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그의 전체 작품은 자인-비트겐슈타인 백작의 주치의이던 콘라트 칸츠(Conrad Kanz)1709년에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과 함께 평화의 길을 열다(Eröffneter Weg zum Frieden mit Gott und allen Creaturen, 세 권, 1747)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 작품의 제목은 디펠이 살아 있을 때 선택한 것이었다.(241)

 

그의 전체 작품은 자인-비트겐슈타인 백작의 주치의이던 콘라트 칸츠(Conrad Kanz)하나님과 모든 피조물과 함께 평화의 길을 열다(Eröffneter Weg zum Frieden mit Gott und allen Creaturen, 세 권, 1747)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 작품의 제목은 1709년에 디펠이 살아 있을 때 선택한 것이었다.

 

독일어 원문: Seine sämtlichen Schriften wurden von Johann Conrad Kanz, dem Leibarzt des Grafen von Wittgenstein-Berleburg, herausgegeben unter dem schon 1709 von Dippel gewählten Titel „Eröffneter Weg zum Frieden mit Gott und allen Creaturen“ (3 Bde., Berleburg 1747).

 

번역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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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디펠은 자인-비트겐슈타인-베를레부르크(Sayn-Wittgenstein-Berleburg)카시미르(Casimir) 백작의 보호 아래 베를레부르크에서 생애 마지막 몇 년을 보냈다.(240-241)

 

디펠은 자인-비트겐슈타인-베를레부르크(Sayn-Wittgenstein-Berleburg)카지미르(Casimir) 백작의 보호 아래 베를레부르크에서 생애 마지막 몇 년을 보냈다.

 

독일어 원문:

Die letzten Jahre seines Lebens verbrachte Dippel in Berleburg unter der Protektion des toleranten Grafen Casimir von Sayn-Wittgenstein

 

인명을 바로잡았다.

 

https://de.wikipedia.org/wiki/Casimir_(Sayn-Wittgenstein-Berleburg)

 

 

아래, 독일어 발음 사전을 볼 것:

 

Duden Aussprachewörterbuch, 2005,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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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디펠은 네덜란드로 탈출하여 1711라이덴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위트레흐트 인근 마르센에서 의사이자 작가로 살았다.(240)

 

디펠은 네덜란드로 탈출하여 1711레이던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위트레흐트 인근 마르센에서 의사이자 작가로 살았다.

 

독일어 원문: Dippel entwich in die Niederlande, wo er 1711 den medizinischen Doktorgrad in Leiden erwarb und in Maarssen bei Utrecht als Arzt und Schriftsteller lebte.

 

지명을 바로잡았다.

 

Leiden = [ˈlɛidə(n)] = 레이던

 

 

독일식 지명은 해당 언어권 지명으로 보정할 것:

 

Reval = Tallinn =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Åbo = Turku = (핀란드 도시) 투르쿠

 

 

아래, 지명도 레이던으로 수정할 것:

 

해임된 후 라이덴, 막데부르크, 뤼벡에서 공직을 맡은 베르덴하겐은(71)

 

독일어 원문: der nach seiner Entlassung politische Amter in Leiden, Magdeburg und Lübeck bekleidete

 

1658년 여름에 그는 라이덴으로 가서(82)

 

독일어 원문: Er ging im Sommer 1658 nach Lei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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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1697년부터 디펠은 루터교 정통주의에 반대하는 일련의 논쟁적인 글을 독일어로 연이어 발표했는데, ‘크리스티아누스 데르노크리투스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풍자적인 제목을 달았다.(238)

 

1697년부터 디펠은 루터교 정통주의에 반대하는 일련의 논쟁적인 글을 독일어로 연이어 발표했는데, ‘크리스티아누스 데르노크리투스라는 가명−이 가명을 쓴 사람이 디펠 자신임을 곧 스스로 밝혀던 사용하고 풍자적인 제목을 달았다.

 

독일어 원문: Seit 1697 hat Dippel in schneller Folge eine Reihe polemischer Schriften gegen die lutherische Orthodoxie ausgehen lassen, in deutscher Sprache, häufig mit satirischen Titeln, meist unter dem von ihm selbst bald gelüfteten Pseudonym „Christianus Democritus“.

 

빠진 번역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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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그와 함께 기센으로 온 아놀드와 그의 친구 요한 안드레아스 쉴링(Johann Andreas Schilling), 요한 크리스티안 랑에(Johann Christian Lange)와의 만남은 디펠이 내적으로 경건주의에 입문하는데 도움을 주었다.(238)

 

아놀[]와의 만남 그리고 아놀[트]와 함께 기센으로 온 아놀[]의 친구 요한 안드레아스 쉴링(Johann Andreas Schilling)요한 크리스티안 랑에(Johann Christian Lange)와의 만남은 디펠이 내적으로 경건주의에 입문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독일어 원문: Die Begegnung mit Gottfried Arnold und dessen mit ihm nach Gießen gekommenen Freunden Johann Andreas Schilling und Johann Christian Lange brachte die innerlich schon vorbereitete Entscheidung für den Pietismus, [...]

 

번역을 바로잡았다.

 

https://de.wikipedia.org/wiki/Gottfried_Arnold_(Theolo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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