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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크의 초상화 (전집 1:321-322)

 

벽에는 푸치크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막스 스바빈스키라는 엘 에포크시대의 노()화가알레고리나 통통한 여자들과 나비, 아기자기하고 예쁜 것들을 그리는 데 거장인가 그린 유명한 그림의 복사판이었다. 동지들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 그를 찾아가 사진을 보고 푸치크를 그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는데, 스바빈스키는 자기 취향대로 말할 수 없이 섬세한 선으로 그의 모습을(옆모습을) 그려 냈던 것이다. 초상화 속 얼굴 표정은 자칫하면 소녀의 표정 같아 보이기도 하고, 어떤 열망과 갈망으로 꿈꾸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그 얼굴이 너무도 투명하고 아름다워서 실물을 보았던 사람들도 그들이 기억하는 생전의 그의 모습보다 그 그림을 더 선호했다.”

 

 

막스 스바빈스키, 율리우스 푸치크의 초상화(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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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부인들 (전집7:138)

 

헤밍웨이(1899-1961)

 

1. 결혼(1921. 9. 3) 해들리 리처드슨(18911979)

2. 결혼(1927. 5. 10) 폴린 파이퍼(18951951)

3. 결혼(1940. 11. 21) 마르타 겔호른(19081998)

4. 결혼(1946. 3. 14) 메리 웰시(19081986)

 

 

위대한 게츠비의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는, 4번의 결혼과 창작의 연관성을 언급한다.

 

1.『태양은 다시 떠오른다(1926)

2.무기여 잘 있거라(1929)

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

4.노인과 바다(1951)

 

 

관련 서적

 

1. 첫 번째 부인,해들리 리처드슨과 결혼생활을 다룬 책:

폴라 매클레인,헤밍웨이와 파리의 아내, 이은선 옮김, 21세기북스, 2012(2).

 

2. 첫 부인 해들리와 아들 존의 일상이 담긴, 헤밍웨이의 파리 거주 회고록:

어니스트 헤밍웨이,파리는 날마다 축제, 주순애 옮김, 이숲, 2012(1).

 

사진 = 두 번째 부인 폴린 파이퍼와 헤밍웨이, 1927년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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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 텐쉐어트 (전집14:206)

 

Vera Tenschert(1936-)

 

<베를린 앙상블>, 전속 사진작가

 

1951-1954, 베를린 레테 직업전문학교에서 사진 수업.

1954브레히트 별세 2년 전부터 1991년까지 <베를린 앙상블> 전속 사진작가.

 

직업학교 졸업 후, 원래 뮌헨의 패션계에서 수습 사진사로 일하기로 되어 있었음.

한데 뮌헨 가는 기차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베를린 앙상블>에 지원, 채용.

 

36년 동안 <베를린 앙상블>의 모든 공연과 배우들, 특히 브레히트와 그 부인이자 전설적인 배우 헬레네 바이겔을 사진으로 기록.

 

주로 흑백 사진 작업 선호.

 

베를린 앙상블의 제작책임자, 요아힘 텐쉐어트와 결혼.

 

대표작: 사망 10년 후 출간된 헬레네 바이겔(1981), 탄생 100주년인 2000년 재판을 찍음.

 

 

밀란 쿤데라가 베라 텐쉐어트를 적시하면서 간접적으로 언급한 저자와 책:

 

John Fuegi, Brecht and Company: sex, politics,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drama, New York: Grove Press, 1994.

 

2016년, 베라 텐쉐어트, 브레히트와 바이겔이 마국 망명 중 구입해 사용하다 물려준 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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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플리체 (전집7:100, 105, 130)

 

Teplice

 

독일어 = Teplitz

 

체코 서북부의 온천도시.

프라하에서 북서쪽으로 9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

 

762년 온천이 처음 발견.

1862, 온천 발견 1100년을 맞아 기념식과 기념비 제막식이 열림.

 

1945, 독일계 거주민 추방.

 

18세기와 19세기 유명한 요양지로, 유럽 전역에서 명사들 방문.

 

베토벤은 1811년과 1812년 이곳을 찾았고. 괴테는 1810년과 1812, 1813년에도 이곳에 머물렀다. 특히 1813년에는 베티나도 괴테와 같은 시기에 테플리체에 체류했다.

 

1812719, 여기에서 42살의 베토벤과 63살의 괴테가 처음으로 직접 만나 괴테의에그몬트에 곡을 부치는 일을 논의했다.

 

이 기간에 일어났던, 베티나 폰 아르님베토벤이 보낸 편지에 털어놓아 알게 된이 전하는 일화가 유명.

 

일화에 따르면, 1812723일 베토벤과 괴테는 궁전 공원을 산책하다 오스트리아 황제 가족과 그 일행을 마주치자, 베토벤과 괴테는 상반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 베토벤은 황비와 그 일행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했고, 괴테는 깍듯한 예의를 갖춰 대했다.

 

화가 칼 뢰링은 이 일화를 토대로 1887년 석판화테플리체의 우발적 사건을 그렸다.

 

아래 그림은 칼 뢰링의 석판화.                                                          (수정보완: 2017.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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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전집7:123)

 

Siegmund von Arnim

 

베티나와 아힘 폰 아르님의 둘째 아들.

프로이센 외교관.

   

Siegmund = ‘무적의 보호자’(siegreichter Schützer)라는 의미.

 

베티나는 1811년 아르님과 결혼, 7남매를 낳았다.

 

1. 프라이문트(1812-1863)

2. 지그문트(1813-1890)

3. 프리트문트(1815-1883)

4. 퀴네문트(1817-1835)

5. 막시밀리안네(1818-1894)

6. 아름가르트(1821-1880)

7. 오틸리에(1827-1889)

 

지그문트는 어머니 베티나와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고, 이는 2012년 출판되었다.

 

다른 두 아들, 프라이문트와 프리트문트가 어머니와 교환한 서간집도 이 시리즈로 나왔다.

 

Du bist mir Vater und Bruder und Sohn : Bettine von Arnims Briefwechsel mit ihrem Sohn Freimund / hrsg. von Wolfgang Bunzel und Ulrike Landfester, 1999.

 

In allem einverstanden mit dir : Bettine von Arnims Briefwechsel mit ihrem Sohn Friedmund / hrsg. von Wolfgang Bunzel und Ulrike Landfester, 2001.

 

Da wir uns nun einmal nicht vertragen : Bettine von Arnims Briefwechsel mit ihrem Sohn Siegmund / hrsg. von Wolfgang Bunzel und Ulrike Landfester, 2012.

 

 

 

다음은 지그문트의 서간집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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