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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시대 - 기록, 살인, 그리고 포르투갈 제국
에드워드 윌슨-리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 2024년 7월
평점 :
유럽인들은 수 세기에 걸쳐 사제왕 요한을 발견하기를 꿈꾸었다. 사제왕 요한은 동방 너머 어디인가에서 엄청나게 부유하고 강력한 기독교 왕국을 통치한다고 전해지던 전설 속의 왕이다. 유럽인들은 사제왕 요한이 유럽과 힘을 합쳐 이슬람을 포위하여 보편적인 기독교 제국을 실현하리라고 믿었다. _ <물의 시대>, p.94
대서양의 작은 왕국 포르투갈은 왜 베르데 제도를 통과해 대서양의 무역풍을 따라 희망봉을 건너 모잠비크와 모가디슈를 거쳐 인도 코친에 가는 머나먼 길을 갔을까. 에드워드 윌슨-리의 <물의 시대>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다미앙 드 고이스와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서로 다른 두 삶을 통해 '대항해시대'가 단순한 발견의 역사가 아닌, 치열한 인식의 충돌임을 보여준다. 왕립 기록물 보관소장 다미앙 드 고이스와 모험가이자 문인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 이들의 삶과 여정은 여러 면에서 대비가 되며, 그들의 마지막은 대항해시대를 맞이한 당시 포르투갈의 사회, 문화, 종교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종교 개혁의 파고 속에서 타 문화를 인정하고 소통하려 했던 다미앙의 여정은 북해와 발트해 연안을 거쳐 모스크바, 크라쿠프 등 북유럽을 향하는 반면, 포르투갈 중심주의자 카몽이스는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의 코친에 이르는 인도 항해 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다미앙의 여정이 종교 개혁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카몽이스의 여정은 식민지를 개척하는 제국주의로의 이행이었다. 북쪽에서는 종교 개혁의 움직임이, 동쪽과 남쪽에서는 오스만 튀르크의 압박이 거세지던 시기에 레콩기스타를 통해 이베리아반도에 겨우 근거지를 마련한 포르투갈에게 대항해시대는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동맹의 발견과 경제적으로는 향신료 시장의 독점이라는 희망과 기회의 시대로 다가왔다.
기독교와 힌두교의 유사점에 방점을 찍었던 시각과는 달리, 다른 일각에서는 두 종교가 대조되는 부분을 보고 심각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유럽 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기독교의 계시를 유일무이하거나 특권적인 것으로 볼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유럽인이 비非기독교 세계에 있을 필요도 전혀 없는 셈이 되었다. 결국 많은 이들이 이 모든 것을 악마가 놓은 덫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_ <물의 시대>, p.114
유럽인에게는 이런 믿음이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이를 고려한다면, 이런 믿음이 유럽의 사상계에 얼마나 큰 위기를 안겼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신학체계만이 아니라, 그 체계로부터 나온 윤리적, 철학적 사상에도 큰 위협이 되었다... 모든 동물에 인간과 비슷한 영혼이 있다는 애니미즘 신념은 인간과 동물을 나누던 모든 경계를 허무는 위협으로 다가왔다. _ <물의 시대>, p.262
그렇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사제왕 요한의 왕국이 진정한 기독교 왕국이 아닌 이단의 왕국임을 알고 실망하게 된다. 그들의 실망감은 곧 진정한 믿음을 전파해야겠다는 신앙심으로 대체되었고, 새로 만난 세계는 동맹이 아닌 선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물의 시대> 안에서 다미앙과 카몽이스의 말년으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새로운 세계를 인정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다미앙은 종교재판을 거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반면, 포르투갈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카몽이스는 국민 시인으로 영광에 싸여 삶을 마감한다. 이후 카몽이스의 포르투갈은 화약, 대포, 범선을 앞세워 상대를 무력으로 협박하여 독점을 통해 막대한 부(富)를 쌓으면서 제국주의의 선두를 차지한다.
많은 이들이 대항해시대의 명(明)나라 쇄국정책을 비판한다. 정화 함대라는 유례없는 대함대를 수차례에 걸쳐 아프리카에까지 파견할 정도의 국력과 기술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함대를 해산시켰던 것이 이후 서양과의 격차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물의 시대>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서구 세계 역시 못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명나라의 쇄국이 물질적이었다면, 포르투갈의 쇄국은 타자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틀에 가두는 것이었다. 상대를 인정했기에 함대를 해산하고 교류를 끊는 쇄국과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쇄국.
포르투갈은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를 지나는 무역을 위축시킴으로써 이집트의 맘루크 왕국을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경제적 기반도 위태롭게 만들었다.... 첸투리오네는 포르투갈이 향신료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데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포르투갈이 전대미문의 부담스럽고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을 책정하고, 이런 가격에도 불구하고 형편없는 품질의 상품을 공급한다고 했다. 신선하던 향신료가 저장고의 오염과 선박의 불결한 위생 상태, 리스보아에서의 장기 저장으로 인해서 변질되어 원래의 풍미와 맛이 사라지고 품질이 떨어졌다는 주장이었다. _ <물의 시대>, p.156
이런 점에서 바라본다면, 결국 대항해시대의 모험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탐욕의 화려한 포장에 불과하지 않을까. <물의 시대>의 대비되는 두 인물은 다른 한 편으로 <남한산성>의 두 인물 김상헌과 최명길을 떠올리게 한다. 기존의 세계관을 사수하려 했던 자(카몽이스/김상헌)와, 무너지는 경계 위에서 새로운 질서를 꿈꿨던 자(다미앙/최명길). 명분과 실리의 두 갈래 속에서 당대의 선택과 역사의 평가는 어떻게 달랐는가. 다미앙과 카몽이스에 대한 평가도 이같지 않을까.
흔히들 대항해시대를 '발견의 시대'라 부르지만, 어쩌면 그것은 거대한 '상실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타자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두려움을 정복이라는 이름의 탐욕으로 바꾼 이들의 역사. 500년 전 다미앙 드 고이스가 마주했던 그 서늘한 종교재판의 칼날은, 오늘날 우리에게 다른 형태의 '정신적 쇄국'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시망은 다미앙과 한때 좋은 친구였지만, 그로서는 다미앙이 라틴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어쩌면 네덜란드어와 독일어까지 할 줄 알기 때문에 가톨릭 신앙에 커다른 위험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두렵다고 했다. 그리고 시망은 더 기억난 사실이 있다면서 이틀 뒤 다시 종교재판소를 찾았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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