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나르치스와 골드문트(세계문학전집 66), 임홍배 옮김, 민음사, 2017(45).

헤르만 헤세,나르치스와 골드문트(헤르만 헤세 선집 7), 윤순식 옮김, 현대문학, 2013.

헤르만 헤세,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배수아 옮김, 그책, 2018(4).

 

Jünger Johannes unter dem Kreuz

 

= 십자가 아래에 있었던 제자 요한

 

제자 요한은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할 때, 그 현장에 있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9장을 볼 것: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

 

두 단어를 구분할 것:

 

Jünger = 제자

 

사도 = Apostel

 

“[...] 예전에 잠시 조가가로 일을 했어요. 그때 내가 만든 최고의 작품은 나무를 깎아 만든 실물 크기의 인물상인데 당신의 모습을 본땄어요. 그런데 그 조각상에 나르치스가 아니라 요한이란 이름을 붙였거든요. 십자가 아래의 사도 요한 말이에요.”(배수아:371)

 

“[...] 예전에 잠시 조가가로 일을 했어요. 그때 내가 만든 최고의 작품은 나무를 깎아 만든 실물 크기의 인물상인데 당신의 모습을 본땄어요. 그런데 그 조각상에 나르치스가 아니라 요한이란 이름을 붙였거든요. 십자가 아래의 제자 요한 말이에요.”

 

독일어 원문: »[...] Ich bin nämlich früher ein Bildhauer und Figurenschnitzer gewesen, und ich denke es wieder zu werden. Und die beste Figur, die ich damals gemacht habe, ein Jüngling aus Holz, in natürlicher Größe, die ist dein Bildnis, aber sie heißt nicht Narziß, sondern Johannes. Es ist ein Jünger Johannes unter dem Kreuz.«

 

 

①「[...] 예전에 조각가 겸 인물상 제작자로 일한 적이 있는데, 다시 그 일을 하고 싶어. 어떻든 당시 내가 만들었던 가자 훌륭한 인물상이 나무를 깎아 만든 어떤 젊은이의 상이었는데, 실물 크기의 그 조각이 바로 자네를 모델로 한 것이었어. 그런데 그 조각상의 이름은 나르치스가 아니고 요한이었거든. 십자가에 못박힌 사도 요한 상이었지(임홍배:404)

 

→「[...] 예전에 조각가 겸 인물상 제작자로 일한 적이 있는데, 다시 그 일을 하고 싶어. 어떻든 당시 내가 만들었던 가자 훌륭한 인물상이 나무를 깎아 만든 어떤 젊은이의 상이었는데, 실물 크기의 그 조각이 바로 자네를 모델로 한 것이었어. 그런데 그 조각상의 이름은 나르치스가 아니고 요한이었거든. 십자가 밑에 있었던 제자 요한 상이었지

 

“[...] 전에 조각가로 일할 때였네. 다시 그 일을 하고 싶네만, 아무튼 당시에 내가 만들었던 가장 훌륭한 인물상이 나무를 깎아 만든 실물 크기의 어떤 젊은이 상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자네를 모델로 한 것이었네. 하지만 그 조각상의 이름은 나르치스가 아니고 요한이었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도 요한 말이야.”(윤순식:394)

 

“[...] 전에 조각가로 일할 때였네. 다시 그 일을 하고 싶네만, 아무튼 당시에 내가 만들었던 가장 훌륭한 인물상이 나무를 깎아 만든 실물 크기의 어떤 젊은이 상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자네를 모델로 한 것이었네. 하지만 그 조각상의 이름은 나르치스가 아니고 요한이었네. 십자가 밑에 있었던 제자 요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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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나르치스와 골드문트(세계문학전집 66), 임홍배 옮김, 민음사, 2017(45).

헤르만 헤세,나르치스와 골드문트(헤르만 헤세 선집 7), 윤순식 옮김, 현대문학, 2013.

헤르만 헤세,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배수아 옮김, 그책, 2018(4).

 

단어를 구분할 것:

 

Richtblock = 절두목(截頭木)

 

단두대(斷頭臺) = Fallbeil, Guillotine

 

아래 그림을 참고할 것.

 

독일어 원문: Nun war er im Finstern allein, saß auf dem Stühlchen und legte den Kopf auf den Tisch. Es war schlecht so zu sitzen, und die Einschnürungen an seinen Handgelenken taten weh, doch drangen diese Empfindungen erst spät in sein Bewußtsein. Vorerst saß er nur und legte den Kopf auf den Tisch wie auf einen Richtblock, [...] sich hinzugeben in das Unentrinnbare, sich zu ergeben in das Sterbenmüssen.

 

이제 골드문트는 어둠 속에서 혼자 남게 되었다. 그는 작은 의자에 앉아 머리를 탁자에 괴었다. 그런 자세로 앉아 있기는 거북했다. 오랏줄에 결박된 손목이 아팠지만, 그런 통증도 한참 뒤에야 생각이 났다. 처음에는 그렇게 앉아서 머리를 탁자에 괴고 있으니 마침 단두대에 머리를 올려놓은 기분이었다. [...] 이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사태에 순응해야만 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임홍배:389)

 

이제 골드문트는 어둠 속에서 혼자 남게 되었다. 그는 작은 의자에 앉아 머리를 탁자에 괴었다. 그런 자세로 앉아 있기는 거북했다. 오랏줄에 결박된 손목이 아팠지만, 그런 통증도 한참 뒤에야 생각이 났다. 처음에는 그렇게 앉아서 머리를 탁자에 괴고 있으니 마침 절두목(截頭木) 머리를 올려놓은 기분이었다. [...] 이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사태에 순응해야만 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골드문트는 어둠 속에 혼자 남게 되었다. 그는 작은 의자에 앉아 머리를 탁자에 괴었다. 그렇게 앉아 있기는 불편했다. 오랏줄에 묶여 있는 손목이 아팠지만, 그런 감각은 나중에야 느껴졌다. 탁자에 머리를 괴고 있으니 단두대에 머리를 얹고 있는 기분이었다. [...] 이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사태에 순응해야만 했다. 죽을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윤순식:379)

 

이제 골드문트는 어둠 속에 혼자 남게 되었다. 그는 작은 의자에 앉아 머리를 탁자에 괴었다. 그렇게 앉아 있기는 불편했다. 오랏줄에 묶여 있는 손목이 아팠지만, 그런 감각은 나중에야 느껴졌다. 탁자에 머리를 괴고 있으니 절두목(截頭木) 머리를 얹고 있는 기분이었다. [...] 이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사태에 순응해야만 했다. 죽을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홀로 남았다. 작은 의자에 앉은 채로 머리를 탁자에 내리고 엎드렸다. 불편한 자세였다. 결박된 손도 아팠다. 하지만 그런 감각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렇게 앉아서 머리를 탁자에 대고 있으니 마치 단두대에 엎드려 있는 심정이었다. [...] 피할 수 없는 일에 순응하기, 죽음에 굴복하기.(배수아:356-357)

 

그는 어둠 속에서 홀로 남았다. 작은 의자에 앉은 채로 머리를 탁자에 내리고 엎드렸다. 불편한 자세였다. 결박된 손도 아팠다. 하지만 그런 감각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렇게 앉아서 머리를 탁자에 대고 있으니 마치 절두목(截頭木)엎드려 있는 심정이었다. [...] 피할 수 없는 일에 순응하기, 죽음에 굴복하기.

 

 

절두목(截頭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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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하임,개신교의 본질, 정선희·김회권 옮김, 복 있는 사람, 2018(3).

 

아무도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그를 하나님과 화해시키지도 못한다”(49:8, 옮긴이 사역).(115쪽)

 

아무도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그를 하나님과 화해시키지도 못한다”( 49:7, 옮긴이 사역).

 

독일어 원문: „Kann doch einen Bruder niemand erlösen noch ihn mit Gott versöhnen‟ (Psalm 49, V. 8)

 

시편 49, 절을 바로잡았다.

 

주의할 것:

 

독일어 성경 절과 우리말 성경 절이 다른 시편이 있음.

 

독일어 시편 Psalm 49,8 = 우리말 성경 시편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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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하임,개신교의 본질, 정선희·김회권 옮김, 복 있는 사람, 2018(3).

 

그가 이런 숭고한 권리 주장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대권을 그가 가졌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는 세상에서 유일한 위치를 차지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모든 인간은 어떻게든 그에게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는 것이다.(115)

 

그가 이런 숭고한 권리 주장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처음부터 그가 이러한 대권을 가졌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세상에서 유일한 위치를 차지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모든 인간은 어떻게든 그에게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는 것이다.

 

독일어 원문: Nur weil er diesen hohen Anspruch machte, und weil es, was noch merkwürdiger ist, von Anfang an Menschen gab, die es ihm glaubten, daß er diese Vollmacht habe, nur darum nimmt er eine einzigartige Stellung in der Welt ein, und darum muß sich noch heute jeder Mensch irgendwie mit ihm beschäftigen.

 

weil es, was noch merkwürdiger ist, von Anfang an Menschen gab

 

= 더욱 놀라운 것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die[=Menschen] es ihm glaubten, daß er diese Vollmacht habe

 

= 이 사람들은 그가 이러한 대권을 가졌다고 믿었다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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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하임,개신교의 본질, 정선희·김회권 옮김, 복 있는 사람, 2018(3).

 

251쪽, 미주 5: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1862-194620세기 독일의 희곡 작가로 19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독일 자연주의 연극의 형성과 발전에 기여했다.(Der narr in Christo, Emnauel Quint, Berlin: S. Fischer, 1910).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1862-194620세기 독일의 희곡 작가로 19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독일 자연주의 연극의 형성과 발전에 기여했다. 대표 희곡:직조공,해 뜨기 전. 여기 언급된에마누엘 크빈트(Der Narr in Christo Emnauel Quint, Berlin: S. Fischer, 1910)는 소설 작품.

 

독일어 제목 철자를 바로잡았다.

 

아울러 오해의 소지가 있어, 언급된 작품이 희곡이 아닌 소설임을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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