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그 결과 파피아스가 이 두 사람을 알고 있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유세베우스는 분명하게 이 사실을 긍정한다.(참조. HE III 39, 15. 16. 17)(764)

 

그 결과 파피아스가 이 두 사람을 알고 있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유세베우스는 분명하게 이 사실을 긍정한다.(HE III 39, 7) 이는 그가 전하는 파피아스 전승의 신빙성을 확고히 하기 위함이다.(참조. HE III 39, 15. 16. 17)

 

독일어 원문: [...] so dass gefragt werden muss, ob Papias beide kannte. Euseb bejaht dies nachdrücklich (HE III 39, 7), um so die Glaubwürdigkeit der von ihm überlieferten Papiastradition zu sichern (vgl. HE III 39, 15. 16. 17).

 

번역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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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장로의 공식적인 신분도, 요한39절에 언급되는 그의 대적자의 공식적인 신분도 입증되지 않는다.(763)

 

장로의 공식적인 신분도, 요한39절에 언급되는 그의 대적자 디오드레베 공식적인 신분도 입증되지 않는다.

 

독일어 원문: Weder für den Presbyter noch für seinen in 3Joh 9 erwähnten Gegenspieler Diotrephes ist eine Amtsstellung wirklich nachweisbar.

Täger

 

번역을 바로잡았다.

 

요한39절을 볼 것: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Ich habe der Gemeinde geschrieben; aber Diotrephes, der unter ihnen der Erste sein will, weist uns 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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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장로가 쓴 두 개의 편지는 유대 그리스도교적 특징을 지닌 요한 학파의 시작, 개별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 가현설 그리스도론의 등장을 반영한다.(760)

 

장로가 쓴 두 개의 편지는 유대 그리스도교적 특징을 지닌 요한 학파의 시작, 개별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 가현설 그리스도론의 등장을 반영한다.

 

독일어 원문: Die beiden Presbyterbriefe spiegeln die judenchristlich geprägten Anfänge der johanneischen Schule, die Konflikte zwischen einzelnen Gemeindeleitern und das Aufkommen einer doketischen Christologie wider.

 

번역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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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4) 생명: ‘생명’(ζωή)은 요한1(13)와 요한복음(36)에서 핵심적 신학 개념이다. 그러나 이 개념이 두 개의 작은 요한서신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는 죽음’(θάνατος) 마찬가지다.(758)

 

(4) 생명: ‘생명’(ζωή)은 요한1(13)와 요한복음(36)에서 핵심적 신학 개념이다. 그러나 이 개념이 두 개의 작은 요한서신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는 죽음’(θάνατος, 요한16, 요한복음 8) 마찬가지다.

 

독일어 원문: 4) ζωή = „Leben“ ist ein zentraler theologischer Begriff des 1Joh (13mal) und des JohEv (36mal), erscheint aber wie θάνατος = „Tod“ (1Joh 6mal; JohEv 8mal) in den kleinen Johannesbriefen n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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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그리스도론 칭호의 구분은 매우 두드러진 현상이다. ‘예수’(Ἰησος)요한복음에 24, 요한1서에 12, 요한2서에 2회 나오며, 요한3서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755)

 

그리스도론 칭호의 구분은 매우 두드러진 현상이다. ‘예수’(Ἰησος)요한복음에 244, 요한1서에 12, 요한2서에 2회 나오며, 요한3서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독일어 원문: Sehr auffällig ist die Verteilung der christologischen Titel: Ἰησος ist im JohEv 244mal, im 1Joh 12mal, im 2Joh 2mal und im 3Joh nicht beleg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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