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터 그라스,양철북(1)(세계문학전집 32), 장희창 옮김, 민음사,1999(14).

 

나치 돌격대원

 

그 돌격대원은 나중에 수정(水晶)의 밤이라고 불린 1938118일에서 9 사이의 밤에 걸쳐 특별히 용감하게 행동하였다. 그는 다른 몇 사람과 함께 미하엘리스 가의 랑푸우르 교회에 불을 지르는 등 열심히 협력하였고, 다음날 아침에는 미리 그에게 주어졌던 임무들을 수행하기도 했다.”(321, 띄어쓰기 수정인용)

 

그 돌격대원은 나중에 수정(水晶)의 밤이라고 불린 1938119일에서 10 사이의 밤에 걸쳐 특별히 용감하게 행동하였다. 그는 다른 몇 사람과 함께 미하엘리스 가의 랑푸르 유대인 회당에 불을 지르는 등 열심히 협력하였고, 다음날 아침에는 미리 그에게 주어졌던 임무들을 수행하기도 했다.”

 

독일어 원문: Selbst als sich der SA-Mann während der Nacht vom neunten zum zehnten November achtunddreißig, die man später die Kristallnacht nannte, besonders mutig hervortat, die Langfuhrer Synagoge im Michaelisweg mit anderen in Brand steckte, [...]

 

vom neunten zum zehnten November = 119일에서 10일까지

 

Synagoge = 유대인 회당

 

오류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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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양철북(1)(세계문학전집 32), 장희창 옮김, 민음사,1999(14).

 

성모 마리아의 표정

 

오스카는 교회의 왼편 회중석의 왼쪽 제단 앞에 서 있었다. 성모 마리아는, 오스카의 어머니가 열일곱 살의 나이로 트로일에서 행상을 하던 시절에 영화관에 갈 돈이 없어서 그 대신 아스트 닐젠의 영화 간판을 홀린 듯이 바라보면서 지었을 것임에 틀림없는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214)

 

오스카는 교회의 왼편 회중석의 왼쪽 제단 앞에 서 있었다. 성모 마리아는, 오스카의 어머니가 열일곱 살의 나이로 트로일에서 점원을 하던 시절에 영화관에 갈 돈이 없어서 그 대신 아스타 닐센의 영화 포스터 홀린 듯이 바라보면서 지었을 것임에 틀림없는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독일어 원문: [...] als sie als siebzehnjähriges Ladenmädchen auf dem Troyl kein Geld fürs Kino hatte, sich aber ersatzweise und einfühlsam Filmplakate mit Asta Nielsen ansah.

 

 

Filmplakat = 영화 포스터

 

Ladenmädchen = 점원

 

Asta Nielsen = 아스타 닐센 = 덴마크 배우

 

오류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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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양철북(1)(세계문학전집 32), 장희창 옮김, 민음사,1999(14).

    

오스카와 어머니, 마체라트, 얀 브론스키.

 

차장이 벨을 두 번 울리자 전차는 자스페와 그 묘지를 뒤로 하고 브뢰젠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브뢰젠 해수욕장은 그 무렵, 4 말경에는 정말 초라하고 황량했다.”(225)

 

차장이 벨을 두 번 울리자 전차는 자스페와 그 묘지를 뒤로 하고 브뢰젠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브뢰젠 해수욕장은 그 무렵, 3 말경에는 정말 초라하고 황량했다.”

 

독일어 원문: [...] zweimal klingelte der Schaffner, und wir fuhren, Saspe und seinen Friedhof hinter uns lassend, gegen Brösen, ein Badeort, der um diese Zeit, etwa Ende März, recht schief und trostlost aussah.

 

etwa Ende März = 3월 말경

 

월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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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나츠 뎀프셔 (전집6:315-316)

 

Ignaz Anton Aloys Dembscher(1776-1838).

 

오스트리아 빈의 부호, 예술 후원자, 아마추어 첼로 연주자.

 

쿤데라는 베토벤의 테마 ‘Es muss sein’와 관련된 뎀프셔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쿤데라의 이야기와 다른, 음악사에 전해 오는 좀 더 자세한 사정은 이렇다.

 

 

1826321, 베토벤의 작품 현악4중주(작품번호 130)가 이그나츠 슈판치히(Ignaz Schuppanzigh)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이그나츠 뎀프셔는 이 초연을 보지 못했다.

 

대신 그는 떠벌리고 다녔다. 최상급 연주자들을 모으고, 친한 친구들을 초대해 언제든지 그 작품의 연주회를 자기가 단독으로 개최할 수 있다고. 또 베토벤에게 악보를 빌리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노라고.(실제로 베토벤은 이전에도 자신의 악보를 뎀프셔에게 빌려주곤 했다.)

 

이런 말이 베토벤의 귀에 들어갔고, 베토벤은 뎀프셔의 말에 화가 났다.

 

얼마 후 뎀프셔는 베토벤에게 문제의 악보를 빌리려고 했다. 하지만 베토벤은 그렇게 쉽게 뎀브셔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베토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보고, 50굴덴의 대여료를 초연 지휘자 슈판치히에게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슈판치히의 단원이자 베토벤의 친한 친구인 칼 홀츠가 뎀프셔에게 베토벤의 말을 전하자, 뎀프셔는 한숨을 내쉬며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면(Wenn es sein muss)”이라고 대답했다.

 

뎀프셔의 말을 전해 들은 베토벤은, 뎀프셔의 말을 모티브 삼아, “꼭 그래야 해(Es muss sein)”라는 4중창 소품을 작곡해 응수했다.

 

(베토벤은 편지 대신에 또는 편지에 소품을 써서, 상대방의 말에 재치 있고 장난스럽게 답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때가 182681일이었고, 그 후 같은 해 10월 베토벤은 꼭 그래야 해(Es muss sein)”라는 이 테마를 현악4중주(작품번호 135) 4악장에 끼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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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렘 수도원 (전집14:106)

 

Abbaye de Thélème

 

프랑수아 라블레의 소설,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252-57장에 묘사된 이상향.

 

이 수도원에는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한 젊은 남녀들이 함께 거주하며 오락과 축제를 즐긴다. 결혼도 가능하며, 원하면 언제든지 수도원을 떠날 수 있다.

 

완벽한 자유가 보장되며, 수도원의 유일한 규칙: ‘원하는 것을 행하라!(Fais ce que voudras).

 

라블레는 텔렘 수도원의 건축, 의상, 도시 구조 및 미학적 가치를 통해 이상적 사회를 제시.

 

라블레의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을 체코어로 번역한 체코 소설가 그룹은 자신들의 모임을 보헤미아의 텔렘 수도원이라 부름.

 

체코어판은 1931년 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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