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루터는 스승이자 고해 신부인 요한네스 폰 스타우피츠(Johannes von Staupitz)의 후계자로 일을 시작했다.(604)

 

루터는 스승이자 고해 신부인 요한네스 폰 타우피츠(Johannes von Staupitz)의 후계자로 일을 시작했다.

 

독일어 원문: Martin Luder begann als Nachfolger seines Lehreres und geistlichen Ziehvaters Johannes von Staupitz

 

Staupitz = 슈타우피츠

 

발음에 주의할 것:

 

sch가 단어 첫머리에 올 때 = 가 아니라 ʃ─로 발음할 것.

 

 

 

 

수정: 2017.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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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그는] 또한 1521/22년 겨울에 바르트부르크에서 먼저 출간된 신약성서 번역을 따라 비텐베르크 동료들과 함께 구역성서 전체를 번역했다. 이것이 그가 평생 해온 일과 과제이다.(604)

 

[그는] 또한 1521/22년 겨울에 바르트부르크에서 먼저 신약성서를 번역한 후에, 비텐베르크 동료들과 함께 구역성서 전체를 번역했다. 이것이 그가 수십 년에 걸쳐 생애 마지막까지 몰두했던 일이자 과제였다.

 

독일어 원문: [...] und [er] übersetzte, nach der vorausgegangenen Übersetzung des Neuen Testaments im Winter 1521/22 auf der Wartburg, zusammen mit den Wittenberger Kollegen das ganze Alte Testament - eine Arbeit und Aufgabe, die ihn über Jahrzehnte, bis in sein letztes Lebensjahr, in Anspruch nahm.

 

nach der vorausgegangenen Übersetzung des Neuen Testaments

 

= 신역성서를 앞서 번역한 후

 

아울러, 빠진 곳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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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누락

 

비텐베르크는 그의 삶의 무대가 되었고, 생애 말엽까지 머문 곳이다. 루터로 인해 비텐베르크는 루터 도시’(Lutherstadt)가 되었다. 이 도시는 1938년부터 루터 도시 비텐베르크라는 이름을 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604)

 

비텐베르크는 그의 삶의 무대가 되었고, 생애 말엽까지 머문 곳이다. 그리고 루터가 죽고 나서, 루터로 인해 비텐베르크는 루터 도시’(Lutherstadt)가 되었다. 이 도시는 1938년부터 루터 도시 비텐베르크라는 이름을 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독일어 원문: Wittenberg wurde zu seinem Lebensort und ist es bis zu seinem Lebensende geblieben. Und über Luthers Ende hinaus, aber eben durch ihn, wurde Wittenberg zur „Lutherstadt‟. Seit 1938 trägt die Stadt den amtlichen Namen „Lutherstadt Wittenberg‟.

 

über Luthers Ende hinaus

 

= 루터가 죽고 나서

 

빠진 곳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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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 종교개혁은 구체화되거나 확산되지도, 세계를 변화시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두 사람의 신학자가 없었더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들은 마르틴 루터와 필립 멜란히톤이며, 그들은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 신학을 대표한다.(603)

 

[...] 종교개혁은 구체화되거나 확산되지도, 세계를 변화시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두 사람의 신학자가 없었더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들은 마르틴 루터와 필립 멜란히톤이며, 그들은 각자 따로 그리고 함께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 신학을 대표한다.

 

독일어 원문: [...] Und vor allem nicht ohne die beiden Theologen, die je für sich und gemeinsam die Wittenberger reformatorische Theologie vertraten: Martin Luther und Philipp Melanchthon.

 

je für sich und gemeinsam

 

= 각자 따로 그리고 함께

 

빠진 곳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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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종교개혁의 뿌리는 성서주해에 있으며, 그 시대의 교회문제, 더 나아가 정치적 상태에 대한 비판이나 인문주의의 자극이 종교개혁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니다.(603)

 

종교개혁의 뿌리는 성서주해에 있으며, 그 시대의 교회문제에 대한 비판, 더 나아가 정치적 상태나 인문주의의 자극이 종교개혁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니다.

 

독일어 원문: Die Wurzel der Reformation liegt in der Schriftauslegung weder die Kritik an den zeitgenössischen kirchlichen Verhältnissen noch besondere politische Konstellationen noch die Impulse des Humanismus haben die Reformation hervorgebracht.

 

weder A noch B noch C haben die Reformation hervorgebracht

 

= 종교개혁을 불러일으킨 것은 ABC도 아니다

 

 

A = die Kritik an den zeitgenössischen kirchlichen Verhältnissen

 

= 그 시대 교회문제에 대한 비판

 

B = besondere politische Konstellationen

 

= 특별한 정치적 정황

 

C = die Impulse des Humanismus

 

= 인문주의의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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