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향수, 강명순 옮김, 열린책들, 2002(17).

 

테리에 신부는 아기 그르누이를 가이아르 부인에게 맡긴다.

 

가이아르 부인은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았지만 [...] 내면적으로는 이미 죽어 있는 여자였다. [...] 그녀에게는 친절과 혐오가 동시에 낯선 일이 되어 버렸다. 기쁨과 절망 역시 그녀는 느끼지 못했다. 후일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을 때조차 그녀는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았으며 아이들을 낳았을 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주위 사람이 죽어 갈 때도 슬퍼하지 않았으며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기쁨을 느껴 본 적도 없었다. 남편이 그녀를 때려도 위축되지 않았으며 [...]”(033-034, 부분삭제 인용)

 

가이아르 부인은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았지만 [...] 내면적으로는 이미 죽어 있는 여자였다. [...] 그녀에게는 친절과 혐오가 동시에 낯선 일이 되어 버렸다. 기쁨과 절망 역시 그녀는 느끼지 못했다. 후일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을 때조차 그녀는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았으며 아이들을 낳았을 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낳은 자식들이 죽었다고 슬퍼하지 않았고, 또 살아남았다고 기뻐하지 않았다. 남편이 그녀를 때려도 위축되지 않았으며 [...]”

 

독일어 원문: [...] Sie empfand nichts, als sie später ein Mann beschlief, und ebenso nichts, als sie ihre Kinder gebar. Sie trauerte nicht über die, die ihr starben, und freute sich nicht an denen, die ihr blieben.

 

가이아르 부인에게 슬픔과 기쁨을 주지 못한 대상은 주위 사람”,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녀가 낳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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