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고향 안할트로 돌아온 아른트는 처음에는 학교 교사로 활동했고, 1583년 발렌슈테트(Ballenstedt)에서 부목사가 되었으며, 바데보른(Badeborn)에서 목사로 임직했다. 칼뱅주의에 경도된 요한 게오르크 폰 안할트(Johann Georg von Anhalt, 1586-1618)가 세레식에서 행하던 구마 의식(Taufexorzismus)폐지하라고 요구했는데, 아른트만 유일하게 이 요구를 거부했다.(58)

 

고향 안할트로 돌아온 아른트는 처음에는 학교 교사로 활동했고, 1583년 발렌슈테트(Ballenstedt)에서 부목사가 되었으며, 1584 바데보른(Badeborn)에서 목사로 임직했다. 칼뱅주의에 경도된 군주 요한 게오르크 폰 안할트(Johann Georg von Anhalt, 1586-1618)가 세례식에서 행하던 구마 의식(Taufexorzismus)폐지하라고 자신의 목사들에게 요구했는데, 아른트만 유일하게 이 요구를 거부했다.

 

독일어 원문: In seine anhaltische Heimat zurückgekehrt, wurde Arndt wohl zuerst Schullehrer, 1583 Diakon in Ballenstedt und 1584 Pfarrer in Badeborn. Als der dem Calvinismus zuneigende Johann Georg von Anhalt (1586-1618) von seinen Pfarrern die Abschaffung des Taufexorzismus verlangte, verweigerte Arndt als einziger den Gehorsam und mußte Amt und Heimat verlassen.

 

빠진 번역을 보완하고, 도움말을 추가했다.

 

https://de.wikipedia.org/wiki/Johann_Arndt

 

https://de.wikipedia.org/wiki/Johann_Georg_I._(Anhalt-Dess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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