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실종자, 편영수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09(10).

 

그런데 언젠가 그렇게 엿보다가 들마르쉬에게나는 그가 그렇게 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브루넬다의 청으로 그렇게 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채찍으로 얼굴을 몇 번 얻어맞고 난 후, 상처가 보이지?감히 다시 엿보려고 하지 않아.(260)

 

그런데 언젠가 그렇게 엿보다가 들마르쉬에게나는 그가 그렇게 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브루넬다의 청으로 그렇게 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채찍으로 얼굴을 몇 번 얻어맞고 난 후, 줄 자국 보이지?감히 다시 엿보려고 하지 않아.

 

독일어 원문: [...] aber seit einmal Delamarche bei einer solchen Gelegenheit ich weiß genau, daß er es nicht wollte, sondern es nur auf Bruneldas Bitte tat mir mit der Peitsche einige Male ins Gesicht geschlagen hat siehst du die Striemen? , wage ich nicht mehr, durchzuschauen.

 

Striemen = 피멍이 든 줄 모양의 ()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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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루터는 에라스뮈스에 대해 칭찬한 적도 많았고, 후에 나온 그의 저술들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었다. 에라스뮈스 자신도 압력이 없었다면 루터와의 논쟁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149)

 

루터는 에라스뮈스에 대해 칭찬한 적도 많았고, 후에 나온 그의 저술들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잠재해 있던 이견들이 은폐될 수는 없었다. 자발적으로 루터는 에라스무스를 공격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에라스무스의 업적을 루터는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에라스뮈스 자신도 압력이 없었다면 루터와의 논쟁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Mancherlei wohlwollende Bemerkungen, die in den folgenden Jahren auch von Luther gemacht wurden, konnten doch die latenten Differenzen nicht verdecken. Von sich aus hätte Luther Erasmus schwerlich angegriffen; dazu schätzte Luther die Leistungen des Erasmus zu hoch ein. Erasmus seinerseits hätte von sich aus wohl ebenfalls keinen Streit angefangen, er tat es vielmehr nur unter Druck.

 

빠진 부분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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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루터는 이미 1516년에 쓴 한 서신에서 에라스뮈스를 비판한 적이 있었다. 에라스뮈스는 바울의 자기 의”(自己義) 혹은 행위의인개념을 단순히 의식적(儀式的) 행위로만 해석했다는 것이다.(149)

 

루터는 이미 1516년에 쓴 한 서신에서 에라스뮈스를 비판한 적이 있었다. 에라스뮈스는 바울의 자기 의”(自己義) 혹은 행위의인개념을 단순히 형식적 규정의 준수로만 해석했다는 것이다.

 

독일어 원문: [...] kritisiert, daß Ersmus bei seiner Paulusdeutung unter der Eigen- oder Werkgerechtigkeit lediglich die Beobachtung zeremonieller Vorschriften verstehe [...].

 

daß Ersmus bei seiner Paulusdeutung unter der Eigen- oder Werkgerechtigkeit lediglich die Beobachtung zeremonieller Vorschriften verstehe

 

= 에라스뮈스는 그의 바울 해석에서 자득적 칭의 혹은 행위적 칭의를 단지 형식적 규정의 준수로 이해한다고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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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실종자, 편영수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09(10).

 

“[...] 그때 브루넬다는 내 뺨을 가볍게 때렸어. 로스만, 기회가 있으면 너도 그녀에게 뺨을 맞아봐. 그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알면 너는 놀랄 거야.”(269)

 

“[...] 그때 브루넬다는 내 뺨을 가볍게 두드렸어. 로스만, 기회가 있으면 너도 그녀가 뺨을 두드리도록 해봐. 그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알면 너는 놀랄 거야.”

 

독일어 원문: »[...] Und Brunelda hat mir dann auf die Wange geklopft. Wenn sich die Gelegenheit findet, Roßmann, laß dir auch einmal von ihr auf die Wange klopfen. Du wirst staunen, wie schön das ist.«

 

klopfen = 두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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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일어난 아우구스티누스 르네상스는 종교개혁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새로 출간된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이 없었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148)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일어난 아우구스티누스 르네상스는 새로 출간된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들이 없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독일어 원문: [...] die Augustin-Renaissance etwa in Wittenberg ist ohne die Neuausgabe seiner Werke nicht vorstellbar.

 

• 원문에 없는 부분을 삭제하고,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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