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로마서, 손성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17(8).

 

바르트는 1920418 바젤에서 하르나크와 피셔E. Vischer를 만났는데, 두 신학자는 그 자리에서 특별히 바르트의 주지주의를 비판했다. 그때 오고 간 말들은 하르나크가 1920426일 피셔에게 쓴 편지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하르나크가 바르트의 아라우 강연을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이 썼다. “이런 유의 종교는 실제[...] [...]에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 사람들은 목사가, 다시 말해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판단을 하는지 매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제 경우에는 주일의 대화를 통해서 그런 인상이 약화되긴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대화를 통해서 바르트도 자신이 자의적으로 꾸민 성경 문자주의[...]Biblizismus로부터 벗어나기만 한다면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50)

 

바르트는 1920418 바젤에서 하르나크와 피셔E. Vischer를 만났는데, 두 신학자는 그 자리에서 특별히 바르트의 주지주의를 비판했다. 그때 오고 간 말들은 하르나크가 1920426일 피셔에게 쓴 편지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하르나크가 바르트의 아라우 강연을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이 썼다. “이런 유의 종교는 실제[...] [...]에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없습니다. [...] 사람들은 목사가, 다시 말해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판단을 하는지 매번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경우에는 그 일요일[1920. 4. 18]의 대화를 통해서 그런 인상이 약화되긴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대화를 통해서 바르트도 자신이 자의적으로 꾸민 성경 문자주의[...]Biblizismus로부터 벗어나기만 한다면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독일어 원문: Während Barths Zusammentreffen mit A. von Harnack und E. Vischer in Basel am 18. 4. 1920 haben ihn beide Theologen u.a. des Intellektualismus beschuldigt. Was damals mündlich gesagt wurde, kann ergänzt werden anhand des Briefes von Harnacks an E. Vischer vom 26. 4. 1920, worin er im Blick auf Barths Aarauer Vortrag schreibt: « [...] Gemildert hat sich mir der Eindruck nur durch die persönliche Aussprache am Sonntag, die mir eine kleine Hoffnung gegeben hat, Barth könne noch sich ändern, wenn er sich von seinem willkürlich zurecht gemachten Biblizismus befreit.»

 

am Sonntag = 그 일요일에 = 1920418

 

대괄호를 써, 내용을 보완했다.

 

아울러, 편지의 종결어미를 습니다로 통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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