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스-위르겐 자보로프스키에게 배운 것

 

1

내가 <서울, 1964년 겨울>(김승옥)을 독일어 번역으로 읽은 것은 1986.

 

안 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아니오. 아직까진……그가 말했다. “김 형은 파리를 사랑하세요?”

 

„Lieber An, mögen Sie Fliegen?“

„Nein, bis jetzt ...“ sagte er, „lieber Kim, mögen Sie Fliegen?“

 

파리를 사랑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개방성이 있다. 1. 프랑스 수도 2. 곤충.

이 개방성이 곤충으로 확정되는 것은, “날 수 있는 것으로서 동시에 내 손에 붙잡힐 수 있는 것이라는 이어지는 김의 대답이다.

 

하지만 독일어 독자는 이 개방성을 누릴 수 없다. 번역자가 문맥을 파악한 후, 곤충 파리(Fliege)로 이미 텍스트를 확정했기 때문이다.

 

번역의 상실.

 

2

서대문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이 서른두 명 있는데 그중 여자가 열일곱 명이고 어린애는 다섯 명, 젊은이는 스물한 명, 노인이 여섯 명입니다.”

 

„An der Bushaltestelle am Westtor standen 49 Leute, darunter 17 Frauen, 5 Kinder, 21 junge Leute und 6 Alte.“

 

김승옥의 문장과 독일어 번역은 일치하지 않는다.

김승옥: 32(서른두 명) 독일어 번역: 49(49 Leute)

번역자의 49명은 어디서 나온 걸까?

17 + 5 + 21 + 6 = 49

여자 + 어린애 + 젊은이 + 노인 = 49

번역자는 각 범주의 인원을 확인하고, 이를 합한 것.

인원수를 모두 더해 볼 생각을 하다니.

 

원문 읽기의 꼼꼼함.

 

3

최근에 본, 인터넷에 실린 이 번역자의 부고.

 

Hans-Jürgen Zaborowski(1943. 9. 27.-2021.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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