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쇄).
교회가─바르트는 불트만 그리고 한스 우어스 폰 발타자르와 논쟁하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다─자신을 “에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실현시킬 수 있는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이미 실현시킨 대변자의 영역” 혹은 “그분의 존재와 행동의…반복”으로 생각하는 곳에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그것은 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을 대변하거나 반복한다고 하는 많은 성자들의 장엄한 영성 안에서” 더 이상 교회적 믿음의 “대상과 근원”이 되지 못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448-449쪽)
→ 교회가─바르트는 불트만 그리고 한스 우어스 폰 발타자르와 논쟁하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다─자신을 “에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실현시킬 수 있는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이미 실현시킨 대변자의 영역” 혹은 “그분의 존재와 행동의…반복”으로 생각하는 곳에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그것은 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을 대변하거나 반복한다고 하는 많은 성자들의 장엄한 영성 때문에” 더 이상 교회적 믿음의 “대상과 근원”이 되지 못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독일어 원문: Wo die Kirche sagt Barth in Auseinandersetzung mit R. Bultmann und H. U. von Balthasar als das »Feld möglicher und teilweise schon verwirklichter Repräsentationen der Geschichte Jesu Christi« oder von »Wiederholungen ... seines Seins und Tuns« verstanden wird, stellt sie es in Frage, »ob Jesus Christus über der ganzen ihn angeblich repräsentierenden und wiederholenden geistilichen Pracht seiner Heiligen« nicht aufgehört hat, »Gegenstand und Ursprung« des kirchlichen Glaubens zu sein.
• über der [...] geistilichen Pracht
= 장엄한 영성 때문에
• über + 3격 = …의 결과로, … 때문에
• 문장을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