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벨커 외, 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누락

 

취리히 의회는 1531년에두 번째 카펠 전쟁 이후 자신의고향인 브렘가르텐을 떠나야 했던27세의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1504-75)를 츠빙글리의 후계자로 선출했다. 불링거는 여러 장애물이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취리히 수석 목사’(Antistes)라는 직무를 감당해야 했다. 한편으로 취리히는로마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5개 지역으로부터 압박을 받는불리한 평화협정 아래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새롭게 설정되어야 했다.((637)

 

취리히 의회는 1531년에두 번째 카펠 전쟁 이후 자신의고향인 브렘가르텐을 떠나야 했던27세의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1504-75)를 츠빙글리의 후계자로 선출했다. 불링거는 여러 장애물이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취리히 수석 목사’(Antistes)라는 직무를 감당해야 했다. 한편으로 취리히는로마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5개 지역으로부터 압박을 받는불리한 평화협정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새롭게 설정되어야 했다. 의회는 정치적 성향의 목사가 설교단에 서는 것을 더 이상 원치 않았다.

 

독일어 원문: Zu Zwinglis Nachfolger die Zürcher Räte 1531 den erst 27-jährigen Heinrich Bullinger, der seine Heimatstadt Bremgarten hatte verlassen müssen. Bullinger trat sein Amt als „Antistes‟ (erster Pfarrer) unter widrigen Umständen an: Einerseits litt Zurüch unter einem von den fünf katholischen Orten aufgezwungenen unvorteihaften Frieden und andererseits musste das Verhältnis von Kirche und Staat neu austariert werden. Politisierende Pfarrer auf der Kanzel waren vom Rat nicht mehr erwünscht.

 

unter A leiden = A로 고통을 받다

 

빠진 문장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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