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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 소녀야. 그 당시 소녀는 아마 그 녀석의 짝꿍이었지. 소녀가 조금만 더 다정스럽게 굴었더라면, 우리들도 소녀에게 잘해 주었을 텐데. 하지만 소녀는 욕심쟁이였다. 소녀는 공부도 잘하고 우리에 비해 아는 게 훨씬 많았다. 그러나 소녀는 우리들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짝꿍이었던 우리들이 시험지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직접 가르쳐 주기가 싫거든 두 팔로 가리지나 말일이지. ‘이런꼴이 얼마나 얄밉던지! 그 팔은 다른 사람이 넘볼 수 없는 자기만의 울타리이다. 소녀는 (아마 학급에서 거의 유일하게) 귀고리며 손목시계까지 차고 있지 않은가? 이 두 가지 장신구는 이 어린 욕심쟁이가 거둬들인 첫 번째 수확임에 틀림없지 않을까? 그것을 거리낌 없이 학교에 차고 오다니?! 소녀한테서 무언가 꼬투리를 잡고 싶은 심사는 우리의 시선의 상상력을 어둡게 할뿐이다. 운도 없고 소녀를 좋게 생각할 여유도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일생 동안 두고두고 못된 짝꿍 이야기나 하게 될 것이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윌리 로니스가 1960년 프랑스에서 찍은 사진으로 만든 이 그림엽서를 언젠가 만나게 되리라. 소녀는 결코 욕심쟁이가 아니며, 소녀에 대한 우리의 억하심정이란 어쩌면 터무니없었던 것일 수 있다는 그 첫 번째 증거는 소녀의 지극히 만족스러워 하는 눈길이다. 다른 사람을 정말로 외면할 마음이 있는 아이라면 결코 이런 눈길을 하지 않는다. 내 생각은 이렇다. 이제까지 몰랐던 새로운 종류의 기쁨을 이 소녀는 지금 맛보고 있는 것 같다. 그 기쁨은 교실이기 때문에, 다른 급우들 때문에 곡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글씨를 이제는 휴대용 흑판에, 그리고 나중에는 종이 위에 쓰게 되리라는 데서 오는 기쁨이다. 보호되어야만 하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글씨에 대한 기쁨이다. 그 기쁨을 이제 막 깨달았고, 그 때문에 행복하게 여기고 있다. 여기에다 나는 조심스럽게 몇 마디를 더 붙이고 싶다. 일상적인 글쓰기에 대한 기쁨 가운데서, 지금 소녀가 깨달은 것은 독자적인 글쓰기에 대한 기쁨은 아닐까. 소녀 외에는, 그것을 교실에 있는 어느 누구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은 아닐까. 선생님마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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