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마르틴 바르트, 마르틴 루터의 신학, 정병식홍지훈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5(9).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위한 자리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얻는다.(494)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위한 자리가 만들어지고, 설교 가운데 하나님은 영광을 받는다.

 

독일어 원문: Durch die Predigt wird Platz fütr Gott geschaffen, in ihr kommt Gott zu Ehren:

 

번역을 바로잡았다.

 

in ihr[=der Predigt] kommt Gott zu Ehren

 

= 설교 가운데 하나님은 영광을 받는다

 

중의적 지시가 아닌, 단의적 지시의 번역문을 작성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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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마르틴 바르트, 마르틴 루터의 신학, 정병식홍지훈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5(9).

 

여기서는 예전순서에 따라 개인의 죄를 나열하고 거기에 중보기도 혹은 은혜의 설교가 이어지는 고해가 중요했다.(492)

 

여기서는 예전순서에 따라 개인의 죄를 나열하고 거기에 중보기도 혹은 은사(恩赦)의 선포이어지는 고해가 중요했다.

 

독일어 원문: Dabei handelte es sich um Beichtgebete, die mit der liturgisch geordneten Aufzählung von Einzelsünden verbunden sein konnten und denen Fürbitte oder Gnadenverkündigung folgte.

 

단어를 바로잡았다.

 

Gnadenverkündigung = 은사(恩赦) 선포, 사죄 선언

 

 

아래 예전 순서를 참고할 것:

 

… → Sündenbekenntnis Gnadenverkündigung → …

 

https://www.ekhn.de/themen/gottesdienst/gottesdienst-nachrichten/die-liturgie-ablauf-eines-gottesdiens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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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마르틴 바르트, 마르틴 루터의 신학, 정병식홍지훈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5(9).

 

바울이 이미 언급한 논지에서 볼 때 그는 치료적 대안을 염두에 두었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다시 하나가 되는 지체로서 사용했음에 틀림없다.(490)

 

바울이 이미 언급한 논지(고전 5:5)에서 볼 때 작은 출교 치료적 대안을 염두에 두었고, 바로 의식적으로 집행된 배제로써 작은 출교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다시 하나가 되는 결합에 기여해야 했다.

 

독일어 원문: Im Sinne der schon von Paulus (vgl. I Kor 5,5) vorgetragenen Argumentation war er als therapeutsche Maßnahme gemeint und sollte gerade als bewusst vollzogener Ausschluss der Wiedereingliederung in den Leib Christi dienen.

 

번역을 바로잡고, 빠진 곳을 보완했다.

 

war er[=der kleine Bann] als therapeutsche Maßnahme gemeint

 

= ‘작은 출교는 치유적 조처로 생각되었다

 

er[=der kleine Bann] sollte gerade als bewusst vollzogener Ausschluss der Wiedereingliederung in den Leib Christi dienen

 

= ‘작은 출교는 바로 의식적으로 집행된 배제로써 그리스도의 몸으로 재결합에 봉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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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른후트 형제단, 2024 말씀, 그리고 하루 - 2024 헤른후트 로중, 김상기홍주민 옮김, 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 2023(11).

 

2024122, 월요일

 

친구여, 아몬드 가지가 다시 꽃 피우고 열매 맺는다는 것, 그것은 사랑이 계속 되고 있다는 표지가 아닙니까? 피가 소리친다 해도 목숨이 다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을 아무리 슬플 때에라도 작게 여기지 마십시오. 샬롬 벤 코린

 

→ 친구여, 아몬드 가지가 다시 꽃 피우고 움트는 것, 그것은 사랑이 계속 되고 있다는 표지가 아닙니까? 피는 울부짖으며 생명은 사라지지 않는 것, 그것을 아무리 슬플 때에라도 작게 여기지 마십시오. 샬롬 벤 코린

 

독일어 원문: Freunde, dass der Mandelzweig wieder blüht und treibt, ist das nicht ein Fingerzeig, dass die Liebe bleibt? Dass das Leben nicht verging, so viel Blut auch schreit, achtet dieses nicht gering in der trübsten Zeit. Schalom Ben Chorin 1942

 

번역을 바로잡았다.

 

 

독일어 사전을 참고할 것:

 

treiben =eine Pflanze treibteine Pflanze beginnt zu wachsen, sprießt

 

= 싹트다, 움트다

 

https://www.dwds.de/wb/treiben

 

 

<창세기>를 참고할 것:

 

4,10 Er aber sprach: Was hast du getan? Die Stimme des Blutes deines Bruders schreit zu mir von der Erde.

 

4:1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1942년에 쓴, 이 시 전문을 볼 것:

 

1. Freunde, dass der Mandelzweig

wieder blüht und treibt,

ist das nicht ein Fingerzeig,

dass die Liebe bleibt?

 

2. Dass das Leben nicht verging,

soviel Blut auch schreit,

achtet dieses nicht gering,

in der trübsten Zeit.

 

3. Tausende zerstampft der Krieg,

eine Welt vergeht.

Doch des Lebens Blütensieg

leicht im Winde weht.

 

4. Freunde, dass der Mandelzweig

sich in Blüten wiegt,

bleibe uns ein Fingerzeig,

wie das Leben siegt.

 

1. 동무들아, 편도 가지

다시 피고 움트니

이는 사랑이 지속됨,

가리키는 손가락 아닌가?

 

2. 생명은 없어지지 않음을

그렇게 많은 피 또한 외치니

이를 조금도 경시하지 않기를,

가장 암울한 때에도

 

3. 수천 명을 전쟁이 짓이겨

한 세상이 망하구나

하나, 생명이 피어나는 승리가

가벼이 바람 속에 흔들려

 

4. 동무들이여, 편도 가지

꽃에 묻혀 휘어지니

우리에겐 가리키는 손가락.

승리한다오, 생명이

 

(私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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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마르틴 바르트, 마르틴 루터의 신학, 정병식홍지훈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5(9).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특별한 점이 있다.(489)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불균형이 있다.

 

독일어 원문: Trotzdem bleibt hier eine Unausgewogenheit:

 

단어를 바로잡았다.

 

불균형 = Unausgewogenheit Ausgewogenheit =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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