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옐레,편안한 침묵보다는 불편한 외침을, 이용주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6(3).

 

“19세기를 기점으로 초핑기아 협회는 여러 노선들로 분화되었다. 그중 가장 커다란 논쟁거리는 특정한 정당과 연합할 것인지(이것이 초핑기아 협회에서 가장 주도적·급진적이었던 <헬베티카> 그룹의 입장이었다), 아니면 여러 노선들에 대해 개방적인 입장을 고수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39, 문장부호 수정인용)

 

“19세기를 기점으로 초핑기아 협회는 여러 노선들로 분화되었다. 그중 가장 커다란 논쟁거리는 특정한 정당과 연합할 것인지(이것이 초핑기아 협회에서 가장 주도적·급진적이었던 <헬베티아> 그룹의 입장이었다), 아니면 여러 노선들에 대해 개방적인 입장을 고수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독일어 원문: Im Lauf des 19. Jahrhunderts kam es zu weiteren Abspaltungen. In erster Linie ging es um die Frage: Wollte man sich mit einer bestimmten politischen Partei identifizieren (wofür sich die «Helvetia» die bedeutendste Abspaltung der «Zofingia» entschied nämlich für die «Radikalen»), oder wollte man für verschiedene Richtungen offen bleiben.

 

고유명사, 한글 표기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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