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 김순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23(11).

 

이렇게 제자와 타인의 만남은 두 사람이 마주하여 의견과 기준과 판단을 직접 나누는 만남이 아니다. 제자는 예수를 거쳐서만 타인을 만날 수 있다. 타인을 위한 투쟁, 곧 타인의 소명, 타인의 사랑, 타인의 사면, 타인의 재판을 위한 투쟁은 이 지점에서만 유효하다. 따라서 제자는 타인을 공격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는 예수의 진정한 사랑 속에서 타인에게 다가가 무조건의 친교를 제공할 뿐이다.(265)

 

이렇게 제자와 타인의 만남은 두 사람이 마주하여 의견과 기준과 판단을 직접 나누는 만남이 아니다. 제자는 예수를 거쳐서만 타인을 만날 수 있다. 타인을 위한 투쟁, 예수의 부르심, 예수의 사랑, 예수의 은혜, 예수의 심판만이 여기에서 유효하다. 따라서 제자는 타인을 공격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는 예수의 진정한 사랑 속에서 타인에게 다가가 무조건의 친교를 제공할 뿐이다.

 

독일어 원문: So ist die Begegnung des Jüngers mit dem Anderen niemals die freie Begegnung zweier Menschen, die in der Unmittelbarkeit ihre Ansichten, Maßstäe, Urteile gegeneinander führen. Vielmehr kann der Jünger dem Anderen nur als dem begegnen, zu dem Jesus selbst kommt. Der Kampf um den Anderen, sein Ruf, seine Liebe, seine Gnade, sein Gericht kommt hier allein zur Geltung. Der Jünger hat also nicht eine Position bezogen, von der aus der Andere angegriffen wird, sondern er tritt in der Wahrhaftigkeit der Liebe Jesu zu dem Anderen mit dem bedingungslosen Angebot der Gemeinschaft.

 

번역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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