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열정 - 칼 바르트 신학 해설
에버하르트 부쉬 지음, 박성규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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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열정> = <교회교의학>의 약도!

<위대한 열정>을 함께 읽을 분들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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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1966년 가을에 바르트는 두 번째 여행, 즉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사도좌 정기방문>(Ad Limina apostolorum, 가톨릭 교회법에 따라 각국의 모든 교구의 주교들이 5년마다 교황청을 공식 방문하는 일역자 주)에 참석했다. 이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에 대해 바티칸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것이고, 이 대화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신학을 <조소적이고 비판적으로> 다루어왔던 바르트 연구에 왕관을 씌워주었다.”(81, 문장부호 수정인용)

 

“1966년 가을에 바르트는 두 번째 여행, 즉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사도좌 정기방문>(Ad Limina Apostolorum, 가톨릭 교회법에 따라 각국의 모든 교구의 주교들이 5년마다 교황청을 공식 방문하는 일역자 주)에 참석했다. 이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에 대해 바티칸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것이고, 이 대화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신학을 <평화 애호적이지만 비판적으로> 다루어왔던 바르트 연구절정이었다.”

 

독일어 원문: Eine zweite, seine letzte große Reise führte ihn im Herbst 1966 »zu den Apostelgräbern« (Ad Limina Apostolorum): zu Gesprächen im Vatikan über die Folgen des 2. Vatikanischen Konzils eine Krönung seiner »irenisch-kiritischen« Beschäftigung mit der römischen Kirche und Theologie.

 

irenisch = 평화를 가져오는, 평화 애호의

 

이를 ironisch반어적인, 비꼬는로 순간적으로, 잘못 읽었다.

 

Krönung = 절정, 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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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정년퇴임 이후 바르트는 미국으로 강연여행을 떠났으며, 거기서 <자유의 신학>(theology of freedom)에 관한 연구 작업에 초대를 받았다. 자유의 신학은 자의적인 자유(“liberty”)를 비신화화하고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공존 속의 자유(“freedom”)를 향해 길을 내는 것이었다. 이 작업은 그 무렵에 바르트가 표명했던 <성령의 신학>¹³과 같은 전망 안에 있었다.”(80, 문장부호 수정인용)

 

각주 153: Nachwort, 301-312.

 

각주 153: Nachwort, 310-312.

 

각주의 출전 오류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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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바르트에 의하면 화해론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동>을 다루는데 <그 행동 안에서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의 일을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그것을 목표로 이끄시며, 바로 그렇게 해서 이 세상 안에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주장하시고 보여 주신다>(KD /1, 1) 이와 같은 화해에는 우리를 화해의 소식의 전달자로 부르시는 소명,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요청 속에서 성숙한 존재들로 만드는 윤리가 포함된다. 그런 성숙한 존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 가운데 그리고 <인간들의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바라본다. 그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가오고 있고 만물을 새롭게 하는 나라다.”(79-80, 문장부호 및 띄어쓰기 수정인용)

 

바르트에 의하면 화해론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동>을 다루는데 <그 행동 안에서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의 일을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그것을 목표로 이끄시며, 바로 그렇게 해서 이 세상 안에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주장하시고 보여 주신다>(KD /1, 1) 이와 같은 화해에는 우리를 화해의 소식의 전달자로 부르시는 소명,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요청 속에서 성숙한 존재들이 되어 가는 윤리가 포함된다. 그런 성숙한 존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 가운데 그리고 <인간들의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바라본다. 그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가오고 있고 만물을 새롭게 하는 나라다.”

 

독일어 원문: [...] Zu dieser Versöhnung gehört für Barth auch unsere Berufung zu Botschaftern der Versöhnung und eine Ethik, in der wir in der Anrufung Gottes zu Mündigen werden, die im »Eifer für die Ehre Gottes« und im »Kampf um menschliche Gerechtigkeit« ausblicken nach dem in Jesus Christus kommenden, alles erneuernden Gottesreich.

 

eine Ethik, in der wir in der Anrufung Gottes zu Mündigen werden

 

= 우리가 하나님의 요청 속에서 성숙한 존재들이 되어 가는 윤리

 

주어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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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각주 오류

 

143: Götze, 154.

Evanston Dokumente, 55.

 

144: 비교. Offene Briefe, 274-289.

Götze, 154.

 

145: 비교. Kerrl und die Bekenntniskirche.

비교. Offene Briefe, 274-289.

 

146: Die Kirche zwischen Ost und West, 19f.

비교. Kerrl und die Bekenntniskirche.

 

147: Götze, 154.

Die Kirche zwischen Ost und West, 19f.

 

148: Offene Briefe, 444. 국가사회주의와 같이 사도신경 세 조항 전부의 부정(Eine Schweizer Stimme, 246)

Götze, 153.

 

149: Offene Briefe, 206f.

Offene Briefe, 444. 국가사회주의와 같이 사도신경 세 조항 전부의 부정(Eine Schweizer Stimme, 246)

 

150: Offene Briefe, 274-289f.

Offene Briefe, 206f.

 

77-79, 각주 143-150의 출전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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