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든 철학자든 자기본연의 연구에 충실하면서도 얼마든지 자연과학에 대해서 말할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똑똑히 알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p226)... 이렇게 합리적인 방법론적 상대주의가 흐리멍덩한 사유와 언어로 인해 때로는 과격한 인식론적 상대주의로 비약한다. _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적 사기》, p227

《지적 사기》에는 경험주의 자연과학의 방법론과 틀을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합리주의 사회과학자들에 대한 비판이 열거된다. 연역적인 구조를 갖는 합리주의 철학에서 수학적 추상성은 일상의 구체성으로 비약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논리적 허점은 언어의 모호성으로 은폐된다. 그 과정에서 사회과학 연구자의 주관적 관점은 과학적 합리성을 갖춘 객관적 진리로 변화되며, 만일 그 연구자가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인물일 경우 대중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유사과학을 도그마로 한 또다른 종교를 보게될 수 있음을 가볍게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본문에 언급된 자크 라캉, 줄리아 크리스테바, 뤼스 이리가레이, 장 보드리야르,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등 인물들이 무게감이 결코 낮지 않기에 흥미있게 생각할 거리를 독자에게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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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구들의 방법론적 결함을 밝히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으며, T와 공격성이 (매우 높거나 매우 낮은 수준을 제외하고) 거의 관계가 없다는 새로운 연구가 이제 막 대중에게 알려지고 있다. T는 남성의 번식이라는 성 호르몬의 한 가지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T는 배아, 근육, 여성 및 남성의 뇌, 적혈구 발달에도 필수적이다. 여러 생물학적, 환경적, 사회적 요인에 따라 T는 다양한 생물학적 과정에 관여한다. - P14

"시간이 모든 상처를 치료한다"라는 말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염증이 심한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한다. 치료를 위해서는 의사를 만나 전문적인 처치를 받아야 한다. 지속성 애도를 경험하는 유족들은 자신의 상황을 극도로 무감각하고 압도적이며 쇠약해진 상태라고 묘사할 때가 많다.  - P22

케이팝에는 전통이 없다. 케이팝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적BES응한 결과물이다. 안 그래도 좁은 한국 음악 시장에서 인터넷의 확산으로 불법 복제가 횡행하자 기획사들은 해외에서 판로를 열어야했고, 그 결과 지금의 아이돌과 케이팝의 원형이 생겨났다. 그건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에 전통이 아니라 전 세계 음악에서 차용할수 있는 것을 차용하고 조합한 결과였다. 그렇기에 케이팝은 지독히 한국스럽지만 어디도 한국적이지 않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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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스파이 기구를 둘러싼 에피소드의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긴장감, 중국과 러시아의 긴밀한 관계,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필요한 건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를 통해 공포를 촉발시킬 단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몬태나주 상공에서 기구가 발견되고 격추되기까지 며칠간 이를추적하면서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  - P178

 돌연변이는 생물 다양성의 원천이다. 우연히유전체 어딘가에 일어난 작은 돌연변이의 누적이 식물마다 독특한물질 합성을 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돌연변이가 효소의 기능에 아 ㅅ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거나 아예 어떠한 기능도 하지 못하도록만들 가능성도 있다. - P205

우리는 아직 ‘금지된 세계‘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 기초는 다졌다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힘은 아주 우려할 만하다. 양자컴퓨터의 등장으로 인공지능은 이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지만, 그 존재는 여전히 오류를 쉽게 범하는 인간에게 빚을 질 것이다. 인공지능은 자신의 형상을 본 따 피조물을 만들겠다는 창조주의 오만함에 시달릴 것이다. - P230

영화에서 묘사된 좀비들은 감정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총알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하다. 하지만 진정한 공포는꼭두각시처럼 자유의지가 사라진 좀비의 모습이다. 자신을 살해한남성의 즐거움을 위해 눈도 깜박하지 않는 좀비 신부가 마치 로봇처럼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소름을 돋게 한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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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떤 것은 살아남고 어떤 것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 인간은 그 기나긴 진화의 ‘결과‘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우리 스스로 진화의 ‘원인‘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이제 다윈이 했던 당연한 말의 의미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남는 자가 살아남는다.  - P120

여기에 더해 《이기적 유전자>가 가정하는 자연선택과 유전자의 완결성에 반하는 증거들이 1970년부터 충분히 축적되었다. 인간 게놈프로젝트 덕분에 인간 염기 서열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했음에도 특정한 기능을 한다고 밝혀진 유전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더불어 유전자 발현이 환경과 발달에 큰 영향을 받는 사실 역시 드러났다. - P126

우주발사체는 중력을 이겨내고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 보통여러 개의 단으로 구성되는데, 최상단이 목표 지점에 도달하고 나서는 원하는 만큼 속도를 감속하고 위성을 임무 궤도에 살짝 올려둘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발사체의 최상단은 액체 발사체가 되어야만 한다. 마지막 순간에는 위성체의 궤도 투입 속도를 위해서 미세 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액체 발사체는 중간에점화, 재점화가 가능하고, 점화 후 추력 조절이 가능하다. 누리호는액체 연료 발사체이다. 이렇게 고체 발사체와 액체 발사체는 장단점이 분명하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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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하늘·땅·자연·몸에 관한 2천 년의 합리적 지혜
신동원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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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학문명이 실제로 세계에 기여한 현상은 의학 분야에서만 보이는데,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인삼 재배 기술입니다. 인삼은 중국 기록에서 기원 전후 시기부터 약호가 알려진 이래 20세기 이전까지 최고의 건강 상품으로 인정된 약재입니다. 역사시대 이래 인삼은 중국 황제에게 바치던 한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었습니다. _ 신동원,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p493/514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과학사를 알기 쉽게 정리한 교양 과학사다. 수천 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한국 과학사를 살펴보면서 저자는 한국 과학사가 외부 특히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반면, 여기에 대응할 정도의 영향을 주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우리의 옛 과학기술 대부분은 다른 나라로부터 받아서 이룩했고, 다른 나라에게 준 건 거의 없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서 인기를 끈 <동의보감> 정도가 예외가 될까요? 최근 반도체를 비롯한 정보통신 기술의 성취는 세계 문명 발전에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죠. 만약 정말로 우리의 옛 과학 기술이 서양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면, 그것도 지적 혁명을 일으킨 금속활자 인쇄술이었다면 더욱 값진 기여라 할 수 있습니다. _ 신동원,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p390/514


 그렇지만, 저자가 한국과학사를 일방적인 의존관계로 파악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과학 문명의 영향을 받았지만, 무조건적인 수용 대신 우리의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왔다는 점에서 한국과학문명은 독자적인 문명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중국과 다르다는 인식 속에서 만들어진 한글에서 드러나듯, 한국 과학은 비록 원리를 탐구하고 만들어내는 부문에서는 중국과 서양에 의존했지만, 경험적 사실로부터 개선점을 찾아내어 반영하는 기술 부문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기도 한 역사를 발견한다.


 고대국가의 등장 이후 한국의 과학문명은 문자 전통이 이미 확립된 중국의 문자와 그 문자로 기록된 제반 지식을 습득하여 자신의 문화를 표현해내고, 더 나아가 학술, 문학, 예술, 과학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기존 한국문명의 틀을 넘어 중국을 위주로 한 동아시아문명의 일원으로 자리하면서 비약하게 됩니다. _ 신동원,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p13/514


 혼천의는 우리 민족이 천 년 이상 만들어 써온 과학기술입니다. 혼천의가 중국에서 유래한 건 맞지만 우리 선조들이 거기에 혼신의 공을 들여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누가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그것으로 달성한 과학 수준이 중요합니다. 동서양 과학을 접목한 혼천시계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_ 신동원,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p97/514


 그런 점에서 한국과학문명은 분명 독자적이었고, 경험적인 요소가 강한 문명이었다. 또한,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관점 은 현대과학문명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전통과학문명은 오늘날에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실제적이면서도 경험적인 요소가 강한 과학문명이 유교적 세계관에 종속되었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정치권력에 의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회 전반에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고, 정권의 성격에 따라 성쇠가 좌우된 반면, 서양에서는 종교 대신 새로운 계몽 시대의 사상으로 과학이 자리매김했기에 이후 과학혁명, 정치혁명, 산업혁명 등으로 이어져 근대화 시기 이후 동서양의 격차가 크게 확대된 역사는 이러한 아쉬움을 뒷받침한다.


 우주, 자연과 인간세상의 조화라는 생각은 한국 과학문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입니다. 한국 문명에는 천문학 외에도 천명사상에 입각해 과학기술이 정치와 깊이 관계 맺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파악해 인간세계 질서의 기준으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현대 과학문명과 크게 다른 점이지요. _ 신동원,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p88/514


 이처럼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는 한국과학사 전반을 살펴보고 과학문명사의 의의를 알기쉽게 정리하는 좋은 교양과학서적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토대 위에 이후 <한국의 과학과 문명> 시리즈를 통해 우리의 과학사를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자...


 한국과학문명의 가치는 세계에 끼친 영향보다는 세계 문명의 수용과 활용, 변형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빛을 발합니다. 중국은 오늘날의 서양문명이 그러하듯 엄청나게 커다란 문명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문명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선진 문명에 주눅 들지 않고 한국문명이라는 몸체로 그 문명에 맞서 수천 년 역사를 엮어왔습니다. 천문학, 수학, 의학, 농학, 지리학, 군사기술, 그리고 인쇄술이나 도자기 제작 기술과 같은 수공업 기술, 의식주 관련 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높은 성취를 보였는데, 선진 과학기술의 변용와 독창적 발휘가 특징입니다. 중국과학문명을 모방하면서도 독자적으로 건설하고 유지해온 문명이므로 동아시아과학문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과학문명은 더 나아가 세계과학문명의 일원이 되었지요. _ 신동원,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p494/514



세종은 중국 달력을 사용하면서도 조선의 하늘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어 같이 사용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사실 중국에 대한 정신적인 독립 선언이었습니다(p80)... 조선은 외교용으로는 중국 명나라에서 받아 온 대통력을 계속 썼지만, 실제 예측에는 이렇게 칠정산을 썼습니다. 이 책에는 날짜와 숫자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공식과 풀이가 기록되어 있지 않고, 결과만 밝혀져 있습니다. 서양 수학과는 다른 방법으로 푼 것이 분명한데 계산한 값은 일치합니다 - P82

서양에서는 개념과 원리를 중시하는 기하학을 중심으로 수학이 발달한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문제 풀이식 대수학이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수학이 매우 뛰어난 부분이 많으면서도 서양 수학과 같은 정밀한 체계는 갖추지 못한 겁니다. - P105

물론 한의학이 중국에서 유래하고 크게 발전한 건 인정해야겠죠. 하지만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은 모두 의학이 발전했고, 저마다 자국의 특성에 맞는 의학의 형태로 진화시켰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의학은 동아시아 의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국이 나름대로 발전시킨 점에 주목한다면 중국 전통 의학, 한국 전통 의학, 일본 전통 의학, 베트남 전통 의학이라 할 수 있겠죠. 그 가운데 한국 전통 의학을 한의학 韓醫學이라 하는 겁니다. - P286

비숍은 결론적으로 한국인의 잠재성을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많은 작업과 함께 자극적이고 혐오스럽던 서울의 향기는 사라졌다. 위생에 관한 법령이 시행되었고, 집 앞에 쌓인 눈을 모든 식구들이 치우는 것이 의무적일 정도로 한국의 문화 수준은 매우 높아졌다. 그 변화들은 너무 커서, 나는 1894년이었다면 서울의 한 예로서 이 장을 위해 사진을 찍었을지도 모를, 그 특징적인 빈민촌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한국인은 어떤 행정적인 계기만 주어지면 무서운 자발성을 발휘하는 국민이다. 서울은 한국적인 외양으로 제건되고 있지 절대로 유럽적으로 재건되고 있지는 않다. - P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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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9-09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3-09-09 10:2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가을 날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