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미래 에너지원으로서의 원자력, 대안은 없는 것일까?
원자력을 전공했다.
90년에 안면도사태가 있었다.
90년 11월 부터 93년 3월까지 안면도 핵폐기물처분장 반대가 있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길을 막고 무언가 불태우는 화면도 뉴스에 나왔던 거 같다.
94년에는 굴업도에 처분장을 지으려다가 무산되었다. 지반이 위치가 좋지 않다고 주민이 아홉명이라고 처분장을 만든다니 말이 되냐는 반대여론에 선배 언니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좋은 입지는 아니지만, 기술로 보강할 수 있어. 돈이 얼마나 드느냐의 문제지."
2005년에는 부안에 처분장을 지으려다가 무산되었다.
2005년 11월 고준위폐기물은 처분하지 않는 조건으로 경주에 중저준위폐기물처분장이 건설되어 운영되고 있다. (https://www.korad.or.kr/korad/html.do?menu_idx=10)
원자력을 전공하다보니, 학교에서 토론회를 했던 기억도 있다.
이상에 대해 말하는 대학생들 가운데 절대 악이란 있을까, 따위의 하릴없는 생각으로 조금은 고립된 느낌으로 앉아 있었다.
환경의 중요성, 원자력의 위험성과 국가의 폭력성에 대해 말하는 자리였다. 마땅히 젊은이가 취해야 하는 태도 그대로, 거대한 국가권력과 자본에 저항해야 한다고들 했다. 핵무기와 원자력발전을 구분하지도 않고, 음모와 의도를 추측하면서 하는 말들 가운데, 후배가 "국가들이 경쟁하고 대립하면서 생기는 문제가 있으니, 모든 국가가 핵무기 기술을 공유하는 것은 어떤가?"라고 말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후배는 아마도, 모든 국가가 핵무기를 가져서 생기는 전쟁억지력에 대해서 말한 것 같은데, 나는 '세상에 어떤 미친 놈이 있을지도 모르는데'라는 심사가 된 거다. 그건 안 돼!
취업을 하고, 원자력발전소에 일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이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고, 우리의 답은 한시적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승만의 선견지명과 박정희의 추진력 가운데 만들어진 원자력발전소에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었을까, 이 선택 없이도 지금의 삶이 가능했을까, 생각한다.
보잘것 없는 살림살이를 살 때도, 초기투자를 거하게 하고 유지비가 작은 물건을 사는 게 좋은지, 초기투자도 유지비도 거의 비슷한 물건을 사는 게 좋을지 궁리하는데, 전기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궁리할 때 그런 생각 안 했겠어?라는 생각을 한다.
일본의 반핵운동가가 쓴 책을 읽어도 보고( https://blog.aladin.co.kr/hahayo/247746 ) 그 반대논리가 큰 건설비용에 떨어지는 큰 커미션 때문이라는 식이어서 의문을 품는다.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주민투표에 부쳤을 때도, '저 사람들이라고 애들 굶기자고 반대하겠어? 돈은 한정되어 있고 우선순위가 다르니까 그런 거지'라고 말하는 나는 그런 악의적 해석(떨어지는 콩고물에 현혹되어 지지한다는)을 의심한다.
많은 논쟁과 토의 과정을 바라보는 나의 입장이 공학인가, 철학인가, 질문하는 순간이 많다.
논쟁할 때, 이런 질문을 했었다.
보팔참사,( https://ko.wikipedia.org/wiki/%EB%B3%B4%ED%8C%94_%EA%B0%80%EC%8A%A4_%EB%88%84%EC%B6%9C_%EC%82%AC%EA%B3%A0 )란 게 있었어, 그 때 잠자던 인도사람이 천명 넘게(2800명이 죽었다고) 죽었어.
체르노빌 사고(https://ko.wikipedia.org/wiki/%EC%B2%B4%EB%A5%B4%EB%85%B8%EB%B9%8C_%EC%9B%90%EC%9E%90%EB%A0%A5_%EB%B0%9C%EC%A0%84%EC%86%8C_%EC%82%AC%EA%B3%A0 )가 있어. 그 때 급성방사선피폭으로 죽은 사람은 스물여덟명이래.
어느 게 더 위험해? 위험하다는 건 뭐고,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의 근거는 뭐야?
살충제를 만드는 공장에서 독성화학물질이 누출되서 벌어진 참사와 전기를 만드는 공장에서 방사성물질이 누출되어 벌어진 참사.
언니는 화학물질 누출은 통제할 방법이 있을 거 같아서 안 무서운데, 원자력발전소의 연쇄반응은 통제할 방법이 없어서 더 두렵다고 했다.
남편은 천천히 죽는 것보다 당장 죽는 게 낫다고, 그래서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소를 더 싫어하고 더 무서워 한다고 했다.
알라딘에서는 보팔사고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듣는다,는 반응이 있었다.
쉬운 해결방법이 있으면, 다른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고, 연구 쪽에 있는 언니는 정책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했다.
원자력은 전기를 낭비하게 하는 거라 문제라는 말도 듣는다.
폐기물은 어쩔거야?라는 질문은 조장된 공포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달라진다. 세상 어떤 게 원자력만큼 폐기물 걱정을 하나, 싶다. 폐기물을 문제삼는 당신의 삶에 어떤 폐기물이 그렇게 깨끗하게 사라집니까?라고 질문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축분뇨 해양투기가 금지된 게 2011년이란 걸 알고는 있으신가요? (나는 그 때 그 신문기사를 보고 되게 놀랐었다. 그렇지, 쓰레기를 만들지만 종국에 어디로 가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보이지 않게 치워둘 뿐이 아니냐고. 세상에 완전히 사라지는 무언가가 과연 있기는 합니까?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 겁니까?
전기를 낭비하는 게 나쁘다고 해서, 공포를 조장하는 게 옳아?라는 질문이 생긴다.
거짓말을 하고 숨긴다고 비난을 받을 때, 과연 숨기지 않는다는 건 뭘까, 질문이 생긴다.
알고 싶다면 알 수 있을 무수한 많은 정보들이 있고( https://nsic.nssc.go.kr/main.do ) , 새로운 상황에서 달라지고 있는데 어떤 식의 평판들은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전기가 오던 데로 온다면 아무 상관없다는 어떤 논리들-전기요금을 올려서는 안 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고- 가운데, 정답이란 게 과연 있는가 의심한다.
지금 당장의 답이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의 해결은 없다.
뉴스톱,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을 소개받고 구경갔을 때, '지구온난화, 핵발전소 건설로 막을 수 있나'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291 라는 기사를 봤다. 창간기획이었던 그 기사에서 앞으로 33년간 핵발전소를 4.3일에 한 기꼴로 지어야 2050년까지 모든 석탄화력발전소를 원자력발전소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 참. 이걸 말이라고, 싶어서 아예 해당 매체의 신뢰가 뚝 떨어져 버렸다. 지구적 문제라고 해도, 지역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아마도 어떤 환경론자가 말했을 텐데.
무기로의 이용가능성, 폐기물의 문제, 두려움, 까지 원자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선택받은 소수에게나 가능한, 전기를 펑펑 쓸 수 있는 축복인지도 모르겠다.