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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2일, 작가 빌헬름 게나찌노가 죽었다고 독일 한저출판사 대변인이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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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서툰 시절이다.
어린 아들은 유치원에서, 독일 아이들과 낯선 언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나는 어린 아들이 독일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응급상황을 대비해, 유치원 내 작은 방에서 당분간 1시간은 대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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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에서, 아무도 내게 말 붙이지 않는 침묵 속에서, 빌헬름 게나찌노의 언어를 모국어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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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오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눈은 새로운 광경을 수없이 연출했다. 시계탑의 숫자판이 눈에 반쯤 덮인다. 삼 분이 지나자 담벼락에 세워진 자전거의 안장이 하얗게 변한다. 며칠 전부터 길도랑에 있던 빈 병이 완전히 사라진다. 이제 눈은 나를 유혹한다. 잠시 후에 나는 집을 나섰고 눈 덮인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자동차들은 가만가만 아주 조심스럽게 운행을 했다. 싸움이라도 하려는 듯, 전차는 천천히 눈발을 뚫고 나아갔다. 어떤 어린아이가 작은 소리로 훌쩍훌쩍 울었다. 아마도 그 아이는 자기가 눈에 파묻힐까 봐 두려운 모양이었다. 다른, 좀 더 큰 아이들은 혀를 쑥 내민 채 커다란 눈송이가 자신들의 입 속으로 곧장 날아들도록 하는데 골몰하고 있었다. 눈송이가 입 안으로 들어오면, 아이들은 재빨리 눈을 감고서 입 안의 색다른 차가움에 어찌할 줄 몰랐다. 나는 어떤 우표 가게의 진열장에서 몇 장의 그림엽서를 발견했다. 그 가운데 한 장은 바로 지금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전차 한 대와 자동차 한 대가 눈 속을 달리는. 그때 나는 별안간, 어째서 흰 눈이 유쾌함을 불러일으키는가를 깨달았다. 그것은 하늘 가득히 눈이 내림으로써 세계는 수 분 내에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가게에 들어가서 이 그림엽서를 샀다. 눈은 세계를 아주 경쾌하고 아주 신속하게 변화시키기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변화란 아주 덧없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몇 분 후에 눈은 그쳤다. 영원히 쌓여 있을 것 같았던 눈은 움츠려 들다가 아예 녹거나 곤죽으로 변했다. 아이들의 들떴던 마음도 사라지고, 사물은 본래의 제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내가 지니고 있던 그림엽서에서만은 아직도 계속해서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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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나요, 고마워요!
내 사랑, 빌헬름 게나찌노!
6.
Wilhelm Genazino (1943-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