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연구들의 방법론적 결함을 밝히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으며, T와 공격성이 (매우 높거나 매우 낮은 수준을 제외하고) 거의 관계가 없다는 새로운 연구가 이제 막 대중에게 알려지고 있다. T는 남성의 번식이라는 성 호르몬의 한 가지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T는 배아, 근육, 여성 및 남성의 뇌, 적혈구 발달에도 필수적이다. 여러 생물학적, 환경적, 사회적 요인에 따라 T는 다양한 생물학적 과정에 관여한다. - P14

"시간이 모든 상처를 치료한다"라는 말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염증이 심한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한다. 치료를 위해서는 의사를 만나 전문적인 처치를 받아야 한다. 지속성 애도를 경험하는 유족들은 자신의 상황을 극도로 무감각하고 압도적이며 쇠약해진 상태라고 묘사할 때가 많다.  - P22

케이팝에는 전통이 없다. 케이팝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적BES응한 결과물이다. 안 그래도 좁은 한국 음악 시장에서 인터넷의 확산으로 불법 복제가 횡행하자 기획사들은 해외에서 판로를 열어야했고, 그 결과 지금의 아이돌과 케이팝의 원형이 생겨났다. 그건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에 전통이 아니라 전 세계 음악에서 차용할수 있는 것을 차용하고 조합한 결과였다. 그렇기에 케이팝은 지독히 한국스럽지만 어디도 한국적이지 않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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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스파이 기구를 둘러싼 에피소드의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긴장감, 중국과 러시아의 긴밀한 관계,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필요한 건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를 통해 공포를 촉발시킬 단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몬태나주 상공에서 기구가 발견되고 격추되기까지 며칠간 이를추적하면서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  - P178

 돌연변이는 생물 다양성의 원천이다. 우연히유전체 어딘가에 일어난 작은 돌연변이의 누적이 식물마다 독특한물질 합성을 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돌연변이가 효소의 기능에 아 ㅅ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거나 아예 어떠한 기능도 하지 못하도록만들 가능성도 있다. - P205

우리는 아직 ‘금지된 세계‘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 기초는 다졌다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힘은 아주 우려할 만하다. 양자컴퓨터의 등장으로 인공지능은 이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지만, 그 존재는 여전히 오류를 쉽게 범하는 인간에게 빚을 질 것이다. 인공지능은 자신의 형상을 본 따 피조물을 만들겠다는 창조주의 오만함에 시달릴 것이다. - P230

영화에서 묘사된 좀비들은 감정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총알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하다. 하지만 진정한 공포는꼭두각시처럼 자유의지가 사라진 좀비의 모습이다. 자신을 살해한남성의 즐거움을 위해 눈도 깜박하지 않는 좀비 신부가 마치 로봇처럼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소름을 돋게 한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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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떤 것은 살아남고 어떤 것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 인간은 그 기나긴 진화의 ‘결과‘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우리 스스로 진화의 ‘원인‘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이제 다윈이 했던 당연한 말의 의미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남는 자가 살아남는다.  - P120

여기에 더해 《이기적 유전자>가 가정하는 자연선택과 유전자의 완결성에 반하는 증거들이 1970년부터 충분히 축적되었다. 인간 게놈프로젝트 덕분에 인간 염기 서열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했음에도 특정한 기능을 한다고 밝혀진 유전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더불어 유전자 발현이 환경과 발달에 큰 영향을 받는 사실 역시 드러났다. - P126

우주발사체는 중력을 이겨내고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 보통여러 개의 단으로 구성되는데, 최상단이 목표 지점에 도달하고 나서는 원하는 만큼 속도를 감속하고 위성을 임무 궤도에 살짝 올려둘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발사체의 최상단은 액체 발사체가 되어야만 한다. 마지막 순간에는 위성체의 궤도 투입 속도를 위해서 미세 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액체 발사체는 중간에점화, 재점화가 가능하고, 점화 후 추력 조절이 가능하다. 누리호는액체 연료 발사체이다. 이렇게 고체 발사체와 액체 발사체는 장단점이 분명하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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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하늘·땅·자연·몸에 관한 2천 년의 합리적 지혜
신동원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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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학문명이 실제로 세계에 기여한 현상은 의학 분야에서만 보이는데,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인삼 재배 기술입니다. 인삼은 중국 기록에서 기원 전후 시기부터 약호가 알려진 이래 20세기 이전까지 최고의 건강 상품으로 인정된 약재입니다. 역사시대 이래 인삼은 중국 황제에게 바치던 한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었습니다. _ 신동원,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p493/514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과학사를 알기 쉽게 정리한 교양 과학사다. 수천 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한국 과학사를 살펴보면서 저자는 한국 과학사가 외부 특히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반면, 여기에 대응할 정도의 영향을 주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우리의 옛 과학기술 대부분은 다른 나라로부터 받아서 이룩했고, 다른 나라에게 준 건 거의 없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서 인기를 끈 <동의보감> 정도가 예외가 될까요? 최근 반도체를 비롯한 정보통신 기술의 성취는 세계 문명 발전에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죠. 만약 정말로 우리의 옛 과학 기술이 서양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면, 그것도 지적 혁명을 일으킨 금속활자 인쇄술이었다면 더욱 값진 기여라 할 수 있습니다. _ 신동원,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p390/514


 그렇지만, 저자가 한국과학사를 일방적인 의존관계로 파악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과학 문명의 영향을 받았지만, 무조건적인 수용 대신 우리의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왔다는 점에서 한국과학문명은 독자적인 문명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중국과 다르다는 인식 속에서 만들어진 한글에서 드러나듯, 한국 과학은 비록 원리를 탐구하고 만들어내는 부문에서는 중국과 서양에 의존했지만, 경험적 사실로부터 개선점을 찾아내어 반영하는 기술 부문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기도 한 역사를 발견한다.


 고대국가의 등장 이후 한국의 과학문명은 문자 전통이 이미 확립된 중국의 문자와 그 문자로 기록된 제반 지식을 습득하여 자신의 문화를 표현해내고, 더 나아가 학술, 문학, 예술, 과학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기존 한국문명의 틀을 넘어 중국을 위주로 한 동아시아문명의 일원으로 자리하면서 비약하게 됩니다. _ 신동원,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p13/514


 혼천의는 우리 민족이 천 년 이상 만들어 써온 과학기술입니다. 혼천의가 중국에서 유래한 건 맞지만 우리 선조들이 거기에 혼신의 공을 들여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누가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그것으로 달성한 과학 수준이 중요합니다. 동서양 과학을 접목한 혼천시계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_ 신동원,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p97/514


 그런 점에서 한국과학문명은 분명 독자적이었고, 경험적인 요소가 강한 문명이었다. 또한,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관점 은 현대과학문명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전통과학문명은 오늘날에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실제적이면서도 경험적인 요소가 강한 과학문명이 유교적 세계관에 종속되었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정치권력에 의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회 전반에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고, 정권의 성격에 따라 성쇠가 좌우된 반면, 서양에서는 종교 대신 새로운 계몽 시대의 사상으로 과학이 자리매김했기에 이후 과학혁명, 정치혁명, 산업혁명 등으로 이어져 근대화 시기 이후 동서양의 격차가 크게 확대된 역사는 이러한 아쉬움을 뒷받침한다.


 우주, 자연과 인간세상의 조화라는 생각은 한국 과학문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입니다. 한국 문명에는 천문학 외에도 천명사상에 입각해 과학기술이 정치와 깊이 관계 맺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파악해 인간세계 질서의 기준으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현대 과학문명과 크게 다른 점이지요. _ 신동원,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p88/514


 이처럼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는 한국과학사 전반을 살펴보고 과학문명사의 의의를 알기쉽게 정리하는 좋은 교양과학서적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토대 위에 이후 <한국의 과학과 문명> 시리즈를 통해 우리의 과학사를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자...


 한국과학문명의 가치는 세계에 끼친 영향보다는 세계 문명의 수용과 활용, 변형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빛을 발합니다. 중국은 오늘날의 서양문명이 그러하듯 엄청나게 커다란 문명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문명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선진 문명에 주눅 들지 않고 한국문명이라는 몸체로 그 문명에 맞서 수천 년 역사를 엮어왔습니다. 천문학, 수학, 의학, 농학, 지리학, 군사기술, 그리고 인쇄술이나 도자기 제작 기술과 같은 수공업 기술, 의식주 관련 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높은 성취를 보였는데, 선진 과학기술의 변용와 독창적 발휘가 특징입니다. 중국과학문명을 모방하면서도 독자적으로 건설하고 유지해온 문명이므로 동아시아과학문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과학문명은 더 나아가 세계과학문명의 일원이 되었지요. _ 신동원,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p494/514



세종은 중국 달력을 사용하면서도 조선의 하늘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어 같이 사용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사실 중국에 대한 정신적인 독립 선언이었습니다(p80)... 조선은 외교용으로는 중국 명나라에서 받아 온 대통력을 계속 썼지만, 실제 예측에는 이렇게 칠정산을 썼습니다. 이 책에는 날짜와 숫자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공식과 풀이가 기록되어 있지 않고, 결과만 밝혀져 있습니다. 서양 수학과는 다른 방법으로 푼 것이 분명한데 계산한 값은 일치합니다 - P82

서양에서는 개념과 원리를 중시하는 기하학을 중심으로 수학이 발달한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문제 풀이식 대수학이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수학이 매우 뛰어난 부분이 많으면서도 서양 수학과 같은 정밀한 체계는 갖추지 못한 겁니다. - P105

물론 한의학이 중국에서 유래하고 크게 발전한 건 인정해야겠죠. 하지만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은 모두 의학이 발전했고, 저마다 자국의 특성에 맞는 의학의 형태로 진화시켰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의학은 동아시아 의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국이 나름대로 발전시킨 점에 주목한다면 중국 전통 의학, 한국 전통 의학, 일본 전통 의학, 베트남 전통 의학이라 할 수 있겠죠. 그 가운데 한국 전통 의학을 한의학 韓醫學이라 하는 겁니다. - P286

비숍은 결론적으로 한국인의 잠재성을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많은 작업과 함께 자극적이고 혐오스럽던 서울의 향기는 사라졌다. 위생에 관한 법령이 시행되었고, 집 앞에 쌓인 눈을 모든 식구들이 치우는 것이 의무적일 정도로 한국의 문화 수준은 매우 높아졌다. 그 변화들은 너무 커서, 나는 1894년이었다면 서울의 한 예로서 이 장을 위해 사진을 찍었을지도 모를, 그 특징적인 빈민촌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한국인은 어떤 행정적인 계기만 주어지면 무서운 자발성을 발휘하는 국민이다. 서울은 한국적인 외양으로 제건되고 있지 절대로 유럽적으로 재건되고 있지는 않다. - P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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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9-09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3-09-09 10:2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가을 날 보내세요~ ^^:)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한국의 과학과 문명 19
김영식 지음 / 들녘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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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서양 과학기술을 받아들인 것이 서양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가 아니라 처음에는 중국 그리고 나중에는 일본을 매개로 하는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서였다는 사실이 중요했는데, 이 같은 간접성은 일본의 식민통치 기간(1910~1945) 동안, 그리고 그 이후로도 정도는 약했지만 얼마동안 계속되었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이 서양 과학기술을 동화하는 정도와 수준을 크게 제약했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250


 김영식은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은 서구 과학 문명의 수용 과정에서 드러나는 조선 후기 간접성과 주변성 등을 지적한다. 중국 중심의 중화(中華)주의와 유교적 신분 질서가 조선 시대 전반을 지배했기에 기준은 언제나 명(明)과 청(淸)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에서는 조선 전기 세종 대에 이루어진 세계적 수준의 과학적 성과도 중국의 시스템 내에서의 응용에 불과하고, 조선 후기 서양 과학 문명의 수용도 중국의 뒤를 이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동아시아 과학의 역사에서 중국의 지위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나카야마가 지적했듯이, 중국은 중요한 발전들이 거의 언제나 먼저 일어나고 이후 '주변'으로 그 발전이 확산되는 '중심'이었다. '중국=중심'의 지위는 과학 분야에서 특히 철저했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183


 세종 대의 역법 관련 작업에 관해 살펴보면서 이 작업을 한양을 기준으로 조선의 독자적 역법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자주적' 노력으로 보아온 그간의 견해와 달리, 이를 중국 수준의 역산 능력을 갖추겠다는 노력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았다. 그런 면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정조(正祖) 시기인데 중국 역법의 틀 안에서 진행된 이 시기의 조선 역 확립과 역서 출판 과정은 조선의 과학이 지니는 독자성, 자주성의 성격과 한계를 보여준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190


 저자는 본문에서 조선시대 과학 전통의 한계와 오늘날 한국 과학계의 문제점을 연결짓는다. 실용에 치중하는 과학계 풍토, 근대 과학 도입 시기 일본에 대한 과다한 의존, 사안에 대해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는 과학자들의 자세 등 여러 문제점을 언급한다. 저자가 본문을 통해서 주장하는 내용은 이미 앞에서 여러 사례를 통해 뒷받침되기에 한편으로 수긍하면서 받아들이게 되면서도 다른 면에서는 의문을 품게 된다. 저자가 지적하는 부분이 과연 문제점만 있는 것인가? 또는 지적한 문제가 한국 과학계만의 문제인가? 하는 물음.


 한국 근현대과학기술의 초기 단계에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과학기술이 순전히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특히 경제적인 효용과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추구되는 것이라는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공리주의(功利主義)적인 과학 기술관이었다. 이 같은 과학기술관의 밑바탕에는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 '도(道)'와 '기(器)'의 이분법이 깔려있다(p251)... 이 같은 생각에 따라 과학기술은 '도'가 아니라 '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과학과 기술은 한국 문화와 학문의 다른 영역들로부터 대체로 유리된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251


 저자는 한국 과학사에서 공리주의적인 성격이 강했음을 비판한다. '과학+기술'에서 '기술'이 강조되고 '과학'이 경시되어 보다 깊은 탐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동서양의 사상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신-인간-자연'을 각각 다른 존재로 보고 각각의 법칙을 규명하려 한 서양 문명과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동양 문명의 차이. 이러한 차이가 이른바 기초과학에서 취약성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있는 그대로 '기술 중심의 한국 과학기술문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닐런지. 첨단 과학기술이라는 반도체에서도 '설계-소재-조립'등 분야가 세계적으로 분업화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면 우리가 잘 하는 분야인 기술에 더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다른 한 편으로, 과학자들이 정치적 사안에 무관심한 채 과학이라는 새로운 종교에서 사제집단으로 자리한 것을 우리나라만의 문제라 할 수 있을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인계층 문제를 지적한 것은 다소 과도하게 다가온다.


 중인 계층 사람들이 나중에 한국이 서양 과학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을 때 자연스럽게 주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것이 중요한 결과를 빚어냈다. '중인의식(中人意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계층 사람들 특유의 태도인, 자신들은 단지 그 주변인에 불과한 전체 사회와 국가에 대한 관심은 결여한 채 자신들의 개인적, 집단적 이해관계에 치중하는 태도가 사라지지지 않고 현대 한국 과학기술계에서도 두드러진 특성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255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기계의 신화>를 통해 근대 서구 사회에서 기술과 과학의 결합이 가져온 인간 소외의 비극과 함께 과학이라는 새로운 종교와 과학자라는 새로운 사제 계급의 문제를 지적한다. 멈포드가 지적한 이런 문제점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우리는 주변적이고 간접적인 한국 전통에서 인간소외와 환경 파괴를 비롯한 현대 과학 문명의 폐해를 극복할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에는 언급되지 않은 이러한 대안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인 듯하다...

무형의 것을 유형의 것보다 더 높고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생각은 유가 사상의 중요한 한 흐름으로 지속되었다... 유가 사상의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자연현상은 대부분 지각(知覺) 가능한 규체적 성질들과 물리적 효과를 수반하며 따라서 ‘형이하(形而下)‘에 속하기 때문에 유학자들에 의해 빤한 것으로 간주되고 그것들이 지각되는 형태대로 받아들여졌다. 겉으로 드러난 경험적인 데이터를 넘어서는 더 깊은 탐구는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 P28

유학자들은 격물을 표방하며 과학기술의 주제들을 공부하고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 사물들의 개별적 ‘리‘들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이 결코 격물 작업의 진짜 목적은 아니었다. 격물의 궁극적 목적은 여러 개별 ‘리‘들을 통해 하나의 ‘리‘, 즉 ‘천리(天理)‘에 도달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 P78

전문직 중인들은 품계와 승진 등에서의 명시적인 차별에 더해서 지배 계층인 양반들로부터 멸시당하고 사회 중대사의 결정에 아무런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다. 특히 양반사인들이 이들에 대해 지닌 편견이 뿌리 깊고 차별대우가 심했다. 전문직 중인들이 종사하는 전문 분야의 실무가 양반 지배계층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데다가, 서얼들의 잡과 진출이 두드러지면서 서얼에 대한 차별 의식도 전문직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P147

조선 유학자들은 중국의 서적을 통해 서양 과학지식을 접했을 뿐 아니라, 실제 서양 과학에 대한 정보를 얻고 서적들을 구하는 데서도 중국 학자들을 통하는 경우가 많았다...이처럼 중국을 통한 ‘간접적‘ 도입에만 의존하는 상황에서 조선 유학자들이 서양 과학지식을 접하는 데에는 제약이 있었음은 당연했고 그에 따라 그들의 서양 과학 이해의 수준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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