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네 크리스트 폰 베델, 『에라스무스의 생애와 사상』, 정미현 옮김, 새물결플러스, 2024(5).
① 그리고 [에라스무스는] 구 미사 형식을 재도입하도록 취리히를 움직이라고 시의회에 권고했다. 그러면서도 동맹 도시와의 전쟁을 불사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1525년 1월 9일에 열린 회의에서 바젤시의회가 대표들에게 부여한 지침은 이를 따르고 있다.(210쪽)
→ 그리고 [에라스무스는] 구 미사 형식을 재도입하도록 취리히를 움직이라고 시의회에 권고했다. 그러면서도 동맹 도시와의 전쟁을 불사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1525년 1월 9일에 열린 스위스 의회에 참석한, 바젤시가 자기 대표들에게 부여한 지침은 이를 따르고 있다.
독일어 원문: Erasmus schlug den Ratsherren vor, Zürich zu bewegen, die alte Messform wieder einzuführen, es aber nicht mit der verbündeten Stadt auf einen Krieg ankommen zu lassen. Das entsprach den Instruktionen, die Basel seinen Abgeordneten an die Tagsatzung vom 9. Januar 1525 mitgab.
② 한편 1524년 3월에 제국 의회는 금식 규정을 어길 시 투옥과 벌금으로 다스리기로 결의했다.(217쪽)
→ 한편 1524년 3월에 스위스 의회는 금식 규정을 어길 시 투옥과 벌금으로 다스리기로 결의했다.
독일어 원문: Die Tagsatzung hatte im März 1524 beschlossen, Fastenbruch mit Gefängnis und Geldbuße zu ahnden.
• 번역을 바로잡았다.
• Tagsatzung = 스위스 의회
https://www.dwds.de/wb/Tagsatzung#d-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