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카우프만,종교개혁의 역사, 황정욱 옮김, , 2017(10).

 

외르크 폰 루카스 크라나흐가 1522년에 루터를 융커(Junker) 시각적으로 연출함으로써 귀족들의 마음을 본격적으로 사로잡으려고 했다면, 농민의 경우 카르스트한스라는 인물[...], 두 명의 스위스 농민의신의 맷돌[...], 그리고 다른 많은 텍스트를 통해서 농민과 종교개혁 사이의 정신적 다리를 놓았던 것은 차라리 종교개혁적 사고를 지닌 남독일의 인문주의자들이었다.(492)

 

루터1522년 융커 외르크의 복장으로 루카스 크라나흐에 의해서 시각적으로 연출된 귀족들의 마음을 본격적으로 사로잡으려고 했다면, 농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오히려 종교개혁적 사고를 지닌 남독일의 인문주의자들이었다. 이 인문주의자들은 카르스트한스라는 인물[...], 두 명의 스위스 농민의신의 맷돌[...], 그리고 다른 많은 텍스트를 통해서 농민과 종교개혁 사이의 정신적 다리를 놓았다.

    

독일어 원문: Hatte Luther, 1522 im Habit des Junkers Jörg von Lucas Cranach visuell inszeniert, um den Adel regelrecht geworben, so waren es im Falle der Bauern eher reformationsgesinnte oberdeutsche Humanisten, die [...] mentale Brücken zwischen Bauerntum und Reformation gebaut hatten.

 

주문장:

 

Hatte Luther, [A], um den Adel regelrecht geworben

 

= 루터가 귀족들의 마음을 본격적으로 사로잡으려고 했다면

 

분사구문:

 

A = 1522 im Habit des Junkers Jörgvon Lucas Cranach visuell inszeniert

 

= 1522년 융커 외르크의 복장으로 루카스 크라나흐에 의해서 시각적으로 연출된

 

융커 외르크 = 1521-1522, 바르트부르크 성()에 은둔했을 당시 루터의 가명

 

루카스 크라나흐 = ‘융커 외르크의 루터 초상화를 그린 화가

 

아래 그림을 볼 것:

 

 

 

루카스 크라나흐,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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