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른후트 형제단, 2024 말씀, 그리고 하루 - 2024 헤른후트 로중, 김상기홍주민 옮김, 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 2023(11).

 

2024616, 주일

 

생명의 떡, 반드시 먹어야 하는 생명의 떡인 당신이 하늘로부터 오셨으니, 당신을 취하지 않은 영은 굶주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영혼은 오직 당신이 고플 뿐입니다. 당신을 나에게 주소서, 당신을 나에게 주소서! 니콜라우스 루드비히 폰 친첸도르프

 

생명의 떡, 반드시 먹어야 하는 생명의 떡인 당신이 하늘로부터 오셨으니, 당신을 취하지 않은 영은 굶주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영혼은 오직 당신이 고플 뿐입니다. 당신을 나에게 주소서, 당신을 나에게 주소서! 니콜라우스 루트비히 폰 친첸도르프

 

독일어 원문: Lebensbrot, Lebensbrot, unentbehrlicher Genuss, du bist von dem Himmel kommen, weil die Seel verhungern muss, die dich nicht zu sich genommen. Meine Seele hungert nur nach dir, gib dich mir, gib dich mir! Nikolaus Ludwig von Zinzendorf

 

인명을 바로잡았다.

 

Ludwig = [ˈluːtvɪç] = 루트비히

 

 

아래, 독일어 발음사전을 볼 것:

 

Duden Aussprachewörterbuch, 2005, 520.

 

https://de.wikipedia.org/wiki/Ludw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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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세 번째 복음서의 알려지지 않는 저자는 누가복음 1:1-4에서 독자들에게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의 전승의 확실성을 입증하기를 원하는, 문학 교육을 받은 신학자이자 역사가로 자신을 드러낸다. 누가가 헬라식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453)

 

세 번째 복음서의 알려지지 않는 저자계속해서 누가로 불러야 한다 누가복음 1:1-4에서 독자들에게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의 전승의 확실성을 입증하기를 원하는, 문학 교육을 받은 신학자이자 역사가로 자신을 드러낸다. 누가가 헬라식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

 

독일어 원문: Der unbekannte Verfasser des 3. Evangeliums, der weiterhin Lukas genannt werden soll, gibt sich in Lk 1, 14 als ein literarisch gebildeter Theologe und Historiker zu erkennen, der seinen Lesern vor allem die Zuverlässigkeit der christlichen Lehrtradition erweisen will. Die hellenistische Bildung des Lukas [...].

 

번역을 바로잡았다.

 

der[=Verfasser] weiterhin Lukas genannt werden soll

 

= 계속해서 누가로 불림 받아야 할 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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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결국 초대 교회 전승이 누가를 바울의 수행원으로 결정한 것은 오직 신약성서에서 유래했음을 보여준다.(453)

 

결국 고대 교회 전승이 누가를 바울의 수행원으로 결정한 것은 오직 신약성서에서 유래했음을 보여준다.

 

독일어 원문: Schließlich gibt die altkirchliche Tradition selbst zu erkennen, dass sie ihre Bestimmung des Lukas als Paulusbegleiter lediglich aus dem Neuen Testament erschloss.

 

단어를 바로잡았다.

 

altkirchlich = 고대 교회의

 

책 전체의 용어 통일고대 교회에 주의할 것.

 

아래 쪽을 볼 것:


38, 237, 301, 350, 450, 630, 636, 695, 811 x 2, 812, 813, 873, 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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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또한 사도행전(13:6-12, 14:8-18, 20:7-12)에서 신적인 인간’(θεος νήρ, 기적 행사자)으로 표현된 바울의 모습은 역사적으로 적절하지 않을 수 있고(참조. 10:1-11:18) 갈라디아서 2:1-10과 모순된다. 거기서 바울은 세 기둥’, 또 베드로와 맞서서 자신의 이방선교를 변호해야 했다.(453)

 

또한 사도행전(13:6-12, 14:8-18, 20:7-12)에서 신적인 인간’(θεος νήρ, 기적 행사자)으로 표현된 바울의 모습은 역사적으로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사도행전의 서술에 따르면 베드로의 이방선교가 바울의 이방선교 보다 앞선다.(참조. 10:1-11, 18) 이것은 갈라디아서 2:1-10과 모순된다. 거기서 바울은 세 기둥’, 또 베드로와 맞서서 자신의 이방선교를 변호해야 했다.

 

독일어 원문; Auch das von der Apg (13,612; 14,818; 20,712) gezeichnete Bild von Paulus als θεος νήρ („göttlicher Mensch/Wundertäter“) dürfte in dieser Form historisch unzutreffend sein. Nach der Darstellung der Apostelgeschichte geht die petrinische Heidenmission der paulinischen voran (vgl. Apg 10,111, 18), was im Widerspruch zu Gal 2,110 steht, wo Paulus seine Heidenmission gegen die ‚drei Säulen‘ und damit auch gegen Petrus verteidigen muss.

 

빠진 문장을 보완하고, 번역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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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452, 각주 411

 

그가 바울의 수행원으로 사도의 아주 인상적인 서신들(참조. 고후 10:10)이나 성공적인 서신 저자인 바울에 관해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해야 했는가? 바울이 교회들과 얼마나 강력한 소통을 했는지 누가는 잘 몰라야 했는가? 필자의 견해로는 누가가 바울의 동역자였고, 서신들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거나 모르기를 원했다는 추측이 더 설득력 있다는 가정은 매우 개연성이 없다.

 

그가 바울의 수행원으로 사도의 아주 인상적인 서신들(참조. 고후 10:10)이나 성공적인 서신 저자인 바울에 관해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해야 했는가? 바울이 교회들과 얼마나 강력한 소통을 했는지 누가는 잘 몰라야 했는가? 필자의 견해로는 두 가지 다 매우 있음직 하지 않는 견해이다. 더 설득력 있는 추측은 누가가 바울의 동행자가 아니어서 편지들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거나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독일어 원문: Sollte er als Paulusbegleiter von den eindruckvollen Briefen des Apostels (vgl. 2Kor 10, 10), vom erfolgreichen Briefschreiber Paulus nichts gehört und gewusst haben? Sollte ihm unbekannt gewesen sein, wie Paulus mit seinen Gemeinden intensiv kommunizierte? Beides sind m. E. sehr unwahrscheinliche Annahmen; plausibler ist die Vermutung, dass Lukas kein Paulusbegleiter war und nichts von den Briefen wusste oder wissen wollte.

 

번역을 바로잡았다.

 

beides sind m. E. sehr unwahrscheinliche Annahmen

 

= 두 가지 다 내 견해로는 매우 있음직 하지 않는 견해이다

 

plausibler ist die Vermutung, dass A

 

= 더 설득력 있는 추측은 A이다

 

dass A = dass Lukas kein Paulusbegleiter war und nichts von den Briefen wusste oder wissen wollte

 

= 누가는 바울의 동행자가 아니어서 편지들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거나 알 수 없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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