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신학은 하나님을 희생하고서는 인간에 관해 올바르게 말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우선 하나님에 관해 말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에 관해서도 올바르게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미를 바르트는 디도서 3:4에 따라 <하나님의 인간성>(Menschlichkeit Gottes)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은 바르트 신학에서 성서적 개념인 계약(/1, 2-4)과 동일한 뜻이며, 또한 <임마누엘>(/1, 2-4)이라는 구약성서의 표현과도 같은 의미인데, 임마누엘은 마태복음 1:23에 따르면 예수의 이름이고 그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다”(161-162, 문장부호 수정인용)

 

신학은 하나님을 희생하고서는 인간에 관해 올바르게 말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우선 하나님에 관해 말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에 관해서도 올바르게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미를 바르트는 디도서 3:4에 따라 <하나님의 인간성>(Menschlichkeit Gottes)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은 바르트 신학에서 성서적 개념인 언약(/1, 36)과 동일한 뜻이며, 또한 <임마누엘>(/1, 2-4)이라는 구약성서의 표현과도 같은 의미인데, 임마누엘은 마태복음 1:23에 따르면 예수의 이름이고 그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다

 

독일어 원문: [...] Das Gemeinte brachte Barth nach Tit. 3,4 auf die Formel von der »Menschlichkeit Gottes«, die für ihn dasselbe sagt wie der biblische Begriff des Bundes (/1, 36) und dasselbe wie die alttestamentliche Aussage, die nach Matth. 1,23 der Name Jesu ist: »Immanuel, das ist verdolmetscht: Gott mit uns« (/1, 2-4).

 

출전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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