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카우프만,종교개혁의 역사, 황정욱 옮김, , 2017(10).

 

누락

 

복음의 깃발 아래서 또한 초기 자본주의의 경제적 근대화 과정에 속한 것들 가운데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였다. 몇몇 지역에서는 도시 봉기와 산악 지대 광부들의 폭동과 농민전쟁사이에 협조가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다양한 충돌의 징후라고 표현할 수 있다.(493)

 

복음의 깃발 아래 또한 초기 자본주의의 경제적 근대화 과정의 희생자와 패배자에 속한 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몇몇 지역에서는 도시 봉기와 광산 지대 광부들의 폭동과 농민전쟁사이에 상호작용이 생겼는데, 농민전쟁 다양한 갈등의 증후군이라 표현할 수 있다.

 

독일어 원문: Unter dem Panier des Evangeliums sammelten sich auch manche derer, die zu den Opfern und Verlierern der frühkapitalistischen ökonomischen Modernisierungsprozesse gehörten. In einigen Regionen kam es zu einem Zusammenspiel zwischen städtischen Aufstandsbewegungen, Revolten der Bergknappen in den Montanregionen und dem Bauernkrieg, der als Syndrom unterschiedlicher Konflikte zu beschreiben ist.

 

manche derer, die zu A gehörten

 

= A에 속했던 자들의 많은 사람들이

    

der[=der Bauernkrieg] als A zu beschreiben ist

 

= ‘농민전쟁A라 기술할 수 있다

 

빠진 곳을 보완하고,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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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카우프만,종교개혁의 역사, 황정욱 옮김, , 2017(10).

 

외르크 폰 루카스 크라나흐가 1522년에 루터를 융커(Junker) 시각적으로 연출함으로써 귀족들의 마음을 본격적으로 사로잡으려고 했다면, 농민의 경우 카르스트한스라는 인물[...], 두 명의 스위스 농민의신의 맷돌[...], 그리고 다른 많은 텍스트를 통해서 농민과 종교개혁 사이의 정신적 다리를 놓았던 것은 차라리 종교개혁적 사고를 지닌 남독일의 인문주의자들이었다.(492)

 

루터1522년 융커 외르크의 복장으로 루카스 크라나흐에 의해서 시각적으로 연출된 귀족들의 마음을 본격적으로 사로잡으려고 했다면, 농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오히려 종교개혁적 사고를 지닌 남독일의 인문주의자들이었다. 이 인문주의자들은 카르스트한스라는 인물[...], 두 명의 스위스 농민의신의 맷돌[...], 그리고 다른 많은 텍스트를 통해서 농민과 종교개혁 사이의 정신적 다리를 놓았다.

    

독일어 원문: Hatte Luther, 1522 im Habit des Junkers Jörg von Lucas Cranach visuell inszeniert, um den Adel regelrecht geworben, so waren es im Falle der Bauern eher reformationsgesinnte oberdeutsche Humanisten, die [...] mentale Brücken zwischen Bauerntum und Reformation gebaut hatten.

 

주문장:

 

Hatte Luther, [A], um den Adel regelrecht geworben

 

= 루터가 귀족들의 마음을 본격적으로 사로잡으려고 했다면

 

분사구문:

 

A = 1522 im Habit des Junkers Jörgvon Lucas Cranach visuell inszeniert

 

= 1522년 융커 외르크의 복장으로 루카스 크라나흐에 의해서 시각적으로 연출된

 

융커 외르크 = 1521-1522, 바르트부르크 성()에 은둔했을 당시 루터의 가명

 

루카스 크라나흐 = ‘융커 외르크의 루터 초상화를 그린 화가

 

아래 그림을 볼 것:

 

 

 

루카스 크라나흐,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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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카우프만, 종교개혁의 역사, 황정욱 옮김, , 2017(10).

 

1522년 여름에 지킹겐의 주도 아래 남부 라인 지역 기사들의 형제 동맹이 형성되었는바, 이것은 그것에 비견될 만한 프랑켄 귀족 연합과 연결되어 있었다.(490)

 

1522년 여름에 지킹겐의 주도 아래 라인강 상류 지역 기사들의 형제 동맹이 형성되었는바, 이것은 그것에 비견될 만한 프랑켄 귀족 연합과 연결되어 있었다.

 

독일어 원문: Im Sommer 1522 formierte sich unter Sickingens Führung eine »brüderliche Vereinigung« der oberrheinischen Ritterschaft, die mit einer vergleichbaren fränkischen Adelseinigung in Verbindung stand.

 

oberrheinisch = ‘라인강 상류의

 

oberdeutsch남독일의와 구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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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카우프만,종교개혁의 역사, 황정욱 옮김, , 2017(10).

 

누락

 

보름스, 슈파이어, 마인츠 혹은 스트라스부르에서 공표된 숱한 익명의 팸플릿들은 지킹겐과 후텐 주변에 있는 민첩한 종교개혁 활동가 부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489-490)

 

보름스, 슈파이어, 마인츠 혹은 스트라스부르에서 공표된 숱한 익명의 1520년대 초, 팸플릿들은 지킹겐과 후텐 주변에 있는 민첩한 종교개혁 활동가 부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일어 원문: [...] manche der zahlreichen anonymen Flugschriften der frühen zwanziger Jahre, die in Worms, Speyer, Mainz oder Straßburg erschienen sind, möchte man der agilen Truppe der Reformationsaktivisten im Umkreis Sickingens und Huttens zuschreiben.

 

빠진 곳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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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카우프만,종교개혁의 역사, 황정욱 옮김, , 2017(10).

 

[...] 농민전쟁은 종교개혁의 성격을 바꿔 놓은 대화재였다. 농민전쟁 후 합법적인 권력자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평신도의 현실 참여는 종교개혁의 신학적·정치적 지지자들에게서 지원을 얻지 못했다.(488)

 

[...] 농민전쟁은 종교개혁의 성격을 바꿔 놓은 대화재였다. 농민전쟁 후 합법적인 당국의 권력자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평신도의 현실 참여는 종교개혁의 신학적·정치적 주역들에게서 지원을 얻지 못했다.

 

독일어 원문: [...] der Bauerkrieg war ein Flächenbrand, der auch die Reformation in ihrem Charakter veränderte. Nach dem Bauernkrieg verlor ein Engagement von Laien, das nicht von den Inhabern legitimer obrigkeitlicher Gewalt ausging, seinen Rückhalt bei den theologischen und politischen Protagonisten der Reformation.

 

Protagonist = 주역, 핵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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