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기도는 당연히 그런 어떤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해지는, 분명 우리를 통해 행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근거는 어떤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다는 데 있다.

 

Das wirkliche Beten ist ja etwas, was wir nicht machen können, sondern was geschieht, gewiß durch uns geschieht, aber nicht auf grund einer Fähigkeit, sondern auf grund dessen, daß Gott uns angenommen hat als seine Kinder.

 

-Gottes Gnadenwahl, in: Theologische Existenz heute 47, München 1936, S.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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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도 검토하지 않은 채 나를 수용하지 말고, 그것들을 한 문장씩 하나님의 유일한 참된 말씀우리의 재판장이자 모든 것을 능가하는 스승인으로 측정하십시오. 가 말하는 것을 통해 그분이 말씀하신 것으로 인도되었다면 비로소 나를 제대로 이해한 것입니다.

 

Und nehmen Sie auch von mir keinen Satz ungeprüft entgegen, sondern messen Sie einen jeden von ihnen an dem allein wahren Wort Gottes, das unser Richter und überlegener Lehrmeister ist! Sie verstehen mich dann recht, wenn Sie sich durch das, was ich sage, zu dem führen lassen, was Er sagt.

 

-Offene Briefe 1945-1968, Zürich 1984, S.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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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로마서, 손성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17(8).

 

85쪽 각주 2:

 

프리츠 바르트(1856-1912), 라이트나우(Reitnau)의 아르가우 목사(Aargau, 1879-1886)

 

프리츠 바르트(1856-1912), 스위스 아르가우 주()의 라이트나우(Reitnau) 목사(1879-1886)

 

Fr. Barth, Christus unsere Hoffnung. Sammlung von religiöse Reden und Vorträgen, Bern 1919, S. -ⅩⅤⅢ.

 

Fr. Barth, Christus unsere Hoffnung. Sammlung von religiösen Reden und Vorträgen, Bern 1913, S. -ⅩⅤⅢ.

 

오류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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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로마서, 손성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17(8).

 

이 책은 발견자의 기쁨Entdeckersfreude으로 쓰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85)

 

이 책은 발견자의 기쁨Entdeckerfreude으로 쓰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독일어 원문: Man wird es ihm anspüren, dass es mit Entdeckerfreude geschrieben ist.

 

독일어 철자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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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로마서, 손성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17(8).

 

역사 이해는 어제의 지혜와 오늘의 지혜 사이에서 행해지는 대화로서, 두 지혜 간의 대화는 계속되면서 더욱 솔직하게 점점 더 파고드는 대화로, 이 두 지혜는 하나이며 같다.(85)

 

역사 이해는 어제의 지혜와 내일의 지혜 사이에서 행해지는 대화로서, 두 지혜 간의 대화는 계속되면서 더욱 솔직하게 점점 더 파고드는 대화로, 이 두 지혜는 하나이며 같다.

 

독일어 원문: Geschichtsverständnis ist ein forgesetztes, immer aufrichtigeres und eindringenderes Gespräch zwischen der Weisheit von gestern und der Weisheit von morgen, die eine und dieselbe ist.

 

morgen = 내일

 

오늘 = heute

 

일종의 착독(錯讀): morgens아침에로 읽고 이를 오늘과 결부시키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무의식도 한몫했겠다.

 

 

번역자의 은 보는 것만 본다. 그래서 밝은 편집자가 있어야 한다.

 

아니, 우리는 모두 서로의 이다.

 

 

이 되어 준 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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