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계시에 의존하는 신학에서는 (1) 가능성에 대한 현실성의 무조건적인 우위가 인정된다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주셨으며 또 지금도 내어주신다는 사실에 근거한다.”(136)

 

각주 26: K. H. Miskotte, Über Karl Barth KD, 39

 

계시에 의존하는 신학에서는 (1) 가능성에 대한 현실성의 무조건적인 우위가 인정된다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주셨으며 또 지금도 내어주신다는 사실에 근거한다.”(136)

 

각주 26: K. H. Miskotte, Über Karl Barths KD, 39.

 

출전 오류를 바로잡았다.

 

‘39’ 뒤에 저자가 빠뜨린 마침표를 찍을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오직 차후적으로(nachträchlich)만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자신이 인식될 수 있도록 분명하게 자신을 드러내주신 그곳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한 후에야 비로소 [...]”(135)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오직 사후에(nachträglich)만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자신이 인식될 수 있도록 분명하게 자신을 드러내주신 그곳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한 후에야 비로소 [...]”

 

독일어 원문: Das ist so gemeint, daß wir nur nachträglich, nachdem wir Gott dort erkannt haben, wo er sich unzweideutig hervorgetan hat, erkennen können, [...]

 

독일어 단어 철자를 바로잡았다: nachträglich

 

차후(此後)지금부터 이후도 사후(事後)로 교정했다.

 

 

참고로, ‘차우적이란 표현은 쓰지 않는다.

 

차후에’, ‘차후로는은 가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고백교회가 바르멘 신학 선언을 공식적으로 채택한 직후 바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 전체와 세계 안의 이러저러한 형상들, 사건들 권력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 안에 두고 계시며 또 하나님은 그런 것들 속에서도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명제를 우리가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134, 문장부호 수정인용)

 

고백교회가 바르멘 신학 선언을 공식적으로 채택한 직후 바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 전체와 세계 안의 이러저러한 인물들, 사건들, 권력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 안에 두고 계시며 또 하나님은 그런 것들 속에서도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명제를 우리가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어 원문: Unmittelbar nach ihrer Annahme der Barmer Erklärung durch die Bekennende Kirche bemerkte Barth: »Wir leugnen nicht den Satz, daß Gott die ganze Welt und also auch solche Gestalten, Ereignisse und Mächte in seinen Händen hält, [...] daß er sich auch in ihnen offenbart.«

 

사건들뒤에 쉼표를 넣을 것.

 

“<우리는 하나님을 그러한 형상들, 사건들, 권력들 속에서 인식함으로써 마치 우리가 하나님은 여기 계시다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다거나, 그런 인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 인식과 나란히 설 수 있는 또 하나의 하나님 인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34-135, 부분삭제 인용)

 

“<우리는 하나님을 그러한 인물들, 사건들, 권력들 속에서 인식함으로써 마치 우리가 하나님은 여기 계시다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다거나, 그런 인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 인식과 나란히 설 수 있는 또 하나의 하나님 인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독일어 원문: »wir erkennen Gott nicht so in diesen Gestalten, Ereignissen und Mächten, daß dieses Erkennen zu einem Erkennen neben der Erkenntnis Gottes in Jesus Christus werden könnte.«

 

“<후속적으로>라는 말은 우리가 그런 <형상들>을 어떤 신적인 속성과 관련시켜 놓은 뒤에 그것들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여긴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성서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그런 형태들과 관련시키시며, 그래서 그것들을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 안에 놓으시는 것이다.”(135, 문장부호 수정인용)

 

“<후속적으로>라는 말은 우리가 그런 <인물들>을 어떤 신적인 속성과 관련시켜 놓은 뒤에 그것들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여긴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성서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그런 인물들과 관련시키시며, 그래서 그것들을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 안에 놓으시는 것이다.”

 

독일어 원문: »Nachträglich« heißt: Nicht wir setzen diese »Gestalten« in Beziehung zu einem Göttlichen und halten sie daraufhin für dessen Offenbarung, sondern der nach biblischem Zeugnis sich offenbarende Gott setzt sich in Beziehung zu ihnen und sie in Beziehung zu sich, [...]

 

여기서, Gestalt(en) = 인물()

 

독일개신교협의회(EKD) 사이트에 실린 문서, <바르멘 신학선언> 1항을 볼 것.

 

독일어 원문과 그 영어, 특히 프랑스어 번역본(https://www.ekd.de/francais/foi/barmen.html)을 보면, ‘Gestalten’인물들임을 잘 알 수 있다.

 

독일어 원문: Wir verwerfen die falsche Lehre, als könne und müsse die Kirche als Quelle ihrer Verkündigung außer und neben diesem einen Worte Gottes auch noch andere Ereignisse und Mächte, Gestalten und Wahrheiten als Gottes Offenbarung anerkennen.

 

영어 번역문: We reject the false doctrine, as though the church could and would have to acknowledge as a source of its proclamation, apart from and besides this one Word of God, still other events and powers, figures and truths, as God's revelation.

 

프랑스어 번역문: Nous rejetons la fausse doctrine selon laquelle, en plus et à côté de cette seule Parole de Dieu, l'Eglise pourrait et devrait reconnaître d'autres événements et pouvoirs, personnalités et vérités, comme Révélation de Dieu et source de sa prédication.

 

우리는 마치 교회가 그 선포의 원천으로서 이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 외에, 그리고 그것과 나란히 다른 사건들, 권세들, 인물들 및 진리들도 하나님의 계시로서 인정할 수 있고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가르치는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한다.(이신건 번역의 수정인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저자 오류(3)

 

Unmittelbar nach ihrer Annahme der Barmer Erklärung durch die Bekennende Kirche bemerkte Barth: »Wir leugnen nicht den Satz, daß Gott die ganze Welt und also auch solche Gestalten, Ereignisse und Mächte in seinen Händen hält, daß er sich auch in ihnen offenbart.«²

 

24. Texte zur Barmer Theologischen Erklärung, 19.

 

Unmittelbar nach ihrer Annahme der Barmer Erklärung durch die Bekennende Kirche bemerkte Barth: »Wir leugnen nicht den Satz, daß Gott die ganze Welt und also auch solche Gestalten, Ereignisse und Mächte in seinen Händen hält, ... daß er sich auch in ihnen offenbart.«²

 

24. Texte zur Barmer Theologischen Erklärung, 19.

 

부분삭제 인용표시...가 빠졌다.

 

부분 삭제된 원문 = ja wir leugnen nicht einma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하나님은 러시아의 공산주의를 통해서도, 플루트 연주회를 통해서도, 만발한 꽃밭을 통해서도, 심지어 죽은 개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1,55)”(134, 문장부호 수정인용)

 

“<하나님은 러시아의 공산주의를 통해서도, 플루트 연주회를 통해서도, 만발한 관목을 통해서도, 심지어 죽은 개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1,55)”

 

독일어 원문: »Gott kann durch den russischen Kommunismus, durch ein Flötenkonzert, durch einen blühenden Strauch oder durch einen toten Hund zu uns reden« (/1,55).

 

Strauch = 관목, 떨기나무

 

독일어 <두덴사전>의 표제어 ‘Strauch’에 실린 그림Blühender Strauch을 참고할 것:

 

http://www.duden.de/rechtschreibung/Strauch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