리도,니체의 삶, 박선영 옮김, 비잉, 2020(6).

 

다음 운명 같은 우연은 오틸리에 브로크하우스가 니체의 연주 이야기를 듣고 오빠인 바그너에게 전했다는 것이고, 마지막 우연은 니체에게 마음의 위안을 크게 안겨준 무명의 철학자를 바그너도 아주 좋아했다는 것이다.(15)

 

다음 운명 같은 우연은 오틸리에 브로크하우스가 니체의 연주 이야기를 듣고 동생바그너에게 전했다는 것이고, 마지막 우연은 니체에게 마음의 위안을 크게 안겨준 무명의 철학자를 바그너도 아주 좋아했다는 것이다.

 

영어 원문: Next, Ottilie Brockhaus had heard him play and relayed the news to her brother Wagner. Now the third link: Wagner's deep attachment to the obscure philosopher whose writings had been Nietzsche's comfort [...].

 

저녁 식사가 끝나자 바그너는 [...] 자신의 여동생과 친척들과도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며 가깝게 지내 달라고 부탁했고, 그 임무는 지금도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다네.(16)

 

저녁 식사가 끝나자 바그너는 [...] 자신의 누나 친척들과도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며 가깝게 지내 달라고 부탁했고, 그 임무는 지금도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다네.

 


바그너 남매의 출생연도:

 

9남매 중 8번째 = 오틸리에 바그너(18111883) 헤르만 브로크하우스(1806-1877)

 

9남매 중 9번째 =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번역을 바로잡았다.

 

 

다음 바그너 가족의 사이트를 참고할 것:

 

https://de.wikipedia.org/wiki/Richard_Wagner_(Fami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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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터 맥그라스,기독교의 역사, 박규태 옮김, 포이에마, 2020(14).

 

루터가 처음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517년에 면죄부 판매를 놓고 벌인 논쟁이었다. 마인츠 대주교 알베르트는 자신이 관장하는 대교구 안에서 면죄부를 판매하도록 허용했다.(349)

 

루터가 처음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517년에 면죄부 판매를 놓고 벌인 논쟁이었다. 마인츠 대주교 알브레히트자신이 관장하는 대교구 안에서 면죄부를 판매하도록 허용했다.

 

영어 원문: Luther was initially propelled to fame through a controversy concerning the sale of indulgences in 1517. Archbishop Albert of Mainz had given permission for the sales of indulgences in his territories, [...].

 

Archbishop Albert of Mainz = Erzbischof Albrecht von Mainz

 

= 마인츠 대주교 알브레히트

 

인명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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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레인 폭스,아우구스티누스, 박선령 옮김, 21세기북스, 2020(1).

 

내가 아우구스티누스를 처음 만난 것은 19664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작은 중앙 광장 옆에 있는 중세의 탑들로 이어지는 길에 빨갛고 노란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당시에는 아직 망가지지 않은 투스카니 지방의 산지미나노San Gimignano에서였다. 삼촌인 크리스토퍼 로이드가 나와 여동생을 피렌체에서 그곳까지 데려갔고, 점심을 먹으며 브랜디를 처음 맛본 뒤 아우구스티누스의 산아고스티노S. Agostino 생활을 묘사한 고졸리Gozzoli의 프레스코화를 보여줬다.(11)

 

내가 아우구스티누스를 처음 만난 것은 19664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작은 중앙 광장 옆에 있는 중세의 탑들로 이어지는 길에 빨갛고 노란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당시에는 아직 망가지지 않은 투스카니 지방의 산지미냐노San Gimignano에서였다. 삼촌인 크리스토퍼 로이드가 나와 여동생을 피렌체에서 그곳까지 데려갔고, 점심을 먹으며 브랜디를 처음 맛본 뒤 산아고스티노 교회S. Agostino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일생을 묘사한 고졸리Gozzoli의 프레스코화를 보여줬다.

 

영어 원문: I first encountered Augustine on an April Sunday in 1966 in the then-unspoilt Tuscan town of San Gimignano while wallflowers tumbled in red and yellow down the medieval towers beside the small central square. My uncle, Christopher Loyd, had taken me and my sister there from Florence and, after lunch and my first with brandy, showed us the Gozzoli frescoes of Augustine’s life in S. Agostino.

 

the Gozzoli frescoes of Augustine’s life in S. Agostino.

 

= 산아고스티노 교회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일생을 그린 고졸리의 프레스코화

 

San Gimignano = 산지미냐노

 

지명과 번역을 바로잡았다.

 

 

산아고스티노 교회의 프레스코화는 다음 사이트를 볼 것:

 

http://www.travelingintuscany.com/art/benozzogozzoli/santagostino.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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