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루터는 예를 들어, 1543 울리히 공작의 뷔르템베르크 재탈환 사건, 1542년 부르첸Wurzen 수도원의 재산을 둘러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와 그의 사촌 모리츠의 갈등, 그리고 1542-1545년 사이에 브라운슈바이크에 대항하여 일어난 군사 행동과 같은 문제들에 깊숙이 관여하였다.(173)

 

루터는 예를 들어, 1534 울리히 공작의 뷔르템베르크 재탈환 사건, 1542년 부르첸Wurzen 수도원의 재산을 둘러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와 그의 사촌 모리츠의 갈등, 그리고 1542-1545년 사이에 브라운슈바이크에 대항하여 일어난 군사 행동과 같은 문제들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독일어 원문: Intensiv haben ihn beschäftigt u. a. die Rückeroberung Württembergs für Herzog Ulrich 1534 oder die Wurzener Stiftsfehde 1542 oder die Feldzüge gegen Braunschweig 1542 bis 1545.

 

연도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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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저술을 통해 전개된 이 [성만찬] 논쟁은 주로 1525-1529사이에 일어났다.(164)

 

저술을 통해 전개된 이 [성만찬] 논쟁은 주로 1524-1529 사이에 일어났다.

 

독일어 원문: Die literarische Auseinandersetzung wurde hauptsächlich von 1524 bis 1529 geführt.

 

연도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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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마찬가지로 항상 음모를 꾸미며 모든 힘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항하여 싸우는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그리고 인간이 성령의 거룩한 능력에 사로잡히지 않는 한 마귀는 그의 포로인 인간을 풀어 주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면, 다시 자유의지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진다.(156)

 

마찬가지로 항상 음모를 꾸미며 모든 힘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항하여 싸우는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그리고 마귀가 성령의 거룩한 능력에 의해 격퇴되지 않는 한 마귀는 그의 포로인 인간을 풀어 주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면, 다시 자유의지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독일어 원문: So, wenn wir glauben, daß Satan der Fürst dieser Welt ist, indem er dem Reich Christi mit allen Kräften ständing nachstellt und gegen es kämpft, um die gefangenen Menschen nicht freizulassen, falls er nicht durch die göttliche Kraft des Geistes zurückgedrängt wird, so ist es wiederum offenbar, daß es keinen freien Willen geben kann [...].

 

falls er[=Satan] nicht durch die göttliche Kraft des Geistes zurückgedrängt wird

 

= 만일 사탄이 성령의 신적 능력에 의해 격퇴되지 않는다면

 

문장을 바로잡았다.

 

 

 

다음 번역문을 참고할 것:

 

이렇듯이 만일 사탄이 이 세상의 통치자란 사실을 우리가 믿는다면 사탄은 그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항하여 영원히 음모를 꾸미고 대적하고 있다. 그리고 사탄이 자신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을 성령의 거룩한 능력이 강요하기 전까지는 놓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유 선택과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다.(451)

 

마르틴 루터, 노예 의지에 관하여, 김주한 옮김,루터와 에라스무스: 자유 의지와 구원(기독교고전총서 16), 두란노아카데미, 2011(2). 145-453.

 

추기: 2019.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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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다른 한편, 에라스뮈스는 무엇보다도 윤리적 요구에, 혹은 공관복음서에서 볼 수 있는 제자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155)

 

다른 한편, 에라스뮈스는 무엇보다도 공관복음서에서 볼 수 있는 윤리 혹은 제자도의 장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Andererseits muß berücksichtigt werden, daß Erasmus vor allem bemüht ist um die Förderung der Ethik oder der Nachfolge im Sinne der synoptischen Evagelien.

 

um die Förderung der Ethik oder der Nachfolge im Sinne der synoptischen Evagelien

 

= 공관복음적 복음서들의 의미에서 윤리 또는 본받음의 장려에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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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루터는 에라스뮈스에 대해 칭찬한 적도 많았고, 후에 나온 그의 저술들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었다. 에라스뮈스 자신도 압력이 없었다면 루터와의 논쟁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149)

 

루터는 에라스뮈스에 대해 칭찬한 적도 많았고, 후에 나온 그의 저술들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잠재해 있던 이견들이 은폐될 수는 없었다. 자발적으로 루터는 에라스무스를 공격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에라스무스의 업적을 루터는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에라스뮈스 자신도 압력이 없었다면 루터와의 논쟁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Mancherlei wohlwollende Bemerkungen, die in den folgenden Jahren auch von Luther gemacht wurden, konnten doch die latenten Differenzen nicht verdecken. Von sich aus hätte Luther Erasmus schwerlich angegriffen; dazu schätzte Luther die Leistungen des Erasmus zu hoch ein. Erasmus seinerseits hätte von sich aus wohl ebenfalls keinen Streit angefangen, er tat es vielmehr nur unter Druck.

 

빠진 부분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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