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을 인식하도록 해주실 때만 우리가 그분을 인식하게 되는 그런 분으로 여전히 머물러 계신다>(43f.)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이 약자인 우리의 인식에 더해주시는 [앞선-주심](Vor-gabe)에 지속적으로 의존해 있다. 하나님 인식은 우리 손에, 우리의 능력 안에 이미 주어진 소여성(所與性)으로 바뀔 수 없으며, 그런 어떤 주어진 능력 덕분에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한 번 전제하신 다음에는 우리 편에서도 하나님을 우리의 전제로 삼을 수 있다거나 우리의 인식의 규정으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며, 그 결과 우리가 그 규정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 인식의 결정적 전제의 관점에서 신학은 항상 빈속으로 서 있다.”(125, 문장부호 및 부분 수정인용)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을 인식하도록 해주실 때만 우리가 그분을 인식하게 되는 그런 분으로 여전히 머물러 계신다>(43f.)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이 약자인 우리의 인식에 더해주시는 [앞선-주심](Vor-gabe)에 지속적으로 의존해 있다. 하나님의 앞선-주심 우리 손에, 우리의 능력 안에 이미 주어진 소여성(所與性)으로 바뀔 수 없으며, 그런 어떤 주어진 능력 덕분에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한 번 전제하신 다음에는 우리 편에서도 하나님을 우리의 전제로 삼을 수 있다거나 우리의 인식의 규정으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며, 그 결과 우리가 그 규정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 인식의 결정적 전제의 관점에서 신학은 항상 빈속으로 서 있다.”

 

독일어 원문: [...] aber Gott »bleibt der, den wir nur erkennen, indem er sich uns zu erkenne gibt« (43 f.). Und so bleiben wir auf diese göttliche Vor-gabe unserer Erkenntnis angewiesen. Sie läßt sich nicht in eine Gegebenheit in unseren Händen umwandeln, in unser Vermögen, kraft dessen wir, nachdem Gott sich uns einmal vorausgesetzt hat , dann auch unsererseits Gott uns voraussetzen und zur Setzung unserer Erkenntnis machen und so mit ihr hantieren könnten. Gerade hinsichtlich ihrer entscheidenden Voraussetzung steht die Theologie immer mit leeren Händen da.

 

Sie[=diese göttliche Vor-gabe] läßt sich nicht in eine Gegebenheit in unseren Händen umwandeln

 

= 하나님의 앞선-주심은 우리 손에 이미 주어진 것으로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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