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나르치스와 골드문트(세계문학전집 66), 임홍배 옮김, 민음사, 2017(45).

헤르만 헤세,나르치스와 골드문트(헤르만 헤세 선집 7), 윤순식 옮김, 현대문학, 2013.

 

in die Verborgenheiten seiner Art und seines Lebens eindringen

 

= 그의 본성과 그의 삶의 비밀 속으로 파고들다

 

독일어 원문: Dieser Meister war ihm wichtig, er liebte ihn und haßte ihn ebenso, er ließ ihm keine Ruhe, und so drang der Schüler mit Liebe und mit Mißtrauen, mit immer wacher Wißbegierde in die Verborgenheiten seiner Art und seines Lebens ein.

 

 

명인이 골드문트에겐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스승은 골드문트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미워했다. 그는 골드문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제자는 애정과 불신을 동시에 느끼면서, 갈수록 깨어나는 지식욕에 이끌려 스승의 은둔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임홍배:253-254)

 

명인이 골드문트에겐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스승은 골드문트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미워했다. 그는 골드문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제자는 애정과 불신을 동시에 느끼면서, 갈수록 깨어나는 지식욕에 이끌려 스승의 본성과 삶의 비밀 속으로 파고들었다.

 

[...] 스승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스승은 골드문트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미워했고, 잠시의 휴식도 주지 않았다. 그러자 제자도 스승에게 애정과 불신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고, 점점 깨어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스승의 은둔 생활의 방식과 비밀을 파고들게 되었다.(윤순식:245-246)

 

[...] 스승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스승은 골드문트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미워했고, 잠시의 휴식도 주지 않았다. 그러자 제자도 스승에게 애정과 불신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고, 점점 깨어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스승의 본성과 삶의 비밀 속으로 파고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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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코펜하겐:268-277, 한정애 옮김)

 

누락

 

왕은 마지막 편지에서 부겐하겐이 덴마크 왕국을 위해 실행한 모든 일에 커다란 감사를 표했다.(277)

 

왕은 현존하는, 마지막 편지에서 부겐하겐이 덴마크 왕국을 위해 실행한 모든 일에 커다란 감사를 표했다.

 

독일어 원문: Im letzten Brief des Königs, der erhalten blieb, brachte er seine große Dankbarkeit zum Ausdruck für alles, was Bugenhagen für das Dänische Reich geleistet hatte.

 

빠진 부분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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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코펜하겐:268-277, 한정애 옮김)

 

그러나 부겐하겐은 15423덴마크 교회법을 모범으로 삼은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공작령 개신교 교회법이 결의된 레겐스부르크 주의회에는 참석했다.(276)

 

그러나 부겐하겐은 15423덴마크 교회법을 모범으로 삼은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공작령 개신교 교회법이 결의된 렌츠부르크 의회에는 참석했다.

 

독일어 원문: Im März 1542 nahm Bugenhagen allerdings an dem wichtigen Landtag in Rendsburg teil, auf dem eine evangelische Kirchenordnung für die Herzogtümer Schleswig und Holstein beschlossen wurde, die die dänische Kirchenordnung zum Vorbild hatte.

 

Rendsburg = 렌츠부르크

 

지명을 바로잡았다.

 

 

 

렌츠부르크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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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1479년에 창설된 이 대학은 내전(1534-36) 중에 해체되었다. 대학의 총장은 항상 로스킬데의(Roskilde)의 가톨릭 감독이 맡았다. 그러나 이제는 대학이 새롭게 체계화되었다.(274)

 

1479년에 창설된 이 대학은 내전(1534-36) 중에 해체되었다. 대학의 사무총장 항상 로스킬데의(Roskilde)의 가톨릭 주교가 맡았다. 그러나 이제는 대학이 새롭게 체계화되었다.

 

독일어 원문: Im Bürgerkrieg (1534-1536) war die alte, 1479 gegründete Universität aufgelöst worden. Ihr Kanzler war immer der katholische Bischof von Roskilde gewesen. Jetzt wurde die Universität neu geordnet.

 

Kanzler = 사무총장

 

= leitender Beamter in der Verwaltung einer Hochschule

 

총장 = Rektor

 

단어를 바로잡았다.

 

 

276쪽 번역문을 볼 것:

 

왕은 1년 후 다시 한 번 그에게 코펜하겐 대학의 총장직을 제안했지만, 부겐하겐은 이번에도 거절했다.

 

Nach einem Jahr versuchte der König es noch einmal und bot ihm die Stelle des Direktors der Kopenhagener Universität an. Auch diesmal lehnte Bugenhagen 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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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덴마크에서는 종교개혁파 왕 크리스티안 3세와 종교개혁자 부겐하겐 사이의 관계가 점점 더 친밀해졌다. 1539년 부겐하겐이 비텐베르크로 되돌아간 이후에도 좋은 관계가 유지되었다. 그들은 80편에 이르는 서신을 주고받았다.(275)

 

덴마크에서는 종교개혁파 왕 크리스티안 3세와 종교개혁자 부겐하겐 사이의 관계가 점점 더 친밀해졌다. 1539년 부겐하겐이 비텐베르크로 되돌아간 이후에도 좋은 관계가 유지되었다. 이는 그들이 주고받은 방대한 양의 편지로 분명히 추정할 수 있으며, 그 편지들 가운데 약 80통의 편지가 남아있다.

 

독일어 원문: In Kopenhagen war das Verhältnis zwischen dem Reformationskönig Christian III. und dem Reformator Johannes Bugenhagen immer vertrauter geworden. Es blieb auch erhalten, nachdem Bugenhagen 1539 nach Wittenberg zurückgekehrt war. Dies geht aus ihrem umfangreichen Briefwechsel deutlich hervor, von dem ungefähr 80 Briefe erhalten sind.

 

dies geht aus ihrem umfangreichen Briefwechsel deutlich hervor

 

= 이는 그들이 주고받은 방대한 양의 편지로 분명히 추정된다

 

von dem[=Briefwechsel] ungefähr 80 Briefe erhalten sind

 

= 주고받은 그 편지들 가운데 약 80통의 편지가 남아있다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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