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 김순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23(11).

 

오늘날 온전한 확신 속에서 교회의 결단이라는 좁은 길을 걸으면서, 모든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한없는 사랑,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와 인류애”(“사람을 사랑하심”)3:4, 개역개정 속에서 약자와 무신론자들과 함께 사는 것은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25)

 

오늘날 온전한 확신 속에서 교회의 결단이라는 좁은 길을 걸으면서, 모든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 및 약자와 무신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와 인류애”(“사람을 사랑하심”)3:4, 개역개정라는 광대한 넓이에 머무는 것이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독일어 원문: Es scheint heute so schwer zu sein, den schmalen Weg der kirchlichen Entscheidung in aller Gewißheit zu gehen und doch in der ganzen Weite der Christusliebe zu allen Menschen, der Geduld, der Barmherzigkeit, der „Philanthropie“ Gottes (Tit. 3,4) mit den Schwachen und Gottlosen zu bleiben; [...].

 

번역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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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 김순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23(11).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들이 남아 있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부르심은 오늘날 노동자, 상인, 농부, 군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이 물음에서 이 세상에서 노동하는 사람의 삶과 그리스도인의 삶에 참을 수 없는 균열이 생기지 않는가?(24)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들이 남아 있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부르심은 오늘날 노동자, 상인, 농부, 군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이 물음에서 이 세상에서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인 사람의 삶에 참을 수 없는 균열이 생기지 않는가?

 

독일어 원문: Aber noch bedrängt uns die Frage, was der Ruf in die Nachfolge Jesu heute für den Arbeiter, für den Geschäftsmann, für den Landwirt, für den Soldaten bedeuten könne, die Frage, ob hier nicht ein unerträglicher Zwiespalt in das Dasein des in der Welt arbeitenden Menschen und Christen getragen werde.

 

번역을 바로잡았다.

 

정관사가 하나der Mensch und Christ인 것에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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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윤리학, 정현숙 옮김, 복 있는 사람, 2022(2).

 

이것이 바로 윤리학자가 인류에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미혹자가 되고 폭군이 되며, 웃음거리와 희비극적인 인물이 되고 마는 이유다.(497)

 

이것이 바로 윤리학자가 인류에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가학자가 되고 폭군이 되며, 웃음거리와 희비극적인 인물이 되고 마는 이유다.

 

독일어 원문: [...], ja die den Ethiker zum gefährlichen Quälgeist und Tyrannen, zum Narren oder zur tragikomischen Figur werden läßt.

 

번역을 바로잡았다.

 

Quälgeist = 귀찮게 구는 사람

 

https://www.dwds.de/wb/Qu%C3%A4lg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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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윤리학, 정현숙 옮김, 복 있는 사람, 2022(2).

 

우정은 이들 위임에 대하여 의형제(sui generis) 같으면서도, 마치 곡식이 무르익은 들판에 피는 달구지 국화꽃처럼 위임에 함께 속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네(친구라는 시를 보라).(535)

 

우정은 이들 위임에 대하여 독자적인(sui generis) 것 같으면서도, 마치 곡식이 무르익은 들판에 피는 수레국화처럼 위임에 함께 속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네(친구라는 시를 보라).

 

독일어 원문: [...], es ist ihnen gegenüber sui generis, aber gehört doch zu ihnen wie die Kornblume zum Ährenfeld. (Siehe auch das Gedicht „Der Freund“.)

 

번역을 바로잡았다.

 

 

sui generis = 독보적인, 유일무이한

 

https://www.dwds.de/wb/sui%20generis

 

https://de.wiktionary.org/wiki/sui_generis

 

 

Kornblume = Centaurea cyanus = 수레국화

 

https://de.wikipedia.org/wiki/Kornblume

 

 

아래 191쪽의 번역을 볼 것:

 

디트리히 본회퍼, 옥중서신저항과 복종, 김순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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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윤리학, 정현숙 옮김, 복 있는 사람, 2022(2).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독일인의 정직성에 대비되는, 이른바 영국인의 위선과 연결시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네.(689)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독일인의 정직성에 대비되는, 이른바 영국인의 위선과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독일어 원문: Aber geht nicht auch von hier aus eine Brücke zu der sogenannten englischen »Heuchelei«, der man die deutsche »Ehrlichkeit« gegenüberstellt?

 

번역을 바로잡았다.

 

aber geht nicht auch von hier aus eine Brücke zu der sogenannten englischen »Heuchelei«

 

= 하지만 여기서부터 이른바 영국식 위선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아래 번역을 볼 것:

 

그러나 이것은 독일인의 정직에서 영국인의 위선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165)

 

디트리히 본회퍼, 옥중서신저항과 복종, 김순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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