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로마서, 손성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17(8).

 

57쪽 각주 55:

 

Ch. Ragaz, Die Revolution der Frau, S. 361-372

 

Cl. Ragaz, Die Revolution der Frau, S. 361-372

 

Clara Ragaz

 

이름 약자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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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로마서, 손성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17(8).

 

Prägung(2)

 

이 인용 부호를 통해서 바르트는 당시 공적으로 자주 논의되던 주제, 혹은 어떤 특정한 의미로 낙인되어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개념들을 암시한다.(56)

 

이 인용 부호를 통해서 바르트는 당시 공적으로 자주 논의되던 주제, 혹은 어떤 특정한 의미로 형성되어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개념들을 암시한다.

 

독일어 원문: Barth spielt damit vielmehr auf damals in der Öffentlichkeit häufig besprochene Themen oder in einer bestimmten Prägung allgemein verwendete Begriffe an.

 

Prägung = 특징,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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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로마서, 손성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17(8).

 

Prägung(1)

 

57쪽 각주 54:

 

살아 있는 인격 개념은 자유주의자로 낙인 찍혔던 바르트 자신의 초기 신학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살아 있는 인격 개념은 자유주의적 특징의 바르트 자신의 초기 신학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독일어 원문: Auch in Barths eigener früher Theologie liberaler Prägung kommt den lebendigen Personen zentrale Bedeutung zu.

 

Prägung = 특징,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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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로마서, 손성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17(8).

 

이 비판은 당시 행해지던 논의 곧 신약성경의 학문적이해에 영향을 끼쳤다.(52)

 

이 비판은 당시 행해지던 논의 곧 신약성경의 학문적이해 관련된다.

 

독일어 원문: Diese Kritik berührt die damals geführte Diskussion über das «wissenschaftliche» Verständnis de Neuen Testaments.

 

berühren = betreffen = 관계하다. 얽히다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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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로마서, 손성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17(8).

 

바르트는 1920418 바젤에서 하르나크와 피셔E. Vischer를 만났는데, 두 신학자는 그 자리에서 특별히 바르트의 주지주의를 비판했다. 그때 오고 간 말들은 하르나크가 1920426일 피셔에게 쓴 편지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하르나크가 바르트의 아라우 강연을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이 썼다. “이런 유의 종교는 실제[...] [...]에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 사람들은 목사가, 다시 말해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판단을 하는지 매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제 경우에는 주일의 대화를 통해서 그런 인상이 약화되긴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대화를 통해서 바르트도 자신이 자의적으로 꾸민 성경 문자주의[...]Biblizismus로부터 벗어나기만 한다면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50)

 

바르트는 1920418 바젤에서 하르나크와 피셔E. Vischer를 만났는데, 두 신학자는 그 자리에서 특별히 바르트의 주지주의를 비판했다. 그때 오고 간 말들은 하르나크가 1920426일 피셔에게 쓴 편지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하르나크가 바르트의 아라우 강연을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이 썼다. “이런 유의 종교는 실제[...] [...]에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없습니다. [...] 사람들은 목사가, 다시 말해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판단을 하는지 매번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경우에는 그 일요일[1920. 4. 18]의 대화를 통해서 그런 인상이 약화되긴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대화를 통해서 바르트도 자신이 자의적으로 꾸민 성경 문자주의[...]Biblizismus로부터 벗어나기만 한다면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독일어 원문: Während Barths Zusammentreffen mit A. von Harnack und E. Vischer in Basel am 18. 4. 1920 haben ihn beide Theologen u.a. des Intellektualismus beschuldigt. Was damals mündlich gesagt wurde, kann ergänzt werden anhand des Briefes von Harnacks an E. Vischer vom 26. 4. 1920, worin er im Blick auf Barths Aarauer Vortrag schreibt: « [...] Gemildert hat sich mir der Eindruck nur durch die persönliche Aussprache am Sonntag, die mir eine kleine Hoffnung gegeben hat, Barth könne noch sich ändern, wenn er sich von seinem willkürlich zurecht gemachten Biblizismus befreit.»

 

am Sonntag = 그 일요일에 = 1920418

 

대괄호를 써, 내용을 보완했다.

 

아울러, 편지의 종결어미를 습니다로 통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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