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마르틴 바르트, 마르틴 루터의 신학, 정병식홍지훈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5(9).

 

루터 자신도 그가 지성으로 이해할 수 없음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종에 사로잡히도록자신의 지성을 주고, 가장 단순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른다.(473-474)

 

루터 자신은 그것을 지성으로 이해할 수 없음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는 자기 지성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하고, 가장 단순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른다.

 

독일어 원문: Luther selbst stößt sich nicht daran, dass er das intellektuell nicht anchvollziehen kann. Er gibt seinen Verstand »in den Gehorsam Christi gefangen« und folgt »seinen Worten in aller Schichtheit«.

 

번역을 바로잡았다.

 

sich an A stoßen = A에 구애되다

 

 

Luther selbst stößt sich nicht daran

 

= 루터 자신은 구애되지 않는다

 

dass er das intellektuell nicht anchvollziehen kann

 

= 그가 그것을 지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는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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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마르틴 바르트, 마르틴 루터의 신학, 정병식홍지훈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5(9).

 

그리스도는 빵과 포도주로 그 자신에 대해 말한다. 그 점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471)

 

그리스도는 빵과 포도주로 그 자신을 준다고 자기 제자들에게 확언한다. 그 점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독일어 원문: Christus sagt in Brot und Wein den Seinen sich selbst zu daran darf nicht gerüttelt werden!

 

번역을 바로잡았다.

 

den Seinen sich selbst zusagen

 

= 자기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준다고 약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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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른후트 형제단, 2024 말씀, 그리고 하루 - 2024 헤른후트 로중, 김상기홍주민 옮김, 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 2023(11).

 

2024111, 목요일

 

비천한 자여, 그 넓은 세상에서 선택된 네 자신을 돌아보라! 너는 지금 주님의 것이냐? 여전히 처음 마음으로 충만해 있느냐? 죽음의 고통을 감내하며 자기 백성을 얻는 주님에게 여전히 사로잡혀있어 주님의 영예가 되고 있는가? 카를 베른하르트 가르베

 

공동체여, 그 넓은 세상에서 선택된 네 자신을 돌아보라! 너는 지금 주님의 것이냐? 여전히 처음 영으로 충만해 있느냐? 죽음의 고통을 감내하며 자기 백성을 쟁취하신, 자기 백성의 자랑이신 주님에게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가? 카를 베른하르트 가르베

 

독일어 원문: Prüfe dich, Gemeine, aus der weiten Welt erwählt: Bist du noch die Seine, noch vom ersten Geist beseelt, noch von ihm durchdrungen, der mit Todespein sich sein Volk errungen, ihm ein Ruhm zu sein. Karl Bernhard Garve

 

반역을 바로잡았다.

 

Gemeine = Gemeinde = 공동체

 

이 시의 저자카를 베른하르트 가르베(1763-1841)가 속한 교회 이름을 참고할 것:

 

Herrnhuter Brüdergemeine = 헤른후트 형제공동체

 

 

der[=Geist] mit Todespein sich sein Volk errungen

 

= 죽음의 고통으로 자기 백성을 쟁취한 그분

 

ihm[=dem Volk] ein Ruhm zu sein.

 

= 그 백성에게 영광이려고

 

 

참고 사이트:

 

https://de.wikipedia.org/wiki/Herrnhuter_Br%C3%BCdergemeine

 

https://de.wikipedia.org/wiki/Carl_Bernhard_Ga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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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마르틴 바르트, 마르틴 루터의 신학, 정병식홍지훈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5(9).

 

한편으로는 우선 성례전보다 말씀이 우선이라고 인정하며, 또한 표지적 성격에 강조점을 두고, 결국 성례전을 꼭 필요한 것으로 부각시키려는 경향을 추측할 수 있다.(463)

 

한편으로는 우선 성례전보다 말씀이 우선이라고 인정하며, 또한 표지적 성격에 강조점을 두고, 결국 성례전을 꼭 필요치 않는 것으로 부각시키려는 경향을 추측할 수 있다.

 

독일어 원문: Einerseits könnte sich die Tendenz nahelegen, dem Wort die Priorität gegenüber dem Sakrament in einer Weise einzuräumen, die den Akzent dann stärtker auf den Zeichenchrakter legen und das Abendmahl letzlich als entbehrlich erscheinen lässt.

 

번역을 바로잡았다.

 

entbehrlich = 없어도 되는, 무용의, 쓸데없는

 

die[=Weise] das Abendmahl letzlich als entbehrlich erscheinen lässt

 

= 성찬식을 결국에는 없어도 되는 것으로 보이게 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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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마르틴 바르트, 마르틴 루터의 신학, 정병식홍지훈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5(9).

 

이것은 동시에 루터의 성만찬론을 성숙한 경지로 이끌어 주었다. 소교리문답 포함된 설명은 바로 그 같은 논쟁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다.(462)

 

이것은 동시에 루터의 성만찬론을 성숙한 경지로 이끌어 주었다. ·소교리문답 포함된 설명은 바로 그 같은 논쟁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다.

 

독일어 원문: Damit ist zugleich die »reife Gestalt« von Luthers Abendmahlslehre erreicht; die Darstellung in den Katechismen kann auf jegliche Polemik voll verzichten.

 

번역을 바로잡았다.

 

in den Katechismen = 교리문답서들에서

 

복수(複數)에 주의할 것.

 

아래 저자가 462쪽, 각주 72에 언급한 참고도서를 볼 것:

 

Ulrich Kühn, Sakramente, 1985,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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