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다른 한편으로 모든 사역에서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신데, 어떤 한도에서 그 하나님이 창조의 사역에서는 화해나 구원의 사역에서와는 다른 어떤 것을 행하시는지가 설명되어야 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이것은 오로지 창조가 계시로부터 이해될 때, 다시 말해 창조가 창조 안에서 실행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으로부터 이해될 때, 설명될 수 있다. 여기서 계약은 성서가 증언하는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계약이다.”(100)

 

다른 한편으로 모든 사역에서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신데, 어떤 한도에서 그 하나님이 창조의 사역에서는 화해나 구원의 사역에서와는 다른 어떤 것을 행하시는지가 설명되어야 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이것은 오로지 창조가 계시로부터 이해될 때, 다시 말해 창조가 계시 안에서 실행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으로부터 이해될 때, 설명될 수 있다. 여기서 언약은 성서가 증언하는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이다.”

 

독일어 원문: [...] Das ist nach Barth nur zu erklären, indem die Schöpfung von der Offenbarung, von dem in ihr vollzogenen Bund zwischen Gott und Mensch in der biblisch bezeugten Geschichte Israels und Jesu Christi her verstanden wird.

 

von dem in ihr[=der Offenbarung] vollzogenen Bund Gott und Mensch in der biblisch bezeugten Geschichte Israels und Jesu Christi

 

Bund = 언약

 

누가복음 22:20대표적인 한 가지 예을 참고할 것:

 

Desgleichen auch den Kelch nach dem Mahl und sprach: Dieser Kelch ist der neue Bund in meinem Blut, das für euch vergossen wird! (Lutherbibel 2017)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개정개역)

 

그리고 저녁을 먹은 뒤에, 잔을 그와 같이 하시고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표준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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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누락(8)

 

그러나 신론을 이렇게 하나님의 사역에 관한 교리 앞에 위치시키는 것은 그와 함께 바르트가 하나님의 사역 배후에 놓인 어떤 <즉자적>신적 존재를 (<형이상학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가?”(95쪽, 문장부호 수정인용)

 

그러나 신론을 이렇게 하나님의 사역에 관한 교리 앞에 위치시키는 것은, 이로써 바르트가 이 신론을 하나님의 사역 배후에 놓인 어떤 <즉자적>신의 추상적 존재론으로 (<형이상학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가?”

 

독일어 원문: Aber bedeutet diese Vor-Stellung der Lehre von Gott vor die von seinem Werk nicht, daß Barth damit diese Lehre (»metaphysisch«) als die von einem abstrakten Sein Gottes »an sich« hinter seinem Werk auffast?

 

A als B auffassen = AB로 파악하다

 

A = diese Lehre = die Lehre von Gott = 이 신론

 

B = die [Lehre] von einem abstrakten Sein Gottes = 신의 추상적 존재론

 

• 빠진 단어─abstrakt를 보완하고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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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누락(7)

 

따라서 삼위일체론은 교의학에서 <먼저 말해져야 하는 것>(프로레고메나)에 속하는 것으로 강조된다. 바르트는 삼위일체론이 <계시에 대한 필수적이고 적합한 분석>이라고 이해한다.”(91, 문장부호 수정인용)

 

따라서 삼위일체론은 교의학에서 <먼저 말해져야 하는 것>(프로레고메나)에 속하는 것으로 강조된다. 바르트는 삼위일체론이 <계시에 대한 필수적이고 적합한 분석>이라고 이해한다 (/1, 327).”

 

독일어 원문: Er[=Barth] versteht sie[=die Trinitätslehre] als »notwendige und sachgemäße Analyse der Offenbarung« (/1, 327)

 

빠진 출전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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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교의학은 <프로레고메나>(Prolegomena, 서론)로 시작한다. 19세기의 교의학은 그것을 일반적·인간적인 그리고 인간적·종교적인 전제들, <신앙론>을 가능하게 만드는 전제들을 미리 서술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바르트는 자신의 교의학에서 프로레고메나를 이와 정확하게 반대로 이해하면서 곧바로 북소리를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프로레고메나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의 전제 아래서) 내용과의 연속성 안에서 단지 앞서(zuerst) 말하는 것이며, (믿음의 전제 없이 이성적으로) 내용과 독립적으로(vorher) 믿음을 해명하는 것이 아니다>(KD /1, 41)”(88, 인용부호 수정인용)

 

교의학은 <프로레고메나>(Prolegomena, 서론)로 시작한다. 19세기의 교의학은 그것을 일반적·인간적인 그리고 인간적·종교적인 전제들, <신앙론>을 가능하게 만드는 전제들을 미리 서술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바르트는 자신의 교의학에서 곧바로 파문을 일으키며, 즉 기존 이해와 정확히 반대되는 프로레고메나의 이해로 시작했다. 프로레고메나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의 전제 아래서) 내용과의 연속성 안에서 단지 앞서(zuerst) 말하는 것이며, (믿음의 전제 없이 이성적으로) 내용과 독립적으로(vorher) 믿음을 해명하는 것이 아니다>(KD /1, 41)”

 

독일어 원문: [...] Barth hebt in seinem Werk gleich mit einem Paukenschlag an, mit einem dem genau entgegengesetzten Verständnis der Prolegomena: [...]

 

Paukenschlag = Eklat = 파문, 센세이션

 

독일어 <Duden>사전을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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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크리스토퍼 프라이(Chr. Frey)는 바르트와 틸리히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틸리히는 <새로운 목재들을 가지고 낡은 건축구조를 축조하는 반면에바르트는 낡은 목재들을 사용하여 새로운 구조물을 만들어낸다.> 다른 비유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제교회교의학움직였던 그 지형 위에서 그것이 앞으로 나아갔던 길들로부터, 하나의 지도를 그려보려고 시도할 것이다.”(88, 문장부호 수정인용)

 

크리스토퍼 프라이(Chr. Frey)는 바르트와 틸리히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틸리히는 <새로운 목재들을 가지고 낡은 건축구조를 축조하는 반면에바르트는 낡은 목재들을 사용하여 새로운 구조물을 만들어낸다.> 다른 비유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제교회교의학통과해 움직였던 그 풍경들과교회교의학이 앞으로 나아갔던 그 길들의 지도 그려보려고 시도할 것이다.”

 

독일어 원문: [...] Es sei versucht, noch einmal in jenem anderen Bild gesprochen, eine Landkarte von den Landschaften zu zeichnen, durch die diese Dogmatik sich bewegt, und von den Wegen, auf denen sie hier vorwärtsgeht.

 

eine Landkarte von A und B zu zeichnen

 

= AB의 지도를 그리다.

 

A = von den Landschaften zu zeichnen, durch die diese Dogmatik sich bewegt

 

B = von den Wegen [zu zeichnen], auf denen sie hier vorwärtsgeht.

 

Landschaft = 풍경

 

지형 = Bodengestalt, Bodenbeschaffenh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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