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른후트 형제단, 2023 말씀, 그리고 하루 - 2023 헤른후트 로중, 김상기홍주민 옮김, 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 2022(11).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충만하고 주님의 선하심은 끝이 없으십니다. 사람들이 주님의 행하심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비를 적게 행하고 있습니다. (2023823)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충만하고 주님의 선하심은 끝이 없으십니다. 사람들이 주님의 행하심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주님의 자비를 너무 하찮게 여깁니다.

 

독일어 원문: Amen ja! Das Herz ist voll und das Wohltun deiner Hände nimmt kein Ende; man sieht's mit Erstaunen an. Jedermann hält sich der Barmherzigkeiten zu gering auf allen Seiten, die der Herr an uns getan.

 

번역을 바로잡았다.

 

jedermann hält sich der Barmherzigkeiten zu gering

 

= 누구나 그 자비를 하찮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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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돌연한 출발,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23(14).

 

그러나 이삼 년이 지나는 동안 바로 게오르크에게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173)

 

그러나 3년이 지나는 동안 바로 게오르크에게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독일어 원문: Im Laufe dieser drei Jahre hatte sich aber gerade für Georg vieles verändert.

 

번역을 바로잡았다.

 

im Laufe dieser drei Jahre

 

= 3년이 가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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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돌연한 출발,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23(14).

 

아버지에게는 아침 식사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식사 시간이었고 신문을 이것저것 읽다 보면 몇 시간씩 늘어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맞은편 벽에는 군인 시절 그레고르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대위복 차림의 그가 손으로 대검을 잡고 근심 없이 웃으며, 자신의 당당한 자태와 제복에 경의를 표할 것을 요구하는 모습이었다.(76)

 

아버지에게는 아침 식사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식사 시간이었고 신문을 이것저것 읽다 보면 몇 시간씩 늘어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맞은편 벽에는 군인 시절 그레고르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소위복 차림의 그가 손으로 대검을 잡고 근심 없이 웃으며, 자신의 당당한 자태와 제복에 경의를 표할 것을 요구하는 모습이었다.

 

독일어 원문: [...] für den Vater war das Frühstück die wichtigste Mahlzeit des Tages, die er bei der Lektüre verschiedener Zeitungen stundenlang hinzog. Gerade an der gegenüberliegenden Wand hing eine Photographie Gregors aus seiner Militärzeit, die ihn als Leutnant darstellte, wie er, die Hand am Degen, sorglos lächelnd, Respekt für seine Haltung und Uniform verlangte.

 

단어를 바로잡았다.

 

Leutnant = 소위

 

대위 = Haupt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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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쨍어, 함께 담을 넘는 하나님, 이일례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2(10).

 

다른 시편처럼 이 시편의 둘째 연에는 원수들에 대한 어떤 저주나 원수의 멸망에 대한 소원도 나타나지 않기에 우리는 원수의 멸망을 추론하여 해석할 수밖에 없다.(108)

 

다른 시편처럼 이 시편의 둘째 연에는 원수들에 대한 어떤 저주나 원수의 멸망에 대한 소원도 나타나지 않기에 우리는 여기에서 원수는 바로 죽음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독일어 원문: Daß in dieser Strophe keine Flüche über den Feind fallen, auch keine Vernichtungswünsche an die Adresse des Feindes gehen, wie dies in anderen Klagepsalmen der Fall ist, stützt unsere Interpretation, „der Feind“ sei hier der Tod.

 

번역을 바로잡았다.

 

A stützt unsere Interpretation, „der Feind“ sei hier der Tod.

 

= A는 우리의 해석을 뒷받침한다, 여기에서 원수는 죽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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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쨍어, 함께 담을 넘는 하나님, 이일례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2(10).

 

궁켈(H. Gunkel)은 시편 13편을 개인 탄원시로 언급했다. 이 시편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어 비탄에 잠긴 자의 탄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탄원의 기도가 어떻게 고난당한 자에게 고난을 직면하고 수용하기 위한 힘을 주는지 알게 된다.(99)

 

궁켈(H. Gunkel)은 시편 13편을 개인 탄원시로 언급했다. 이 시편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은 비탄과 구분되는 탄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탄원이 기도가 되는지를 인상 깊게 알 수 있다. 또 그 기도가 어떻게 고난당한 자에게 고난을 직면하고 수용하기 위한 힘을 주는지 알게 된다.

 

독일어 원문: „Muster eines ‚Klageliedes des Einzelnen‘” hat Hermann Gunkel diesen Psalm genannt. An ihm wird eindrucksvoll erlebbar, was die Klage vom richtungslosen Jammern unterscheidet und wie Klage zum Gebet werden kann, in dem der Leidende die Kraft findet, die Herausforderung des Leids auf- und anzunehmen.

 

번역을 바로잡았다.

 

an ihm wird eindrucksvoll erlebbar, A und B

 

= 시편에서 인상 깊게 체험할 수 있다, AB

 

A = was die Klage vom richtungslosen Jammern unterscheidet

 

= 무엇이 탄원을 방향 없는 한탄과 구별하는지

 

B = wie Klage zum Gebet werden kann

 

= 어떻게 탄원이 기도가 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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