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Vielmehr, er stellt fest, daß die Kirche, wie gut auch immer, in der Neuzeit schon diesen Weg eingeschlagen habe, und zwar so, daß sie sich vor der Frage »Wozu noch Kirche?« in einer zuvor ungeahnten Weise für die außerkirchliche gesellschaftliche Wirklichkeit und [ihre] Probleme geöffnet habe (/3, 20). (S. 268)

 

나아가 그는 교회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근세에도 이미 바로 그 길을 걸어왔다고 확정한다. 다시 말해 교회는 교회 밖의 사회적인 현실 안에서 교회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하는 질문에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자신을 개방시켰고, 교회 안의 문제들을 드러내어 보였다(/3, 20).(461)

 

나아가 그는 교회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근세에도 이미 바로 그 길을 걸어왔다고 확정한다. 다시 말해 교회는 교회 밖의 사회적인 현실과 그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교회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하는 질문에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자신을 개방시켰다(/3, 20).

 

독일어 원문 오류:

 

für die außerkirchliche gesellschaftliche Wirklichkeit und ihrer Probleme

 

für die außerkirchliche gesellschaftliche Wirklichkeit und [ihre] Probleme

 

= 교회 밖의 사회적인 현실과 그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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