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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그루노브 엮음,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 이신건·오성현·이길용·정용섭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0(초판 2).

예수님에게 대항하여 이처럼 독특한 행동을 함으로써 그리고 근본적으로 모든 것을 유보함으로써 유다가 행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야웨에게 대항하여 언제나 행하던 일이요, 야웨가 자신이 선택한 백성을 불가피하게 버리시도록 만든 일입니다. 실로 이스라엘이 자신의 하나님을 만난 적은 결코 없으며, 하나님에게 믿음과 자기 자신을 무조건 바칠 마음도 전혀 없었습니다.(204)

 

예수님에게 대항하여 이처럼 독특한 행동을 함으로써 그리고 근본적으로 모든 것을 유보함으로써 유다가 행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야웨에게 대항하여 언제나 행하던 일이요, 야웨가 자신이 선택한 백성을 불가피하게 버리시도록 만든 일입니다. 실로 저 베다니의 마리아가 예수님을 대했던 것과 같이(12:1-8), 이스라엘은 자신의 하나님을 만난 적은 결코 없으며, 하나님에게 믿음과 자기 자신을 무조건 바칠 마음도 전혀 없었습니다.

 

독일어 원문: Er tut, indem er sich Jesus gegenüber in jener charakteristischen Weise etwas und im Grunde Alles vorbehält, das, was Israel Jahve gegenüber immer getan und was Jahves Verwerfung seines erwählten Volkes von jeher unvermeidlich gemacht hat. Eben so wie jene Maria Jesus, hatte ja Israel seinem Gott nie begegnen, gerade Glauben und damit sich selber ohne Vorbehalt hatte es ihm ja nie schenken wollen.

 

번역을 보완했다.

 

아래, 글을 볼 것:

 

KD /2,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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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그루노브 엮음,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 이신건·오성현·이길용·정용섭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0(초판 2).

 

이처럼 보이지 않는 행동으로 초대함으로써 교회는 하나의 표징을 기쁘게 세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179)

 

이처럼 눈에 띄지 않는 행동으로 초대함으로써 교회는 하나의 표징을 기쁘게 세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독일어 원문: [...] darf sie der Gewißheit sein, gerade mit der Einladung zur Beteiligung an diesem unscheinbaren Tun ein Zeichen aufzurichten.

 

성만찬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활동입니다.(180)

 

독일어 원문: Es ist in diesem Sakrament ein unsichtbares Handeln Gottes [...].

 

 

번역을 바로잡았다.

 

 

단어의 차이에 주의할 것:

 

unscheinbar = 눈에 띄지 않는

 

unsichtbar = 눈에 보이지 않는

 

https://www.dwds.de/wb/unscheinbar

 

https://www.dwds.de/wb/unsicht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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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그루노브 엮음,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 이신건·오성현·이길용·정용섭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0(초판 2).

 

파울 게하르트Paul Gehardt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의 목자, 모든 기쁨의 샘아, 너는 나의 것이고, 나는 너의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177)

 

파울 게르하르트Paul Gerhardt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의 목자, 모든 기쁨의 샘아, 너는 나의 것이고, 나는 너의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

 

[...] oder Paul Gerhardt: «Herr, ein Hirt, Brunn aller freuden, du bist mein, ich bin dein, niemand kann uns scheiden...»

 

인명을 바로잡았다.

 

https://de.wikipedia.org/wiki/Paul_Gerhar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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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그루노브 엮음,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 이신건·오성현·이길용·정용섭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0(초판 2).

 

잘 알다시피 루터는 그의 소교리문답에서 일용할 양식이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음식, 음료, 의복, 신발, , 마당, 농장, 가축, , 물건, 경건한 아내, 경건한 자녀, 경건한 친구, 경건하고 신실한 상전, 좋은 정부, 좋은(너무 덥거나 춥지 않은) 날씨, 건강, 결혼, 좋은 친구, 신실한 이웃.(162)

 

잘 알다시피 루터는 그의 소교리문답에서 일용할 양식이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음식, 음료, 의복, 신발, , 마당, 농장, 가축, , 물건, 경건한 아내, 경건한 자녀, 경건한 , 경건하고 신실한 상전, 좋은 정부, 좋은(너무 덥거나 춥지 않은) 날씨, 건강, 결혼, 좋은 친구, 신실한 이웃.

 

독일어 원문: So erklärt Luther bekanntlich in seinem Kleinen Katechismus den Sinn des Wortes «Brot»: Essen, Trinken, Kleider, Schuh, Haus, Hof, Äcker, Vieh, Geld, Gut, fromm Gemahl, fromme Kinder, fromm Gesinde, fromme und getreue Oberherren, gut Regiment, gut Wetter (nicht zu heiß und nicht zu kalt!), Gesundheit, Ehre, gute Freunde, getreue Nachbarn.

 

번역을 바로잡았다.

 

Gesinde = , 하인

 

https://www.dwds.de/wb/Gesinde

 

https://fwb-online.de/lemma/gesinde.s.0m?q=Gesinde&page=1

 

 

아래, 루터 성경(1545)창세기 26:14을 볼 것:

 

das er viel guts hatte an kleinem vnd grossem vieh / vnd ein gros Gesinde. Darumb neideten jn die Philister /

 

그는 양떼와 소떼와 많은 종들을 거느리게 되어 불레셋 사람들의 시기를 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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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그루노브 엮음,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 이신건·오성현·이길용·정용섭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0(초판 2).

 

나중의 세 가지 기도문은 직접적으로 그리고 매우 실제적으로 우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복과 안녕, 우리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구원을 다룹니다.(151)

 

나중의 세 가지 기도문은 직접적으로 그리고 매우 실제적으로 우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복과 안녕, 우리의 육체적이고 영적이고 천상적 구원을 다룹니다.

 

독일어 원문: Die drei letzten Bitten betreffen uns direkt und sehr real. Es handelt sich da um unseren Wohlstand, unser Wohlergehen, unser leibliches sowie unser geistliches und himmlisches Heil.

 

번역을 바로잡았다.

 

geistlich = 종교적, 영적

 

정신적’ = geistig

 

himmlisch = 천상의, 신적인

 

 

위 바르트(K. Barth)의 글Das Vaterunser에서 다른 geistlich의 용례를 볼 것:

 

영적 필요들:

 

Vielleicht ist dies das Zeichen einer Krankheit in der Kirche, wenn Fragen wie diese auf tauchen können: Wie soll ich in meinem Kämmerlein für meine geistlichen Bedürfnisse beten? Und die Kirche ihrerseits, wie soll sie beten? Und man fängt an, ein Sonderinteresse an dem Gebet in der Kirche, an der „liturgischen Frage“ zu hegen! Ist da nicht ein Anzeichen von Krankheit?

 

영적 약함:

 

Für die Reformatoren gibt es keine „liturgische Frage“; man betet in der Kirche und man betet im Haus. Ihre Hauptbeschäftigung ist nicht, zwischen dem privaten Gebet und dem gemeinschaftlichen Gebet eine Unterscheidung zu machen. Was sie interessiert, ist die Notwendigkeit, zu beten und recht zu beten. Das möchte vielleicht ein Wink zur Zurückhaltung sein. Sobald man zweitrangige Dinge zu sehr betont, ist dies das Zeichen einer gewissen geistlichen Schwä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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