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도시의 중심부에 시의회가 건립되어 있는 구조는 이 도시의 중요성을 시사해준다. 울름의 대성당은울름 교회의 탑은 19세기 완성된 모든 교회 탑의 원형이 되었다종교개혁 시대에는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커다란 교구교회였다.(538)

 

시민들이 시 중심에 건립한 건물을 통해 울름 시는 중요성에 대한 요구에 형태를 부여했다. 그것은 울름 대성당울름 교회의 탑은 19세기 완성된 이래 세계의 모든 교회 탑을 능가한다으로, 종교개혁 시대에는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커다란 교구교회였다.

 

독일어 원문: Ihrem Anspruch auf Bedeutung gab sie[=die Donaustadt=Ulm] Gestalt durch das Gebäude, das die Bürgerschaft in ihrem Zentrum errichtete: Das Ulmer Münster, dessen Turm seit seiner Fertigstellung im 19. Jahrhundert alle Kirchtürme der Welt überragt, war zur Zeit der Reformation die größte Pfarrkirche im Heiligen Römischen Reich.

 

Gestalt geben = 형태를 부여하다

 

Bürgerschaft = 시민(전체)

 

überragen = 뛰어나다, 능가하다

 

참고할 것:

 

울름 대성당 탑 높이 = 161.53 m

 

단어와 문장을 바로잡았다.

 

 

 

울름 대성당, 1643년경

울름 대성당,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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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537:

 

울름대성당으로 둘러싸인 무역도시

 

울름대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무역도시

 

독일어 원문: Ulm - Handelsstadt rund ums Münster

 

 

rund um A = A를 중심으로 빙 둘러서

 

문장을 바로잡았다.

 

 

 

아래 그림을 볼 것:

  

그림 중앙에 보이는 건물 = 울름 대성당

  

울름 1597

울름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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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1550카트리나는 가톨릭 사제들을 위해 목사관을 비워줘야 했다.(522)

 

1550리나는 가톨릭 사제 위해 목사관을 비워줘야 했다.

 

독일어 원문: 1550 hatte Katharina das Pfarrhaus für einen katholischen Geistlichen frei machen mussen.

 

für einen katholischen Geistlichen

 

= 가톨릭 사제 한 사람을 위해

 

주의할 것: 복수가 아니라 단수.

 

인명과 단어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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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그 후 카타리나는 루터 정통주의 신봉자들인 스트라스부르크 종교개혁자들의 제2세대와 갈등을 겪게 된다. 다름 면에서 그녀는 신령주의자인 카스퍼 슈벵크벨트(Caspar von Schwenckfeld)와 정기적으로 서신을 교환했다. 그녀는 1531년과 1533년 사이에 그를 은닉시켜 준 것과 관련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카타리나는 1557년에 츠빙글리와 그의 동료들이 이단으로 규정한 정교회의 젊은 설교자인 루드비히 라부스(Ludwig Rabus)와 나눈 서신들을 출판했다.(521-522)

 

그 후 카타리나는 스트라스부르 종교개혁자들의 제2세대, 즉 루터 정통주의 신봉자들과 갈등을 겪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신령주의자인 카스파 슈벵크(Caspar von Schwenckfeld)와 정기적으로 서신을 교환하고, 1531년과 1533년 사이에 그를 은닉시켜 준 것과 관련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카타리나는 1557년에 정통주의의 젊은 설교자인 루트비히 라부스(Ludwig Rabus)츠빙글리와 그의 추종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한와 나눈 서신들을 출판했다.

 

독일어 원문: In den folgenden Jahren geriet Katharina in Konflikt mit der „zweiten Generation“ der Straßburger Reformatoren, nämlich mit den Anhängern der lutherischen Orthodoxie. Man warf ihr unter anderem vor, mit dem Spiritualisten Caspar von Schwenckfeld regelmäßig Briefe ausgetauscht und ihn zwischen 1531 und 1533 beherbergt zu haben. So veröffentlichte sie 1557 ihren Briefwechsel mit Ludwig Rabus, einem jungen Prediger der „Orthodoxie“, der Zwingli und seine Anhänger als Ketzer gebrandmarkt hatte.

 

unter anderem = 특히, 무엇보다도

 

der[=Ludwig Rabus] Zwingli und seine Anhänger als Ketzer gebrandmarkt hatte

 

= 루트비히 라부스는 츠빙글리와 그의 추종자들을 이단자로 낙인찍었었다

 

단어와 인명, 문장을 바로잡았다.

 

 

 

카스파 슈벵크펠트(1490-1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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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1548년 남편 마테우스 젤이 죽었을 때, 카타리나는 부처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말씀을 마음에 붙잡고 그 말씀을 함께 모인 사람들에게 증거했다. 하지만 신의 입장 표명이 설교로는 충족될 수 없었기에, 그녀는 책으로 출판했다. 그 안에서 카타리나는 설교자나 제자의 직무를 감당하기를 원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오직 사랑의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처럼 깊이 고뇌하지 않고 사도가 되며 그리고 주님의 인도함을 받아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고 증거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521)

 

1548년 남편 마테우스 젤이 죽었을 때, 카타리나는 부처의 장례 설교 후에 직접 말씀을 모인 사람들에게 증거했다. 하지만 그녀의 설교가 논란거리가 되었기에, 그녀는 또한 글을 한 편 발표했다. 이 글에서 카타리나는 설교자나 사도의 직분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직 친애하는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처럼 자기가 의도치 않게 사도가 되어 주님 자신의 강권으로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고 증거하기를 원한다.”라고 강조했다.

 

독일어 원문: Als im Januar 1548 ihr Mann Matthäus Zell starb, ergriff Katharina nach der Grabrede Bucers selbst das Wort und wandte sich an die Gemeinde. Da ihre „Predigt“ für Unmut gesorgt hatte, gab sie noch eine Schrift heraus. Darin betont sie, dass sie nicht das Amt des Predigers oder des Apostels bekleiden wollte, „sondern allein wie die liebe Maria Magdalena ohne Vorbedacht ihrer Gedanken zu einer Apostolin ward und vom Herrn selbst gedrungen den Jüngern zu sagen, dass Christus auferstanden wäre“.

 

nach der Grabrede Bucers = 부처의 장례 설교 후에

 

마르틴 부처(1491-1551)의 생몰 연도를 볼 것:

 

현재 시점은 1548. 부처의 묘비는 아직 존재하지 않음.

 

 

das Wort ergreifen = 말씀을 전하다

 

für Unmut sorgen = 논란을 야기하다, 논란거리가 되다

 

das Amt bekeiden = 관직을 차지하다

 

ohne Vorbedacht ihrer Gedanken = 그녀 생각의 고려 없이

 

vom Herrn selbst gedrungen = 주님 자신의 강권으로

 

단어와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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