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 그리스도론, 정현숙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5).

 

1933년 그가 던진 근본적인 질문은 아직 장소나 어느 단체에 매이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였다. 그리고 아주 빠른 시일 안에 수강자들은 어떻게무엇”, “라는 질문의 선긋기와 그 결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제 그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이다.(221)

 

1933년 그가 던진 근본적인 질문은 아직 장소나 어느 단체에 매이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였다. 그리고 어떻게무엇”, “라는 질문 및 그 결과와 완전히 구분되는 매우 간결한 이 질문은 수강자들을 매혹시켰다. 이제 그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이다.

 

독일어 원문: 1933 lautete seine Grundfrage noch ohne Orts und Gruppenbindung: ‚Wer ist Jesus Christus?‘ Und in dieser lapidaren Kürze faszinierte sie die Hörer um der Abgrenzung von allen „Wie“-, „Was“- und „Warum“-Fragen und ihren Folgen willen. Jetzt heißt sie „Wer ist Jesus Christus für uns heute?“.

 

번역을 바로잡았다.

 

in lapidarer Kürze = 매우 간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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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그리스도론, 정현숙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5).

 

본회퍼는 그리스도론 강의에서 그리스도론적 질문을 다시 한 번 존재론적질문GS III, 172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은 훗날 더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본회퍼가 존재론적 진술을 선포된 증언과 혼동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218-219)

 

본회퍼는 그리스도론 강의에서 그리스도론적 질문을 다시 한 번 존재론적질문GS III, 172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은 훗날 더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본회퍼가 존재론적 진술을 선포하는 증언과 혼동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나를 따르라(복 있는 사람) 469-470쪽 미주 19

 

독일어 원문: In der Vorlesung bezeichnet Bonhoeffer die christologische Frage noch einmal als eine „ontologische“ (GS III, 172). Das geschieht später nicht mehr; ja, in N, 200, Anm. 10 warnt Bonhoeffer sogar vor der Verwechslung ontologischer Aussagen mit verkündigendem Zeugnis.

 

번역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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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그리스도론, 정현숙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5).

 

그분은 우리 현존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중심이시다.”창조와 타락(복 있는 사람)

 

그분은 우리 현존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중심이시다.”창조와 타락(복 있는 사람) 106

 

독일어 원문: „Er ist Grenze und Mitte unseres Daseins zugleich“ (SF, 62).

 

쪽수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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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창조와 타락, 김순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5).

 

하나님은 창조주로 머무시되, 이제는 자신의 일을 다 마치신 분으로서 그리하신다. 우리는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안식을 그분의 창조물의 안식으로 이해한다.(83)

 

하나님은 창조주로 머무시되, 이제는 자신의 일을 다 마치신 분으로서 그리하신다. 우리는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안식을 그분의 창조의 안식으로 이해한다.

 

독일어 원문: Gott bleibt der Schöpfer, aber nun als der, der sein Werk vollendet hat; Gottes Ruhe verstehen wir nun so, daß es zugleich die Ruhe seiner Schöpfung ist.

 

번역을 바로잡았다.

 

창조물 = das Geschaff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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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창조와 타락, 김순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5).

 

하지만 그것은 무기력한 하나님의 쉼이 아니라, 창조주의 쉼이다.(83)

 

하지만 그것은 무기력한 어떤 신의 쉼이 아니라, 창조주의 쉼이다.

 

독일어 원문: Es ist doch nie die Ruhe eines lethargischen Gottes, sondern die Ruhe des Schöpfers,

 

번역을 바로잡았다.

 

 

독일어 단어의 차이에 주의할 것:

 

Gott = 하나님

 

ein Gott = 어떤 신·우상

 

 

eines lethargischen Gottes = 어떤 무기력한 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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