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융, 세계 교회사, 이준섭 옮김, 동연, 2024(11).

 

사람들 가운데 또한 군인들 사이에서도 평화에 대한 열망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협상 장소로 오스나브뤼크(Osnabrück)와 뮌스터(Münster)가 선택되었다.(209)

 

사람들 가운데 또한 군인들 사이에서도 평화에 대한 열망은 커졌다. 1641년부터 협상이 논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협상 장소로 오스나브뤼크(Osnabrück)와 뮌스터(Münster)가 선택되었다.

 

독일어 원문: In der Bevölkerung, aber auch bei den Krieg Führenden selbst wuchs die Sehnsucht nach Frieden. Von 1641 an wurde verhandelt. Als Verhandlungsorte wurden Osnabrück und Münster (Westf.) gewählt.

 

빠진 번역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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