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온 포이히트방거,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대산세계문학총서 147), 문광훈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8(2).

 

 

문광훈 선생님께

 

 

번역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는 어휘 선택입니다.

 

역사적·정치적·종교적 상황이나 배경에 맞는 적확한 단어 선정은 번역의 완성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이물감 없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 사이로 작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목사와 합창단 소년이 성체(聖體)를 든 채 바람을 가르며 가는 것을 그는 보았다. 분명 그것은 임종을 앞둔 어떤 사람에게 가는 길이었다.(27)

 

[] 사이로 작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사제복사(服事) 성체(聖體)를 든 채 바람을 가르며 가는 것을 그는 보았다. 분명 그것은 임종을 앞둔 어떤 사람에게 가는 길이었다.

 

독일어 원문: Ein kleines Klingeln kam durch den Schnee, und dann sah er, wie sich ein Priester und ein Chorknabe mit dem Allerheiligsten durch das Wetter arbeiteten, offenbar auf dem Wege zu einem Sterbenden.

 

 

벨라스케스가 그린, 턱수염 난 주교는 뭔가 지루한 듯 어두운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 섬광 아래에서 보는 그는 유령 같았다.(28)

 

벨라스케스가 그린, 턱수염 난 추기경 다른 쪽 벽에서 뭔가 지루한 듯 어두운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 깜박거리는 불빛에 보는 그는 유령 같았다.

 

독일어 원문: Der kinnbärtige Kardinal, der, von Velázquez gemalt, aus finstern, etwas gelangweilten Augen von der andern Wand schaute, wurde gespenstisch in dem Geflacker, [...]

 

 

이 소설의 배경은 18세기 말, 가톨릭 국가 스페인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예문에서 목사라는 단어를 접한 독자들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는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에서 성직자를 가리킬 때 쓰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여기서 말하는, 종부성사 자체가 개신교에는 없습니다.)

 

두 번째 예문의 주교는 가톨릭에서 쓰는 용어가 맞습니다. 하지만 세분해서 보자면, 올바른 용어가 아닙니다. 가톨릭 성직자는 교황-추기경-대주교-주교-사제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독일어 원문에 나오는 Kardinal추기경을 말합니다.

 

 

(주교 신분으로서는 터무니없었을 것이고 추기경쯤 되었어야, 당시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에게 초상화를 의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벨라스케스가 그렸을 턱수염 난 추기경이 궁금해 찾아보았더니 세 사람의 추기경 초상화가 있습니다.

 

 

포이히트방어가 이 소설에서 말하는 추기경이 누굴까, 세 초상화를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2018. 3. 31.

 

박진곤

 

 

 

Gaspar de Borja y Velasco(1580-1645)

Camillo Astalli(1616/1619-1663)

Camillo Massimo(16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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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온 포이히트방거,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대산세계문학총서 147), 문광훈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8(2).

 

 

문광훈 선생님께

 

 

착독(錯讀).

 

단어를 있는 그대로 읽지 못하고 철자를 빼거나 덧붙여, 또 다른 철자로 바꿔 순간적으로 읽는 경우를 말합니다.

 

 

아내와의 일은 이전처럼 그리 심하게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만난 지 벌써 8개월 된 여자 친구 페파 투도는 이성적이었다.(25)

 

여자들과의 염사(艷事) 이전처럼 그리 심하게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만난 지 벌써 8개월 된 정부(情婦) 페파 투도는 이성적이었다.

 

독일어 원문: Auch setzten ihm, Francisco, seine Angelegenheiten mit Frauen nicht mehr so heftig zu wie früher; Pepa Tudó, mit der er es jetzt schon seit acht Monaten hielt, war vernünftig.

 

 

그러고는 덧붙이기를, 성모 필라르를 위해 4파운드 양초 두 개를 놓아달라고, 그래서 이 성모가 자기 행복을 지켜주도록 해달라고 친구에게 요청했다.(25)

 

그러고는 덧붙이기를, 성모 필라르를 위해 무거운 파운드 양초 두 개를 놓아달라고, 그래서 이 성모가 자기 행복을 지켜주도록 해달라고 친구에게 요청했다.

 

독일어 원문: [...] und in einer Nachschrift hatte er den Freund aufgefordert, der Jungfrau del Pilar zwei vielpfündige Kerzen zu stiften, daß sie ihm sein Glück erhalte.

 

 

위 예문 모두, 착독으로 인한 결과물입니다.

 

첫 번째의 경우, 철자의 결락(缺落)이 일어났습니다.

 

복수 Frauen여자들─을 Frau여자로 순간적으로 읽고, 이를 바로 아내와 결부시켰습니다.

 

두 번째의 경우, 철자의 치환(置換)이 생겼습니다.

 

viel많은vier, ‘l’‘r’로 바뀐 것입니다.

 

 

제 경험에서 말씀드리자면, 번역자가 스스로 자신의 착독을 깨닫고 교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극히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 독해이기 때문에, 착독 자체를 번역자 자신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또 이렇게 한 번 읽어버린 단어/텍스트를 대부분의 번역자는 결코 다시 읽지 않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제3의 눈입니다. 그래서 꼼꼼한 편집자가 있어야 합니다. 착독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좋은 번역은 뛰어난 번역자와 탁월한 편집자가 함께 만든다고 할 것입니다.

 

 

2018. 3. 30.

 

박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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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온 포이히트방거,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대산세계문학총서 147), 문광훈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8(2).

 

 

문광훈 선생님께

 

극작가 베르틀랭의 작품마리 앙투아네트의 고난」(12쪽을 볼 것) 공연이 끝나고 접견실에서는 사교모임이 이어집니다.

 

알바 공작은 자기 아내와 고야가 함께 있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알바 공작은 고야를 바라보는 자기 아내의 눈길이, 평소 자기를 바라보던 눈길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에게 나직한 슬픔이 있었다. 혼자 있을 때, 알바 공작은 바이올린을 집어 하이든이나 보케리니와 함께 마리 앙투아네트의 고난을 연주했다. 그러면 영혼이 씻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24)

 

그에게 나직한 슬픔이 일었다. 만일 혼자 있는 자리라면, 알바 공작은 바이올린을 집어 하이든이나 보케리니 곡을 연주하며마리 앙투아네트의 고난공연과 그 후 이어진 일들을 영혼으로부터 씻어버렸을 것이다.”

 

독일어 원문: Eine leise Traurigkeit war in ihm. Wenn er allein ist, wird er zu seiner Violine greifen und sich mit Haydn oder Boccherini das »Martyrium der Marie-Antoinette« und was darauf folgte von der Seele waschen.

 

 

sich A von B waschen = B로부터 A를 씻다

 

A = das »Martyrium der Marie-Antoinette« und was darauf folgte

 

= 마리 앙투아네트의 고난공연과 그 후 이어진 일들

 

B = von der Seele

 

= 영혼으로부터

 

 

알바 공작은 자기 아내와 고야의 모습을 보면서, 슬픔에 잠깁니다. 알바 공작은 생각합니다. 이 자리가 사교모임이 아닌, 혼자 있는 자리라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연극 공연과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을 영혼으로부터 씻어 내버리리라.

 

 

2018. 3. 29.

 

박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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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온 포이히트방거,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대산세계문학총서 147), 문광훈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8(2).

 

 

문광훈 선생님께

 

소설 첫 부분은 18세기 말, 다른 서유럽과 달리 이베리아 반도에서만 유독 중세적 상황이 지속되는 이유를 지리적·정치적·종교적·역사적 요인과 배경을 언급하며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경직된 정신적 상태를 소재로 삼아 세르반테스가돈키호테와 그 인물을 창조했다고 평가합니다.

 

“18세기 말 이베리아 전통은 비극적일 만큼 우스꽝스럽게 굳어 있었다. 이미 200년 전 이 땅의 가장 위대한 작가는 어둡고 기이한 불굴의 의지로 작품의 소재를 끌어냈다. 그는 낡고 기사도적이며 쓸모없게 돼버린 관례를 포기할 수 없는 어느 기사 이야기로부터 영원히 타당한 한 가지 비유를 창조해냈고, 참으로 사랑스러운 그 주인공은 감동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전 세계에 유명해졌다.”(9)

 

18세기 말 이베리아 전통은 비극적일 만큼 우스꽝스럽게 굳어 있었다. 이미 200년 전 이 땅의 가장 위대한 작가는 어둡고 기이한 불굴의 의지로부터 작품의 소재를 끌어냈다. 그는 낡고 기사도적이며 쓸모없게 돼버린 관례를 포기할 수 없는 어느 기사 이야기로부터 영원히 타당한 한 가지 비유를 창조해냈고, 참으로 사랑스러운 그 주인공은 감동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전 세계에 유명해졌다.”

 

독일어 원문: Zu Ende des achtzehnten Jahrhunderts war die iberische Tradition auf tragisch lächerliche Art erstarrt. Zweihundert Jahre zuvor schon hatte sich der größte Dichter des Landes aus diesem finster grotesken Willen zur Beharrung seinen Stoff geholt. Er hatte in der Geschichte von dem Ritter, der von den alten, ritterlichen, sinnlos gewordenen Bräuchen nicht lassen kann, ein für immer gültiges Gleichnis geschaffen, und sein höchst liebenswerter Held, rührend und lächerlich, war berühmt geworden über den Erdkreis.

 

 

여기서 어둡고 기이한 불굴의 의지는 세르반테스가 작품 창작에 임하는 태도나 자세가 아니라, 세르반테스가 비판하고자 했던 당시 스페인 사회를 옥죄고 있던, 정신적 조류번역문에 나오는 말로 설명하자면, “낡고 기사도적이며 쓸모없게 돼버린 관례를 말합니다.

 

 

der größte Dichter hatte sich aus diesem Willen zur Beharrung seinen Stoff geholt

 

= 그 위대한 작가는 이 불굴의 의지로부터 자신의 소재를 얻었다

 

 

당시 스페인 사회의 어둡고 기이한 불굴의 의지는 이 소설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소설의 서두는 이 점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번역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2018. 3. 28.

 

박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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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온 포이히트방거,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대산세계문학총서 147), 문광훈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8(2).

 

 

문광훈 선생님께

 

 

11장 끝(11-12), ()가 한 편 나옵니다.

 

 

자기 자신 속에 깃든

이 모순을 감지한

스페인 사람들도 물론 있었네.

낡은 풍습과 새 풍습 사이에서,

느낌과 이해 사이에서

때로는 고통스럽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그들은 싸움을 가슴으로

끝까지 해냈네.

때로 승리했지만, 늘 그렇지 않았네.

 

 

Spanier gab es freilich, welche

Diesen Widerspruch verspürten

In sich selber, und sie kämpften

In der eignen Brust den Streit aus

Zwischen altem Brauch und neuem,

Zwischen Fühlen und Verstehen,

Schmerzhaft oft und leidenschaftlich,

Siegreich manchmal, doch nicht immer.

 

 

원문 8행 가운데, 눈에 뜨이는 것은 3·4행과 5·6행에서 반복되는 전치사inzwischen입니다.

 

이 전치사의 반복을 번역문에서 재현하고, 이를 독자들이 감지하도록 하는 것이 이 시를 번역할 때, 가장 신경 써야할 형식적 요소일 것입니다.

 

 

물론 스페인 사람들도 있어, 이들

이 모순을 감지했네

자기 자신 속에서. 하여 이들

자기 마음속에서 투쟁해갔네.

옛 풍습과 새 풍습 사이에서

느낌과 이해 사이에서

때론 고통스럽게 또 열정적으로

때론 승리했지만, 늘 그렇지 못했네.

 

 

다른 부분이야, 여러 모양으로 변주될 수 있겠지만 이 전치사 부분이 강조되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습니다.

 

 

2018. 3. 27.

 

박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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