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이 바뀌어, 이제 여인이 물을 달라고 요청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런 물이 있으면, 목마르지 않을 테고 번거롭게 물 길으러 우물에 오지 않아도 된다.
     
처음 물을 요청했던 사람은 여인에게 그 남편을 데려오라고 말한다. 이는 고대 사회의 풍습이다. 여인의 의사(意思)는 남편이 확인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여인에게 증여나 양도를 할 수 있다.
     
여인은 자기를 대변할 법률적 남편이 없다고 말한다. 처음 물을 요청했던 사람은 모든 사정을 꿰고 있는 듯, 여인에게 과거 다섯 남편이 있었고 현재 동거인도 남편이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
     
여인은 물을 요청했던 사람이, 자신의 모든 과거를 알고 있는 예언자임을 직감한다. 여인은 예언자에게 평소 궁금했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의 차이를 언급한다.
     
물을 요청했던 사람이 말하길, 장소가 아니라 이제 중요한 것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자가 되는 것이다. 신은 영이시기에, 영과 진리를 통해서만 교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인은 구원자가 올 것인데, 그가 와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 물을 요청했던 사람이 자신이 그 구원자라고 말한다.
     
     
─Joseph von Hempel, Christus und die Samariterin am Brunnen,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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