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빌헬름]는 이미 일찍부터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텐베르크에서 95개조 논제가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빌헬름은 자신의 통치 지역에서 면죄부 판매를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개혁조치와 함께 면죄부 판매를 원천 봉쇄했다. 하지만 그는로마가톨릭교회의 보호자로 자처하고 1521년 보름스 제국회의 이후 독일 지역에서 종교개혁을 저지한황제 카를 5세와 충돌하는 것만큼은 꺼려했다. 후에 빌헬름도 보름스 제국회의에 참석했으나 루터와 그의 교리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접한 헤센 지방의 태수(太守)와 상속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235)

 

[=빌헬름]는 이미 일찍부터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1518, 비텐베르크에서 95개조 논제가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빌헬름은 자신의 통치 지역에서 면죄부 판매를 금지했다. 그 이상의 개혁 조치를 그는 물론 삼갔다. 그는로마가톨릭교회의 보호자로 자처하고 1521년 보름스 제국회의 이후 독일 지역에서 종교개혁을 저지한황제 카를 5세와 충돌하는 것만큼은 꺼려했다. 대부호 빌헬름도 그 보름스 제국회의에 참석했으나 루터와 그의 교리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접한 헤센 지방의 태수(太守)와 상속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독일어 원문: Bereits früh zeigte er Interesse an den Lehren Luthers. 1518, also nur wenige Monate nach dessen Thesenanschlag, untersagte Wilhelm den Ablasshandel in seinem Territorium. Darüber hinaus blieb er mit Reformmaßnahmen allerdings zurückhaltend. Er scheute den Konflikt mit Kaiser Karl., der sich als Hüter der katholischen Kirche verstand und seit dem Reichstag zu Worms 1521 reformatorische Tätigkeiten in den deutschen Territorien zu unterbinden versuchte. Wilhelm der Reiche war in Worms ebenfalls anwesend. Allerdings nicht, um Luther und die von ihm vertretene neue Lehre zu unterstützen, sondern um einen Erbkonflikt mit dem benachbarten hessischen Landgrafen zu klären.

 

mit A zurückhaltend bleiben

 

= A를 삼가다, 주저하다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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