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터 그라스,『게걸음으로』(세계문학전집
334),
장희창
옮김,
민음사,
2015(2판
1쇄).
발트 해, 담프 휴양소에서 개최된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침몰
50주기
추도식.
파울 포크리프케,
어머니
툴라와 참석하다.
“침몰되기
전에 그리고 그
며칠 후에도
아이들 몇 명이 태어났다고 하지만,
29일에
태어난 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와 동년배는 담프 휴양소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에
아이들은 거의 구조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참석자 중에는 노인만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했다.”(117쪽)
→ “침몰되기
전에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아이들 몇 명이 태어났다고 하지만,
29일에
태어난 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와 동년배는 담프 휴양소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에
아이들은 거의 구조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참석자 중에는 노인만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했다.”
독일어 원문:
Nun soll es ja vor dem Zeitpunkt des Untergangs, aber auch tags
darauf mehrere
Geburten gegeben haben, doch bis auf eine Person, die am Neunundzwanzigsten
begoren wurde, waren keine Gleichaltrigen in Damp dabei. [...]
• tags
darauf = am darauffolgenden Tag = 그다음 날.
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1522년 여름 야콥의 후임자로 취임한 하인리히 폰 취트펜(Heinrich von Zütphen, c.1488–1524) 또한 비텐베르크에서 수학하고, 루터와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었다. 그 역시 루터의 교리를 설교했으며, 1522년 9월 22일 체포되었다. 그러나 그는 며칠 만에 분개한─대다수 여성들로 구성된─지지자들에 의해 풀려났고 안트베르펜을 떠나 비텐베르크로 향하게 되었다.(37-38쪽)
→ 1522년 여름 야콥의 후임자로 취임한 하인리히 폰 취트펜(Heinrich von Zütphen, c.1488–1524) 또한 비텐베르크에서 수학하고, 루터와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었다. 그 역시 루터의 교리를 설교했으며, 1522년 9월 22일 체포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다음 날 분개한─대다수 여성들로 구성된─지지자들에 의해 풀려났고 안트베르펜을 떠나 비텐베르크로 향하게 되었다.
독일어 원문: Heinrich von Zütphen (um 1488–1524), der im Sommer 1522 die Nachfolge Propsts als Prior antrat, hatte ebenfalls in Wittenberg studiert und war mit Luther bekannt. Auch er predigte Luthers Lehren und wurde am 29. September 1522 inhaftiert. Tags darauf wurde er von einer Gruppe aufgebrachter Anhänger, zum Großteil Frauen, befreit und verließ Antwerpen in Richtung Wittenberg.
보완: 2017.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