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강제하는 나라는 없다‘라며 반발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 나라들의 기업은 애초부터 자사주를 경영권 보호에 활용하지 않는다. 문제가 없기에 규제도 없는 것이다. ‘자사주 소각의무화‘는, 자사주를 경영권 보호 수단으로사용해온 한국의 특수 상황에 대한 맞춤형 대응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다. - P20

중국의 급속한 산업 발전은 강력한 산업정책인 ‘중국제조 2025‘ 그리고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전략적 산업 부문에 적자를 감수한 천문학적 투자 덕분이라고 평가된다. 한국 기업들이 지금의 난국을 극복하려면 공격적 투자로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자칫 투자에 쓸 돈을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데 그칠 수 있다. - P22

그들의 진짜 주장은 ‘남녀 상호 유불리론‘
이다. "남녀 서로 유불리 영역이 따로 있다"라는 의견이 20대 남자에서 63%, 30대 남자에서 62%, 40세 이상 남자에서74%다.
우리는 이 결론, "남성 차별론에 공감하는 남자들 대부분은 ‘구조적 남성 차별론자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중요한 발견으로 제시한다.  - P26

온라인 ‘영포티‘ 담론에서 눈에 띄는건 20대 남자와 40대 남자의 충돌이다. 이들은 정치 성향(20대 남자 보수와 40대 남자 진보), 젠더 문제에 대한 태도(20대 남자들의 남성 차별론과 40대 남자들의 ‘친 20대 여성‘ 성향) 등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 관계로 종종 묘사된다.  - P30

그러나 20세기 한국 정치사를 민주주의 쟁취의 승리 서사로(만) 쓸 때, 왜 시민들이 그토록 자주 거리에 나가야 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면, 굳이 생업을 제쳐두고또다시 거리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군부독재를 종식시켰다고 환호한 뒤에 군부 출신이 다시 집권하지 않았나. 촛불시위가 정권을 바꾸었다고 환호한 뒤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세력이 다시 집권하지 않았나. 그뿐이랴. 심지어 계엄이 수십 년 만에 다시 시도되지 않았나.  - P45

그러나 마침내 승리를 선언했을 때, 마침내 상황이 정상화되었다고 믿을 때,
우리는 악을 발견하기를 멈춘다. 그렇게 발견하기를 멈춘 눈 아래서 악은 자신을 숨기기 시작하고, 그만큼 악은 잠재적인 것이 된다. 사람들이 승리를 만끽하는 동안, 승리에 도취하는 바로 그때, 악은 비가시적이 되고, 그 비가시성은 악을 더욱 악화시킨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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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시대 - 기록, 살인, 그리고 포르투갈 제국
에드워드 윌슨-리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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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인들은 수 세기에 걸쳐 사제왕 요한을 발견하기를 꿈꾸었다. 사제왕 요한은 동방 너머 어디인가에서 엄청나게 부유하고 강력한 기독교 왕국을 통치한다고 전해지던 전설 속의 왕이다. 유럽인들은 사제왕 요한이 유럽과 힘을 합쳐 이슬람을 포위하여 보편적인 기독교 제국을 실현하리라고 믿었다. _ <물의 시대>, p.94


 대서양의 작은 왕국 포르투갈은 왜 베르데 제도를 통과해 대서양의 무역풍을 따라 희망봉을 건너 모잠비크와 모가디슈를 거쳐 인도 코친에 가는 머나먼 길을 갔을까.  에드워드 윌슨-리의 <물의 시대>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다미앙 드 고이스와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서로 다른 두 삶을 통해 '대항해시대'가 단순한 발견의 역사가 아닌, 치열한 인식의 충돌임을 보여준다. 왕립 기록물 보관소장 다미앙 드 고이스와 모험가이자 문인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 이들의 삶과 여정은 여러 면에서 대비가 되며, 그들의 마지막은 대항해시대를 맞이한 당시 포르투갈의 사회, 문화, 종교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종교 개혁의 파고 속에서 타 문화를 인정하고 소통하려 했던 다미앙의 여정은 북해와 발트해 연안을 거쳐 모스크바, 크라쿠프 등 북유럽을 향하는 반면, 포르투갈 중심주의자 카몽이스는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의 코친에 이르는 인도 항해 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다미앙의 여정이 종교 개혁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카몽이스의 여정은 식민지를 개척하는 제국주의로의 이행이었다. 북쪽에서는 종교 개혁의 움직임이, 동쪽과 남쪽에서는 오스만 튀르크의 압박이 거세지던 시기에 레콩기스타를 통해 이베리아반도에 겨우 근거지를 마련한 포르투갈에게 대항해시대는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동맹의 발견과 경제적으로는 향신료 시장의 독점이라는 희망과 기회의 시대로 다가왔다.


 기독교와 힌두교의 유사점에 방점을 찍었던 시각과는 달리, 다른 일각에서는 두 종교가 대조되는 부분을 보고 심각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유럽 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기독교의 계시를 유일무이하거나 특권적인 것으로 볼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유럽인이 비非기독교 세계에 있을 필요도 전혀 없는 셈이 되었다. 결국 많은 이들이 이 모든 것을 악마가 놓은 덫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_ <물의 시대>, p.114


  유럽인에게는 이런 믿음이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이를 고려한다면, 이런 믿음이 유럽의 사상계에 얼마나 큰 위기를 안겼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신학체계만이 아니라, 그 체계로부터 나온 윤리적, 철학적 사상에도 큰 위협이 되었다... 모든 동물에 인간과 비슷한 영혼이 있다는 애니미즘 신념은 인간과 동물을 나누던 모든 경계를 허무는 위협으로 다가왔다. _ <물의 시대>, p.262


 그렇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사제왕 요한의 왕국이 진정한 기독교 왕국이 아닌 이단의 왕국임을 알고 실망하게 된다. 그들의 실망감은 곧 진정한 믿음을 전파해야겠다는 신앙심으로 대체되었고, 새로 만난 세계는 동맹이 아닌 선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물의 시대> 안에서 다미앙과 카몽이스의 말년으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새로운 세계를 인정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다미앙은 종교재판을 거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반면, 포르투갈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카몽이스는 국민 시인으로 영광에 싸여 삶을 마감한다. 이후 카몽이스의 포르투갈은 화약, 대포, 범선을 앞세워 상대를 무력으로 협박하여 독점을 통해 막대한 부(富)를 쌓으면서 제국주의의 선두를 차지한다.


 많은 이들이 대항해시대의 명(明)나라 쇄국정책을 비판한다. 정화 함대라는 유례없는 대함대를 수차례에 걸쳐 아프리카에까지 파견할 정도의 국력과 기술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함대를 해산시켰던 것이 이후 서양과의 격차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물의 시대>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서구 세계 역시 못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명나라의 쇄국이 물질적이었다면, 포르투갈의 쇄국은 타자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틀에 가두는 것이었다. 상대를 인정했기에 함대를 해산하고 교류를 끊는 쇄국과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쇄국. 


  포르투갈은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를 지나는 무역을 위축시킴으로써 이집트의 맘루크 왕국을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경제적 기반도 위태롭게 만들었다.... 첸투리오네는 포르투갈이 향신료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데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포르투갈이 전대미문의 부담스럽고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을 책정하고, 이런 가격에도 불구하고 형편없는 품질의 상품을 공급한다고 했다. 신선하던 향신료가 저장고의 오염과 선박의 불결한 위생 상태, 리스보아에서의 장기 저장으로 인해서 변질되어 원래의 풍미와 맛이 사라지고 품질이 떨어졌다는 주장이었다.  _ <물의 시대>, p.156


 이런 점에서 바라본다면, 결국 대항해시대의 모험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탐욕의 화려한 포장에 불과하지 않을까. <물의 시대>의 대비되는 두 인물은 다른 한 편으로 <남한산성>의 두 인물 김상헌과 최명길을 떠올리게 한다. 기존의 세계관을 사수하려 했던 자(카몽이스/김상헌)와, 무너지는 경계 위에서 새로운 질서를 꿈꿨던 자(다미앙/최명길). 명분과 실리의 두 갈래 속에서 당대의 선택과 역사의 평가는 어떻게 달랐는가. 다미앙과 카몽이스에 대한 평가도 이같지 않을까.


 흔히들 대항해시대를 '발견의 시대'라 부르지만, 어쩌면 그것은 거대한 '상실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타자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두려움을 정복이라는 이름의 탐욕으로 바꾼 이들의 역사. 500년 전 다미앙 드 고이스가 마주했던 그 서늘한 종교재판의 칼날은, 오늘날 우리에게 다른 형태의 '정신적 쇄국'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시망은 다미앙과 한때 좋은 친구였지만, 그로서는 다미앙이 라틴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어쩌면 네덜란드어와 독일어까지 할 줄 알기 때문에 가톨릭 신앙에 커다른 위험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두렵다고 했다. 그리고 시망은 더 기억난 사실이 있다면서 이틀 뒤 다시 종교재판소를 찾았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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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소통은 국정의 힘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포퓰리즘으로 흐르거나,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양산된다는 우려 또한 꾸준히 제기된다. 대통령이 엄중 조치를 지시한 산업재해 문제나 차별 및 혐오 표현 같은 경우, 단박에 해결하기 어려운 고질적 사회문제다. - P10

 "다시는 쿠데타를 꿈조차 꿀 수 없는 나라, 누구도국민주권의 빛을 위협할 수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정의로운 통합은 필수입니다. 민주주의의 등불을 밝혀주신우리 위대한 대한국민과 함께 ‘빛의 혁명‘을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의 바람과 포부는 이뤄질까? 2025년이 2026년에게 숙제를 남겼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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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소년과 함께 자란 나무 이야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우정을 나누던 소년과 나무.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소년이 청년이 되고, 중년과 장년 그리고 노년을 보내며 그들의 관계는 바뀌게 된다. 


 함께 추억을 나누던 둘 사이를 가른 것은 시간이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소년은 시간이 흘러 점차 늙어갔으니. 이에 반해 나무의 시간은 아주 더디게 흘러가며 생긴 차이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공간 때문이었을까. 소년은 자유롭게 걸어 다니며 세상을 만났지만, 나무는 한 자리에서 소년만을 기다려야 했으니. 나무 곁을 떠나 세상을 만난 소년의 마음에서 나무의 자리는 점차 작아졌지만, 나무에게 소년은 한결같은 크기였을 것이다. 


 나무가 소년에게 자신을 내어 줄 때마다 반복되는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이 문장은 마지막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준 뒤 다음 문장으로 바뀐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으나 ...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낌없이 내어 주는 나무에 반해, 소년의 모습은 매정하게 보여진다. 서로에 대한 우정과 사랑의 크기는 분명 달랐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준 나무에 비해 소년의 우정의 크기는 작지만, 소년은 나무에게 진실했다. 다만, 우정의 크기가 달랐을 뿐. 오랜 옛 친구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진정성이 있지 않을까? 다만, 이 지점에서 마지막에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행복하지 못한 나무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고 제비와 함께 불에 타며 최후를 맞이한 왕자의 마음과 친구에게 자신을 내주고 불행한 나무. 헌신적인 사랑의 다른 두 결말을 비교하면서, 어쩌면 행복한 왕자에게는 '제비'라는 또 다른 동료가 있었던 반면, 나무는 혼자였기에 사랑이 주는 울림이 달랐던 것은 아니었는지를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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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12-27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유년기에 행복한 왕자를 싫어했어요. 어린 나이에 그 고독이 넘 싫었던듯요. 그런 류의 이야기를 다 싫어했었나봐요. 성냥팔이 소녀도 제가 싫어했던 이야기예요^^

겨울호랑이 2025-12-27 23:39   좋아요 1 | URL
저는 <행복한 왕자>를 참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아마도 결말이 슬프게 끝나서 더 그랬던 거 같아요. 슬프면서도남을 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런 어른이 되지 못해서 이야기 뿐 아니라, 제 삶도 슬프게 진행되는 것 같네요... ㅜㅜ
 
니체의 『도덕의 계보』 입문
다니엘 콘웨이 지음, 임건태 옮김 / 서광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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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의 계보> 첫 번째 에세이는 니체의 유명한 구분, 즉 '좋음과 나쁨'의 차이에 기반한 귀족 도덕과 '선과 악'의 대립을 이용하는 노예 도덕 사이의 구분을 도입한다.(p30)... 이 야심적인 에세이에서 니체는 책임 개념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 대안적 설명을 제시한다. 죄와 부채를 뜻하는 독일어 간의 유사성에 주목함으로써 니체는 현재의 도덕적 책임개념의 기원을 원시적이고, 전(前) 도덕적인 부채 개념으로 추적해 들어간다.(p33)... 마지막 에세이에서 니체는 금욕적 이상이 서구 문명의 발전에 그토록 강력한 영향을 미쳐왔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한다... 도덕적 시기의 인간 발전 내내 금욕적 이상의 우세는 고통을 겪는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데서 누렸던 독점 탓이었다.  _ <니체의 <도덕의 계보> 입문>, p38


 <니체의 <도덕의 계보> 입문>은 제목 그대로 입문서다. <도덕의 계보>를 가까이에서 또는 멀리에서 볼 수 있는 틀과 핵심 사항을 잘 정리해 독자들이 어려움을 덜고 독서여정을 더 쉽게 나갈 수 있도록 한다. 


 모두 세 개의 에세이로 구성된 니체의 <도덕의 계보>. 니체는 첫 번째 에세이를 통해 '선과 악', '좋음과 나쁨' 사이에 자리한 체계들 간의 오랜 지속적인 투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두 번째 에세이에서는 '죄', '양심의 가책'와 관련한 '책임' 문제가 주제다. 채권-채무 관계에서 발생한 신체적 형벌과 잔혹한 각인의 기억은 국가와 종교를 거치며 내면화되어 '양심의 가책'이라는 심리적 '죄'의 문제로 변형된다. 마지막 세 번째 에세이의 주제는 '금욕적 이상'이다. 금욕적 사제들에 의한 자기파괴적 처방이 가져온 폐해를 격정적으로 토로하면서 니체의 그리스도교 도덕에 대한 비판은 금욕적 이상이 보호한 '무에의 의지'를 폭로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절정에 달한다. 


 첫 번째 에세이의 결말은 '로마'와 '유대' 사이에 오랫동안 계속된 투쟁에 관한 '새로운 진리'를 전해준다. 이 부분은 니체와 독자들이 '로마'에 대한 그들의 충성을 역동적이고, 도덕과 무관한 역사 발전 모델에 대한 지지와 화해시켜야 한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p33)... 두 번째 에세이 결말은 양심의 가책의 미래에 관한 '새로운 진리'를 전해준다. 양심의 가책이 지닌 힘을 자신에게 돌리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반(反)정서적 사육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는 일이 가능해도, 우리는 이런 임무의 책임을 떠맡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p37)... 세 번째 에세이에서 니체는 목표 청중들에게 '새로운 진리'를 전해준다. 금욕적 이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은 채, 이 '인식하는 자들'은 남아있는 금욕적 이상의 최후 지지자들에 속해 있다. 니체는 그들이 그리스도교 도덕의 자기 파괴에서 최후의 장면을 주도하는 데 그와 함께 하도록 유도한다. _ <니체의 <도덕의 계보> 입문>, p41


 체계들 간의 오랜 투쟁의 역사와 금욕적 사제들에 의해 뒤틀려진 책임-죄의 문제에 대한 칼끝은 최종적으로 그리스도교의 도덕을 겨눈다. 일찍이 <도덕의 계보> 이전 <비극의 탄생>에서 '아폴론'의 '디오니소스'에 대한 승리를 비판했던 니체는, 첫 번째 에세이를 통해 그리스 문명의 계승자 '로마'와 '유대' 사이의 투쟁이라는, 확장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투쟁을 거쳐, 헤브라이즘의 계승자인 그리스도교 비판으로 마지막 세 번째 에세이를 마무리한다. 결국, 니체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는 유럽 문명의 양대 축 모두에 대해 비판을 전후기 사상을 통해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의 끝이 '신은 죽었다'는 선언을 통과해, 외부의 도덕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가치 입법자'로서의 인간으로 향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론이 아닐까. 이 정도로 <도덕의 계보> 독서의 큰 틀을 잡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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