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젊음이 우리 안에서 죽을 때 어떤 충격도 느끼지 못하지만 사실 그 죽음이야말로 쇠약해진 생명이 완전히 죽어 버리는 죽음, 노년의 죽음보다 본질적으로 사실상 더 가혹한 죽음이다. 비참한 존재에서 비존재로 떨어지는 것은, 한창 꽃핀 감미로운 존재에서 고생스럽고 괴로운 존재로 떨어지는 것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지속적인 고통거리, 도저히 헤어날 길이 없는 고통거리일 것이다. 죽음은 어디에서고 닥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위험한 고장에서처럼 끊임없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야 한다.

죽음이 어디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어디서나 죽음을 기다리자. 죽음에 대해 미리 숙고하는 것은 자유를 예비하는 것이다. 죽을 줄 알게 된 사람은 예속을 모른다. 죽는 법을 아는 것, 그것이 우리를 모든 종속과 속박에서 해방시킨다. 생명을 잃는 것이 불행이 아님을 잘 알게 된 사람에게는 인생에 불행이란 없다

필멸의 존재들을 탄생시키는 작업을 홀로 영원히 수행해 가는 이 기관에만 자연이 어떤 특권을 주었다고 해도, 그것이야말로 자연이 행한 합당하고 나무랄 데 없는 작업인 셈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생식을 신성한 행위로 보았고 사랑은 불멸을 향한 욕망으로, 그리고 불멸의 다이몬 그 자체로 여긴 것이다.

요컨대 내 생각으로는 습관이 하지 않는 것도, 할 수 없는 것도 세상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들은 바대로 핀다로스가 습관을 세상의 여왕이요 여제라고 부른 것은 온당한 일이다.

습관의 권능이 가진 가장 강력한 효과는, 우리가 그것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습관의 명령이 합당한지 따지고 판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를 낚아채서 장악한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잔인성과 포악함, 그리고 배신의 진정한 씨앗들이고 뿌리인 것이다. 그런 것들은 거기서 싹이 튼 뒤 이윽고 거침없이 줄기를 뻗으며, 습관의 손 안에서 무성하게 자라난다. 그러니 아직 어려서 그러는 것이라거나 별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못된 습벽들을 접어 두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교육 방식이다. 우선 여기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천성인데, 천성의 목소리는 아직 가녀린 까닭에 더욱 순수하고 분명한 법이다. 두 번째로 속임수는 금화 한 닢이냐 바늘 하나이냐의 차이에 따라 그 추함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 자체가 추해서 추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도널드 서순 지음, 유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위기는 생겨난다. 이 공백기에 다양한 병적 징후가 나타난다. - 그람시 -


 그람시가 묘사하는 위기 국면은 잠재적인 혁명적 상황이 아니라 '병적 징후'들로 가득한 '공백기'였다. 그람시는 낡은 것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지성의 비관주의'와 반대되는 '의지의 낙관주의'를 품은 채 이런 병적 징후들이 진보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기를 기대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 놓인 공백기의 주요한 특징은 불확실성이다... 오래된 강둑이 뒤에 있지만, 반대편은 아직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물살 때문에 뒤로 밀려서 빠져 죽을 위험도 있다. 어떤 일이 생길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 공포에 짓눌린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1/177


 도널드 서순 (Donald Sassoon, 1946 ~ )의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위기에 빠진 21세기 세계의 해부 Morbid Symptoms: Anatomy of a World in Crisis>은 21세기 들어 쇠퇴하는 유럽의 보편적 가치 - 사회주의, 민주주의 - 대신 미국, 영국 중심의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극우포퓰리즘의 대두를 지적한 책이다. 인용된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 ~ 1937)의 글로부터 우리는 전체적인 책의 논조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소멸한 '낡은 것'의 정체를 확인하기는 비교적 쉽다. 사라져가는 낡은 것은 1945년 이후 30년간 서구를 지배한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합의,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 Soziale Marktwirtschaft다. 두 세계의 가장 좋은 것을 합쳐놓은 체제를 가리키는 독일어 표현이다. 탄탄한 경제 성장과 나란히 모든 사람을 위한 복지 확대와 실패한 이들을 위한 맞춤형 보호가 이루어진 복지자본주의 caring capitalism를 말한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44/177


 추운 겨울에 세균과 해충의 번식이 억제되는 것처럼 냉전(冷戰)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냉전 이후 자본주의 일방의 독주 속에 전통적인 가치들은  그 의미를 상실했고, 새로운 가치들이 냉전 이후 사회의 보편기준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와 함께 사회의 중심이슈가 정치에서 경제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시대정신이 요구되었다.


 가치는 변화를 겪는다. 유럽적 가치는 일정한 가치를 장려하고 다른 가치들은 '비유럽적'인 것이라고 깎아내리려고 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구성물이다. '유럽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통일된 일련의 원리와 가치라는 개념은 실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강령으로서 지식인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통일된 가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21/177


 과거 카르타고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사라진 이후 로마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지중해를 제국의 호수로 만들었듯 공산주의가 사라진 세계에서 자본주의는 자유주의의 돛을 달고 급속도로 팽창해나갔다. 바야흐로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비용절감과 이윤극대화를  위한 무한경쟁 시대에 맞춰 유효수요창출보다 효율성을 위한 최소한의 개입이 강조(Laissez-faire)되면서 정책의 우선순위도 바뀌게 되었고, 비효율적인(?) 복지비용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복지국가는 비록 그 성원들이 여전히 소득과 부와 교육 수준에서 불평등하지만, 그래도 다른 어떤 종류의 사회체제의 삶보다 선진 자본주의의 삶을 더 낫게 만들 만큼 충분히 응집력이 있는 민족공동체를 창출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처럼 거의 일반화된 통합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마지막 20년간에 이르러서야 전통적인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를 약화시킴으로써 전후戰後 정당체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사회의 위기가 정치의 위기로 바뀌고 있다. 병적 징후들이 넘쳐난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58/177


 이처럼 서순은 공산주의 붕괴 이후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경제적 요소'로 변화하고, 이같은 기준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정치 또한 변화되었다고 분석한다.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경제우선주의 사상이 사회보편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은 정치부문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세금을 억누르면서 복지 지출을 높게 유지하는게 점차 어려워짐에 따라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는 적어도 어느 정도는 과거 우파의 특권이었던 영역을 점유해야 했다. '현대화', 즉 신자유주의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국유화의 시대, 경제를 기업가 계급에게 맡겨두기보다는 직접 운영하려 한 '온정적 가부장' 국가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시장이 거침없이 활개치게 놔두고 거기서 생겨나는 돈으로 저소득층을 돕는 게 필요했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55/177


 국가주도의 부의 재분배가 아닌 시장 주도의 자율적인 부의 순환이 강조되면서 조세정책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반시장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념과 상관없이 모든 정당의 위치가 우경화(右傾化)되었다. 중도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중도확장을 꾀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은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정당들은 자신들만의 고유색깔을 잃어갔다.


 정치인들은 투표의 의미와 중요성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챙기면서 어쨌든 마음 내기큰 대로 해석한다. 유권자들은 투표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일단 표를 던지는 순간, 자기가 가진 권한과 목표, 바람을 자신이 믿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정치인에게 넘겨주는 셈이다. 투표는 불가피하게 권력을 포기하는 행위다. 권력은 불가피하게 소수에게 집중된다. 문제는 이 소수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분명한 이유 때문에 정치인들은 당원보다 유권자에게 더 신경을 쓴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글이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아는 주된 통로는 여론조사다. 정치인들이 접촉하는 유권자들은 보통 불만이나 망상, 대의명분에 사로잡힌 이들이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는 실패로 치닫는 중이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47/177 


  대신해서 뚜렷해진 것은 보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극우(極右)움직임이다. 저자는 유럽의 경우 이민자와 무슬림에 대한 적대적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우경화 현상은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린 정치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짙어가는 병색임을 지적한다.


 민족과 민족주의 둘 다 유럽 프로젝트에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힘이 세다. 실제로 유럽연합의 모든 문서는 더욱 응집력 있는 공통의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할 때면 언제나 파편화와 혼란, 충돌을 피해야 하고, 응집과 연대, 보완과 협력을 달성하고 회원국들에서 현존하는 민족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한다. 나는 유럽의 정체성을 가르칠 수 없다고 본다. 유럽을 민족국가들의 민족국가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28/177


 서순의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에서 우리는 냉전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를 통해 복지의 쇠퇴와 이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라는 병적 징후에 더해 이를 치료할 정치수단마저 상실한 암담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보다 개방적인 가치관과 폐쇄적인 가치관의 대립 속에서 보편가치가 퇴색하는 현상 속에서 깊어가는 우리시대의 병색. 이러한 위기감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어쨌든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우리의 삶이 좋아졌다면, 그것은 바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아무리 시대가 병들었어도 계속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간 사람들 덕분이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55/177


 저자인 서순이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모습은 결코 밝지 않다. 병적 징후는 완연하지만 차도는 없는 상황에서 깊은 답답함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망해야 할까. 당연하게도 그렇지는 않다. 자유, 평등, 우애(Liberte, Egalite, Fraternite). 프랑스 혁명의 상징과도 같은 표어 속에서 우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상호 충돌할 수 있는 가치가 '우애'를 통해 조화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수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 부의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우리 시대의 질병은 우리의 판도라 상자에 남은 마지막 '희망'을 우애에서 놓지 않을때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는 비단 유럽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완전히 패배하고 있다. 이런 패배 가운데 어느 것도 특별히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좌파 정당이 우파의 의제를 그렇게 많이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었다. 대다수 사민주의 정당은 조만간 긴축 정책을 받아들이고, 임금이 정체하고 불평등이 증대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며, 3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로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했다. 또한 불평등이 증대하도록 용인하면서 승승장구하는 수혜자들에게 과감하게 세금을 물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말한 것처럼, "세금을 인하하고 규제를 완화하면 ... 새로운 고성장의 시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론은 철저하게 불신받고 있다."_ p60/177



사실상 모든 보주주의자와 심지어 일부 좌파도 표명하면서 승리를 거둔 사고는, 유럽에서 경제진보를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물은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과도한 사회복지이며, 규제완화와 민영화는 어느 정도까지 기회를 확대하고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적 시각이 유럽 주요 정당들의 경제 담론에서 굳건하게 중심을 차지했다. 이 시각은 진정한 자유는 시장에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중심적인 전 지구적 서삭 되었다. 실제로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 아니라 워싱턴과 런던에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이르기까지 세계 금융 시스템의 패권적 행위자들이 장려했기 때문이다. _ p134/177

오늘날의 병적 징후들은 앞선 수십년간 이루어진 성장과 번영에 연결되어 있다. 대체로 현재의 불만은 환멸, 희망의 상실과 밀접히 관련되며, ‘담대한 희망‘ 같은 슬로건으로도 희망을 되살리지는 못한다. 오늘날 ‘국제적인‘ 것은 ‘인류‘가 아니라 세계화된 시장이다. 그리하여 대기업과 소수 부자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나라끼리 싸움을 붙이는 한편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고 정부 간섭을 비난하면서 밑바닥을 향한 경쟁을 부추긴다. 각국이 다른 나라에게서 투자를 빼앗아오기 위한 경쟁이다. _ p155/177

우파는 승승장구했지만 ‘극‘좌파는 그만큼 선전하지 못했다. 심지어 오늘날 ‘극좌파‘라는 표현 자체가 1945년 이후 30년간 주류 사회민주주의의 일부였던 입장까지 아우를 정도로 확장되고 있다. 극좌파는 마치 새로운 세력처럼 행동하지만 이 신좌파가 구사하는 언어는 대부분 낡았다. 압도적 다수, 즉 야비한 1퍼센트에 맞서 99퍼센트를 대변한다는 포퓰리즘적 주장을 펴는데, 마치 99퍼센트 자체가 계급과 젠더, 정치, 종교, 교육, 지역, 연령에 따라 나뉘지 않은 듯 행세한다. _ p92/177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8-10 2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냉전의 핵심이 체제경쟁이었으니 특히 자본주의 체제는 공산주의 체제와의 대결에서 우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가지 복지정책을 추진할 수 밖에 없던 면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박정희가 의료보험체계를 유럽식으로 가져온것도 순전히 북한과의 체제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었으니까요. 대결하던 한 체제가 무너지고 난 이후 자본주의의 극단인 신자유주의는 그야말로 야만적인 자본의 논리가 일방적으로 장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네요. 어쩌면 그람시의 저 말이 현재의 위기에 대한 직관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새로운 것은 무엇이고 그것은 언제가 될지 고민이 많아지기도 하네요.

겨울호랑이 2022-08-10 22:18   좋아요 3 | URL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체제간 대립이 격심하던 시기에 약자들에 대한 복지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복지제도가 반드시 예산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와 함께, 과연 갈등과 대립이 모든 이에게 나쁜 것이며, 평화가 모든 이에게 좋은 것인가에 대한 물음도 던지게 되네요. 이런 면에서 본다면 향후 미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신냉전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바람돌리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8-10 2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었습니다.
좋다고 하시니 장바구니로!

겨울호랑이 2022-08-10 22:51   좋아요 3 | URL
우리 시대의 문제점에 대해 통찰력있게 짚어 준 책이라 생각됩니다. 그레이스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과거에 갖고 있던 믿음을 내려놓도록 사람들을 설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뻔한 속임수를 알기 쉽게 설명해줬을 때도 그러하니,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 아닐까? 나는 이제 내가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대신 내 논리를 최대한 명확하게 밝히고, 상대방이 앞으로도 계속 충분한 정보와 대안적인 설명을 접한다면 언젠가는 훌륭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설명을 받아들일 거라고 바랄 뿐이다.

나는 교육과 인내 그리고 정직함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그중 무엇도 빠른 효과를 내지는 못한다.

요약하자면 항성처럼 살아 있지 않은 물질은 자연 법칙 외에 과학이 감지할 수 있는 그 어떤 목적도 갖고 있지 않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단기적 목적을 실제로 가지고 있다. 바로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목적은 특정 물리적 분자와 세포 복합체 그리고 신체에 한정되어 있으며, 장기적 목적을 지향하지 않는 유기체의 진화가 가져온 결과다. 한 유기체의 생존과 번식은 수천 세대 앞의 미래를 내다보며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형이상학적 목표, 목적, 운명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실재한다는 경험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은 소설 《모비 딕Moby Dick》의 에이햅Ahab 선장을 통해 운명이란 개념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에이햅 선장은 자신의 인생이 운명에 의해 통제되며, 흰 고래 모비 딕을 잡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 고래를 사냥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믿는 듯 보인다.

목적론적 믿음을 갖는 사람들 중에는 종교를 통해 그렇게 된 사람이 많지만, 일부 사람들은 우주 그 자체가 어떤 신비로운 방식을 통해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미리 예정되어 있는 어떤 최종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기도 한다. 초기의 일부 진화론자들은 진화를 미리 운명 지워진 경로를 따라 펼쳐지는 과정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이런 믿음의 핵심적인 요소는 이렇게 진화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결국 인간이 무대에 등장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목적론은 본질적으로 목적에 관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덕성도 그렇지만 용맹에도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넘는 순간 우리는 어느덧 악덕의 길 위에 서 있게 된다. 이 한계를 잘 알지 못하면 용맹에서 무모함, 고집불통, 어리석음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연약함에서 비롯된 과오와 악의에서 비롯된 과오를 엄격히 구별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자연이 우리 내면에 새겨 놓은 이성의 법칙을 의식적으로 거스르는 것이지만, 전자의 경우라면 바로 그 자연을 우리 쪽 증인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게 그 같은 결핍과 결함을 넣어 준 장본인으로 말이다.

공포는 참으로 기이한 정념이다. 의사들은 어떤 정념도 공포만큼 빠르게 우리의 판단력을 평정 상태에서 몰아내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공포 때문에 분별을 잃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아무리 침착한 사람이라도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끔찍한 혼란을 겪는 게 분명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8-09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0 0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원자력발전소는 '심층방어'의 개념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심층방어의 예로는 다중방호를 들 수 있습니다. 다중방호란 여러 겹의 방호벽을 설치하여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누출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국내 원전은 핵연료 펠릿, 피복관, 원자로 용기, 원자로건물 등의 방호벽을 갖추고 있지요. 아울러 심층방어와 관련하여 원전은 다중성, 다양성, 독립성의 기본적인 설계 특성을 가지고 사고 예방을 위한 각종 안전설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147


 에너지 그리드를 서로 쉽게 적용시킬 수 있는 유럽과 달리 전력망이 고립된 우리나라는 무탄소 에너지인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함께 하는 에너지믹스 추진을 고민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양 날개로 하되,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비한 전력 인프라 개선 및 청정발전 신기술 개발 병행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엄격한 안전성 평가를 전제로 가동원전 계속운전, 대형 원전 신규 건설 및 소형모듈언자로(SMR) 개발하고 건설하는 것을 모두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184


 어근선의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은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과 미래 에너지로서의 원자력을 말하는 책이다. 현재 가동중인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장치와 원자력 발전의 경제성과 현재 보유중인 기술수준, 안보적인 측면 등 여러 각도에서 바라봤을 때 원자력은 미래 에너지원이라는 것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여기에 더해 해외 원자력 운영 현황 등 세계적인 흐름을 알기 쉽게 소개한 점은 교양과학서로서 책이 가진 장점이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가볍게 지나가는 설명 안에는 문제에 담긴 심각성의 정도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대중 교양서로서의 한계점도 분명 함께 자리한다. 


 설계 시 당연히 고려해야 할 규모의 쓰나미를 무시하여 촉발된 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입니다. 후쿠시마 원전은 원자로 외부건물이 두께가 얇아 내부에서 발생한 수소 폭발을 감당하지 못하고 훼손되었고요.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바다로 대량 유출되어 큰 피해를 일으켰습니다. 반면 TMI-2 원전 사고는 기기 고장 후 계측 미흡 등으로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면서 내부에서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려 원자로가 훼손되었습니다. 그러나 두께 1미터에 달하는 격납건물은 훼손되지 않아 대부분의 방사성 물질이 외부환경으로 누출되지 않았습니다.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84


 본문에서 저자는 원자력 발전소의 여러 사고에 대해 언급한다. 그중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에 대한 설명을 통해 원전사고가 원자력 발전소의 고유문제가 아닌 실행과정에서의 불가피성 - 정책의 오류 또는 자연재해 -을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원래 원자력발전소는 큰 문제가 없는데, 재난상황을 고려치 못한 현실이 사고원인이었다는 저자의 설명은 처음에는 그럴듯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의문을 갖게한다.  그렇지만, 모든 정책 결정의 문제가 결국 유한자원이라는 제약조건 하에서 BCA(Benefit- Cost Analysis)의 결과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과연 자연에 의한 위험을 원전의 위험과 분리할 수 있을 것인가. 발생확률이 낮더라도 그 결과가 치명적이라면, 이에 대한 고려가 설계단계부터 반영되었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또한, 오염수 문제는 '하나의 과제' 수준이 아닌 오늘날 우리에게 간접적인 '방사능 피폭'과도 같은 위협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정리하자면, 일본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일본 정부의 표현으로는 '상정하지 못한') 대형 지진에 의한 쓰나미(지진해일)로 인해 원전의 냉각기기들에 전력을 공급하는 장치가 피해를 입어 작동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p94)... 도쿄 전력 자료에 근거하면 2호기에서 누출되는 고농도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물질의 양은 2011년 4월 18일 당시 330경 베크렐이라고 했고요. 누출된 방사성물질이 해양과 지하수에 더 이상 퍼지지 않게 하고 정화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입니다.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98


 후쿠시마 원전에서도 대량의 방사성 폐기물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 처분 방법은 정해지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에는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와는 달리,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는 대량의 오염수도 나왔다. 그 정화를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오염수를 정화한다고 해도 방사성 물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염수의 처리에는 필터나 방사성 물질의 흡착체 등을 사용한다. 오염수 중의 방사성 물질은 그들에게 옮겨갈 뿐이다. 오염수는 핵연료에서 녹아 나온 방사성 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그 처리가 진행되면 필터나 흡착제에 방사성 물질이 고농도로 축적된다. 그러한 매우 높은 방사능을 가진 폐기물을 어떻게 처분하느냐 하는 것도 이제부터의 큰 과제이다. _뉴턴코리아 편집부, <원자력 발전과 방사능> , p94


 2022년 7월 일본정부가 발생한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가 현실화된 우리에게 접하면서 이것을 일본정부의 부도덕함이나 일본원전 발전소의 불안정한 위치에서 발생한 위험과 원자력 발전의 고유한 위험의 구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과연 이러한 일이 반복될 것인가.   


[관련기사] 일본정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최종 결정. https://www.greenpeace.org/korea/report/23304/fukushima_wasted_international_law/


 우리나라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은 포화가 임박했으나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정책/제도적 준비에 아쉬움이 있는 것 같네요. 국내 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은 월성원전부터 시작하여 순차적으로 포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러한 상황이 오게 된 것은 사용후핵연료 안전한 관리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162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회적인 사건이라면 방사성 폐기물 문제는 보다 장기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보다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다.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다루는데 저자는 본문에서 1978년 고리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처음으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부족했던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사실,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적절한 처리를 하고 있는 곳은 전세계적으로 단 한 곳도 없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동시에,  원자력 발전이 가진 장기적이고 세계적인 위험요소이기도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의 입장은 어떠한가.


 핀란드는 1983년부터 부지 선정에 착수하여 2001년에 올킬로오토 부지를 최정 선정하였습니다. 현재 지하 450m 암반에 위치하는 심지층 최종처분장 건설 완료 단계이며, 2025년 경에 운영 개시가 예상된다고 합니다. 스웨덴의 경우는 1992년 부지 선정에 착수하여 2009년 포스마크 부지를 최종 선정하였고요, 현재 건설허가 심사 단계라고 하네요.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162


 우리나라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방폐물 관리법 제6조에 따라 고준위 방폐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5년마다 수립하는 법정 계획입니다. 제1차 기본계획은 제6차 원자력진흥위원회가 수립하여 2016년 7월 의결하였습니다.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164


  준비부족을 비판하면서도 저자는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그 전에 안전을 담보하는 운영프로그램과 파이로 처리기술(Pyro-processing)과 같은 기술분야에서의 혁신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핵(核)의 안전성과 비확산성을 동시에 담기위한 연구개발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시간이 요구되고, 이러는 사이에도 방사성 폐기물은 꾸준히 생겨나 포화상태에 가까워진다는 점 등을 생각한다면 방사성 위험을 쉽게 생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사용후핵연료가 정말로 위험하고 후손들에 항구적인 멍에가 될까요? 만일 그렇다면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부지 확보에 대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관한 저의 생각은 원자력 안전 전문기관의 객관적이고 철저한 심사 및 검사 하에 사용자가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노화 관리 프로그램 등을 갖추면 미국의 원자력규제기간인 NRC가 발표했듯이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하는 방사성 폐기물은 습식 및 건식 저장으로 안전하게 저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161


 만약 파이로 처리기술이 성공하여, 경수로 사용후핵연료를 파이로 처리하면 폐기물 발생량이 약 1/20로 감소하며 사용후핵연료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라늄 및 초우라늄원소를 회수하여 고속로에서 연료로 재활용하고, 파이로 공정에서 발생하는 핵분열생성물만을 처분하면 된다. 그러면, 처분면적은 1/60~1/100 축소 가능하고, 고준위폐기물의 방사능 독성도 감소기간을 1/1,000으로 단축가능하다. 즉, 악티늄 핵종들을 회수하여 고속로에서 연소시킴으로써 처분대상 고준위 폐기물의 독성이 천연우라늄 수준으로 감소하는 기간을 30만 년에서 약 300년으로 단축 가능하다. _ 박정균, <원자력과 방사성폐기물> , p260/308


 만약, 성공적인 관리 프로그램과 폐기물 처리 기술이 우리가 그리던 시나리오대로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방사성 폐기물 뿐 아니라 수명을 다한 원자력 발전소 처리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과 위험은 절감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0으로 수렴할 뿐, 0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세대가 지불해야 할 비용을 결정하는 시점에 정작 그들의 의사는 결정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세대간 전가 비용과 위험이 높은 원자력을 미래 기술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기본적으로 문제는 위험성을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의지의 문제인 것이다. 지질학적으로 안전한 곳에 위치시키고 현재의 공학적 최고 기술과 방법으로 건설된 지하처분장으로부터 허용 가능치를 넘는 방사성핵종이 빠져나올 가능성은 매우 작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매우 쉽다. 그렇지만 그러한 가능성은 존재한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분명한 것은,  그 대답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위험과 혜택간의 균형에 대해 그리고 다른 것과 상대적으로 비교되어 느껴지는 위험성의 크기에 대한 어떤 합의 같은 것에 결국 달려 있다. 이러한 정책의 문제 외에도 세대간 형평성과 관련된 문제도 있다. 이는 '이 세대의 우리가 값싼 전력의 혜택을 누리고 있고 그로 인해 다가올 세대에게 위험과 재앙을 만들어 준다'는 간단한 사실로 귀결된다. 이삼십년 동안 폐기물 처분을 연기한다고 결정하게되면, 우리는 심각한 위험뿐 아니라 난처한 기술적 문제까지도 후세에게 물려주게 될 것이다. _ 콘라드 크루우스코프, <방사성폐기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 p223 


 원자력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성과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원자력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이 있다. 어느 정도 이유가 있는 설명이다. 대체에너지로 언급되는 태양력, 풍력, 수력 등은 발전 장소, 저장 등의 이유로 완전한 대안이 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산업용 발전이 아닌 가정용 발전 등에 있어서는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에너지 대체는 대기업 중심의 에너지 산업을 해체하고 小國寡民(소국과민)이라는 보다 생태적인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중소 수력 발전은 개별 발전 시설의 발전량은 많지 않지만, 설치할 수 있는 장소가 많기 때문에 발전 가능한 자원량으로는 상당한 양이 된다. 일본 환경성의 '재생 가능 에너지 잠재력 조사'에 의하면, 일본의 중소 수력 발전의 자원량은 하천 부분에서 1,650만 KW, 농업 용수로에서 32만 KW에 이른다. 표준적인 원자력 발전소의 10기가 넘는 발전 능력이 여러 곳에 감추어져 있는 셈이다. _뉴턴코리아 편집부, <전력과 미래의 에너지> , p94


 새로운 녹색 에너지는 중앙 집중식이 아닌 분산 방식을 요구한다. 태양은 모든 곳에서 빛나고 바람은 모든 곳에서 분다. 즉 건물 옥상이나 지형을 따라 수백만 개의 마이크로 발전소를 설치하면 어디에서나 수확할 수 있는 것이다. 화석연료에서 녹색 에너지로의 전환은 비유적으로든 문자 그대로든 "파워를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것과 같다(p55)... 태양광 및 풍력 에너지 수확 기술의 비용 하락으로 인한 에너지의 민주화는 전기 협동조합의 조기 채택과 더불어 화석연료 분야의 인력을 붕괴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발전 및 전기 유틸리티 산업을 뒤흔들며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하고 있다. 전 세계의 거대 전력/전기 유틸리티 회사 중 다수가 화석연료 산업에서 빠르게 분리되어 수백만의 협동조합에서 생산되는 녹색 에너지를 관리하는 한편 고객을 위한 에너지 서비스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고 있다. _ 제러미 리프킨, <글로벌 그린 뉴딜> , p57/226


 이에 대해, 원자력 발전의 저렴한 발전단가를 이유로 대체에너지의 경제성 없음을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대해서는 현재 원자력 발전단가에 포함되지 앟는 방사성폐기물 산정 비용, 원자력 발전소 폐쇄 비용도 함께 고려한다면 쉽게 원자력발전을 경제성있는 생산방식이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비용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어 발전단가에 직접 넣기 어렵다면, 현재까지 산정가능한 금액이라도 충당금 항목으로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고리1호기가 2017년 6월 영구 정지함에 따라 5년 정도 냉각기간과 단반감기 핵종들이 소멸하기를 기다린다. 이후 원자로 해체 준비를 완료하면, 사용후핵연료를 인출하여 다른 부지에 격리 저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소만 있을 뿐, 원전해체 시 이를 보관할 중앙저장시설 등의 대안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제 202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원전해체 사업에 돌입할 시점이 된다. 격납용기, 열전달계통 등 발전소 장비는 전부 꺼내 폐기하거나 제염작업을 해야 한다. 각종 펌프류, 터빈 등 장비들을 모두 제거하게 되면, 본격적인 원전 구조물 해체 철거를 하게 된다. 발생할 폐기물량도 엄청난데, 약 6,000톤 규모 폐기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사업기간도 10년 이상 소요될 것이다. 투자금액도 약 1조 원 수준이 소요될 것이다. _ 박정균, <원자력과 방사성폐기물> , p259/308


 이와 함께 아래 기사는  '친환경 에너지'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국내 보유 원자력 기술의 활용의 길이 쉽지 않음도 보여준다. 방사성 폐기물까지 완전히 처리할 수 있는 완벽한 계획과 기술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친환경 기술로 인정치 않겠다는 유럽의회의 결정은 향후 변경될 수 있겠으나, 적어도 현재까지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관련기사] 까다로운 조건 붙은 유럽 '친환경 원전'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86030_35744.html


 에너지 안보와 관련한 원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상황에 대한 대비도 좋지만, 동북아에 평화가 정착되어 국제적인 협력을 통한 대체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이 가능하다면 원전에의 지나친 의존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에게 알려진 원자력 발전의 이면에는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음도 함께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원자력으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더불어 검토해 볼 것이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제안한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이다. 한국-북한-중국-몽골 4국 합작 재생에너지건설 프로젝트로, 4국이 합자해 드넓은 몽골사막에 거대한 태양광, 풍력 발전시설을 하고, 생산한 전기를 4국이 나누어 쓰는 안이다. 문제는 송전선이 북한을 통과해야 하고, 먼 거리를 전송하느라 전력 손실이 크다는 것이 단점이다. 정치적 해결만 가능하다면 한국에게 매력적인 프로젝트다. _ 박정균, <원자력과 방사성폐기물> , p278/308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한국경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한국경제재건계획(네이산 보고 Nathan Report)'는 당시의 여건을 고려해서 교통에서는 철도 중심, 에너지 발전에서는 수력 중심의 정책을 조언했다. 한국경제발전은 이같은 경로를 따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매우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 이것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현재 시점의 최적화'가 반드시 미래의 최적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점은 현재 우리의 원자력 발전에 있어서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다소 앞뒤 없었지만, 원자력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한 페이퍼를 이 정도로 갈무리한다...


 한국이 장래 최대한의 외화를 유지하여야 할 장기적 필요성에 비추어보아 화력발전보다도 경비의 이점이 없어질 한계까지 수력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발전의 요구에 대비하면 하류(河流)의 특징으로 인하여 전적으로 수력에 의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고정 설비 건설의 한계 내에서 최대한의 수력 발전과 최소한의 화력 발전을 도모하는 데 일반적 목표를 두어야 한다. _ 조영준 외,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한 진단과 처방 : 네이산보고(1954)의 재발견> , p433


 도로 복구 계획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남한에 상당한 인구를 가진 도시 중심지의 수가 얼마 안 되고, 극히 단거리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로 수송에 의하는 것보다 철도나 수로로 수송하는 것이 더욱 경제적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여서는 안 된다. 극소의 도시 지역은 철도나 수로의 편익이 없다. 이러한 경우에도 도로 교통량은 그리 크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후에 있어서도 사용할 수 있는 서구 표준에 달하는 도로망의 발전과 유지는 현재 또는 장래에 예견되는 교통량에 비추어 그리 정당화되지 않는다. _ 조영준 외,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한 진단과 처방 : 네이산보고(1954)의 재발견> , p459


댓글(6) 먼댓글(1)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겨울호랑이님-미래에너지~를 읽고]이런 저런 생각들
    from 뒤죽박죽 뒹굴뒹굴 2022-08-23 06:32 
    원자력을 전공했다.90년에 안면도사태가 있었다. 90년 11월 부터 93년 3월까지 안면도 핵폐기물처분장 반대가 있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길을 막고 무언가 불태우는 화면도 뉴스에 나왔던 거 같다. 94년에는 굴업도에 처분장을 지으려다가 무산되었다. 지반이 위치가 좋지 않다고 주민이 아홉명이라고 처분장을 만든다니 말이 되냐는 반대여론에 선배 언니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좋은 입지는 아니지만, 기술로 보강할 수 있어. 돈이
 
 
거리의화가 2022-09-08 09: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2관왕 축하드려요^^
늘 현재 중요한 문제를 끌고 와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9-08 11:48   좋아요 2 | URL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항상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거듭 감사드립니다! ^^:)

mini74 2022-09-08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님 2관왕 !당선 축하드려요.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22-09-08 11:49   좋아요 1 | URL
미니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추석 연휴 보내세요! 작년 추석 즈음에 미니님 글을 읽고 이상 시 논문을 봤던 것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난 듯합니다. 시간이 참 빠르네요... ^^:)

서니데이 2022-09-08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9-08 22:5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거듭 감사드립니다. 하루 마무리 잘 지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